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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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쁜데 웬 설사
— 콩밭 쪽으로 사라진 선두
청람 김왕식
가을은 늘 냄새부터 먼저 왔다.
볏짚이 마르는 냄새, 흙먼지 위에 햇빛이 내려앉는 냄새, 누군가 운동장 구석에서 까먹다 흘린 삶은 콩의 냄새, 그리고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며 풍기는 비린 땀 냄새.
그해 추계 운동회가 열리던 날도 그랬다. 하늘은 맑았고, 운동장은 희멀건 먼지를 얇게 뒤집어쓴 채 잔뜩 긴장해 있었다.
마이크가 귀하던 시절이라 교장선생님의 목소리는 늘 육성보다 확성기 쇳소리에 먼저 실려 나왔다. 깃발은 바람도 없는데 한 번씩 몸을 떨었고, 아이들은 제 차례가 아닌데도 자꾸만 출발선 근처를 서성거렸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5킬로미터 단축마라톤이었다.
이름은 단축이었으나, 초등학생들에겐 결코 짧지 않은 거리였다. 학교를 출발해 마을 길과 논둑길을 지나 반환점을 찍고 다시 교문으로 돌아오는 왕복 코스. 어른들이 보기엔 한 바퀴 돌고 오는 일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세상을 한 번 다녀오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고 달리는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막연한 비장함이 있었다.
출전 명단에 내 이름이 불리자 친구 몇이 웃었다.
“왕식이 또 2등 하겠네.”
악의 없는 농담이었다. 어쩌면 응원에 가까웠다. 나는 늘 어중간하게 잘했다. 아주 못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누구를 압도하지도 못했다. 운동회가 열리면 으레 앞줄엔 들지마는 맨 꼭대기에는 오르지 못하는 아이. 그 자리가 내 자리라고, 어느새 나도 믿고 있었다. 이상하게 억울하지도 않았다. 세상엔 꼭 1등만 있는 게 아니니까. 2등은 2등대로 익숙해지면 편했다. 기대를 배반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다.
문제는 동운이었다.
동운이는 우리 반이 아니었다. 그러나 학교 전체가 그를 알았다. 키가 유난히 컸다. 우리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었다. 별명이 ‘꺽다리’였다. 다리는 길고 팔은 마디마디 굵었으며, 달릴 때면 몸 전체가 앞으로 내쏠려 마치 사람이 아니라 창 하나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동학년이라고 해도 다들 그를 한두 살쯤 더 많게 보았다. 얼굴도 어딘지 조숙했다. 웃을 때조차 웃음이 가볍지 않았고, 팔짱을 끼고 서 있기만 해도 벌써 운동장을 반쯤 접수한 것 같은 기세가 있었다. 달리기만 시작하면 그는 거의 무적이었다.
나는 출발선에서 동운이 옆에 섰다.
동운이는 다리를 툭툭 털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몸을 풀었다. 그 얼굴에 긴장은 없었다. 이미 이겨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묻어 있었다.
반면 나는 목이 말랐다. 아직 달리기도 전인데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 손바닥엔 땀이 차고 심장은 출발선을 조금 앞질러 달리고 있었다. 운동장 한쪽에 서 있던 어머니들이 치맛자락으로 햇빛을 가리며 아이들 이름을 불렀다. 교문 밖으로 난 흙길 저편에는 논이 누렇게 익어 있었다. 그 길을 내가 정말 다녀올 수 있을까, 잠깐 겁이 났다.
“제자리에.”
확성기에서 찢어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들 몸이 동시에 굳었다.
“준비.”
마른침이 넘어갔다.
휘슬이 울렸다.
우리는 먼지 속으로 한꺼번에 튀어나갔다.
처음 백 미터는 거의 전쟁이었다.
누가 앞이고 누가 뒤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고무신 같은 운동화 밑창들이 일제히 땅을 긁었고, 발꿈치에 차인 흙먼지가 종아리까지 튀었다. 옆 아이의 팔꿈치가 갈비뼈를 스쳤다. 누군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렸다. 출발할 때는 모두가 자신이 우승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몇 분 만에 갈라지고 찢기며 제자리를 찾아갈 뿐이다.
나는 첫 모퉁이를 돌 무렵 놀랐다.
몸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숨은 가빴지만 다리는 이상하리만치 부드럽게 나갔다. 늘 시작을 세게 하면 중간에 힘이 빠졌는데, 그날은 달랐다. 몸이 내 것이 아닌 듯 잘 움직였다. 나는 천천히 앞사람들을 추월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누군가는 벌써 얼굴이 벌게져 있었고, 누군가는 눈에 눈물까지 고인 채 뛰고 있었다. 길 옆에서 마을 어른들이 손을 흔들며
“천천히 혀!”
하고 소리쳤다. 천천히 뛰라는 말이란 걸 알았지만, 그 소리는 외려 더 빨리 뛰라는 부추김처럼 들렸다.
반환점을 돌 즈음, 선두는 셋으로 좁혀졌다.
맨 앞 동운이. 그 바로 뒤 나. 그리고 한참 뒤,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거리로 따라붙는 또 한 아이.
그 아이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발자국은 보였다. 일정했다. 무섭도록 일정했다. 나는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가 곧 후회했다. 뒤를 보는 순간 다리가 무거워졌다. 경주는 앞을 보고 뛰어야 한다. 뒤를 확인하는 것은 대개 불안의 다른 표현이었다.
동운이의 등은 크고 너르게 흔들렸다.
그 등은 이상하게도 나를 약 올렸다. 늘 내 앞에 있었던 아이의 등이었다. 모범답안처럼 확실한 등. 따라잡아 본 적 없는 등. 그런데 그날, 그 등이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내가 빨라진 건지, 동운이가 평소보다 느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거리가 줄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먼지와 볏짚 냄새와 내 목구멍 안쪽의 뜨거운 쇠 냄새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가슴이 타는 듯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논둑길을 돌아 학교 쪽 긴 직선으로 접어들자 햇빛이 정면에서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발바닥이 신발 안에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정말 어느 순간이었다. 나는 동운이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숨소리가 들렸다.
내 숨인지, 동운이 숨인지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1미터도 아니고 한 뼘 차이였다.
나는 흘낏 동운이를 보았다. 그의 턱은 굳어 있었고 콧등에는 땀이 번들거렸다. 그러나 눈빛은 살아 있었다. 나 역시 그를 보았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얼른 정면을 향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의식하며 달렸다. 세상엔 둘뿐인 것 같았다. 뒤따르는 아이도, 길가의 허수아비도, 손을 흔드는 동네 아낙도 모두 사라지고, 오직 두 개의 숨과 네 개의 다리만 남은 듯했다.
저 멀리 언덕 위로 학교 교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심장이 더 세게 뛰었다.
아직 멀었는데도 결승선이 코앞처럼 느껴졌다. 교문만 들어서면 운동장, 운동장만 들어서면 테이프, 테이프만 끊으면 끝이었다. 하지만 달리기란 늘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더 잔인해진다. 몸은 이미 한 번 바닥을 친 뒤고, 남은 힘은 정신이 밀어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였다.
동운이가 갑자기 신음을 삼켰다.
짧고 낮은 소리였다.
나는 처음엔 헛기침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동운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는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더니 걸음을 잠깐 비틀었다. 그 비틀림은 아주 작았지만, 선두의 몸에서 그런 흔들림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심장은 이상하게 식어 버렸다.
“왜 그래?”
내가 묻자 동운이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배가….”
말끝이 끊겼다.
두 걸음쯤 더 뛰던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말했다.
“설사… 나온다.”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결승선이 눈앞인데 설사라니. 우승이 목전에 있는데 배가 아프다니.
인생에는 늘 우스운 순간이 있고, 가장 비장한 순간에도 몸은 아주 현실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배신한다. 동운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길 옆 콩밭 쪽을 보았다. 그리고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줄래.”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콩밭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그대로 달리다가 멈칫했다.
정말로 다리가 잠깐 멎었다.
앞은 텅 비었다. 방금 전까지 커다란 몸으로 내 앞을 막고 있던 동운이가 사라지자 길은 너무 넓고 이상하리만치 적막했다.
나는 달려야 할지, 서 있어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다. 고개를 반쯤 돌리니 콩잎이 흔들렸다. 그 안에서 동운이가 바삐 허둥거리는 소리가 났다. 세상이 갑자기 해괴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정말 운동회인가. 이것이 정말 결승선을 앞둔 순간인가.
그리고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타박, 타박, 타박.
아까 그 3등 아이였다.
이제는 30미터가 아니었다. 5미터, 아니 어쩌면 3미터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아이도 상황을 알아챘는지 숨을 몰아쉬며 더욱 속도를 냈다.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기다리면 3등에게 추월당한다. 달리면 동운이를 버리는 셈이 된다. 기다리는 것이 의리인가, 달리는 것이 경기의 룰인가. 누구도 내게 가르쳐 준 적 없는 문제가 갑자기 길 한복판에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정말 잠깐 머뭇거렸다.
나중에 생각하면 5초쯤이었겠지만, 그때는 50초처럼 길었다.
마음속에서 목소리들이 싸웠다.
기다려.
아니다, 경기는 경기다.
그래도 친구가 부탁했잖아.
그러는 사이 3등이 오면 둘 다 놓친다.
동운이는 늘 1등이었어. 이번 한 번쯤은….
아니다, 그러면 너무 치사하지 않나.
몸은 판단보다 빨랐다.
내 발끝이 앞으로 기울었다.
그 작은 기울음이 결국 모든 것을 결정했다.
나는 달렸다.
그 뒤의 길은 마치 꿈속 같았다.
숨이 목 안쪽을 긁으며 드나들었다. 귀 안에서는 바람 소리가 났다. 발이 땅을 딛는 느낌은 있었지만, 정말 내가 뛰는 것인지 땅이 뒤로 밀려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교문이 점점 커졌다. 언덕이 생각보다 가팔랐다. 다리가 뻣뻣해졌다. 누군가 운동장 안에서 고함을 질렀다.
“왕식이다! 왕식이가 먼저 온다!”
그 외침이 날아와 등을 밀었다.
교문을 통과하는 순간, 세상이 환해졌다.
운동장에 모여 있던 아이들과 학부모들, 선생님들, 깃발, 먼지, 햇빛이 한꺼번에 눈앞으로 쏟아졌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테이프만 찾았다. 하얀 선이 바람에 흔들렸다. 마지막 몇 걸음이 영원처럼 길었다. 누군가 휘슬을 불었다. 누군가는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는, 정말 믿기지 않게도, 제일 먼저 테이프를 끊었다.
환호성이 터졌다.
그 소리는 지금도 기억난다.
종소리처럼 맑지도 않았고 폭죽처럼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놀람과 웃음과 열기가 뒤섞인 생생한 소리였다.
“왕식이가?”
“진짜 왕식이 맞아?”
“어쩌다?”
그 모든 감탄과 의문이 뒤엉켜 하나의 큰 환호가 되었다. 늘 2등 하던 아이가 처음 보는 자리, 제일 높은 자리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숙였다. 가슴은 터질 듯 뛰었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누군가 물을 가져왔다. 그러나 내 눈은 자꾸만 교문 쪽으로 갔다.
잠시 뒤 동운이가 나타났다.
뛴다기보다 거의 쫓겨 들어오는 얼굴이었다.
그는 온몸이 구겨진 사람처럼 보였다. 얼굴엔 땀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번민이 번져 있었다. 창피함, 분노, 조급함,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자존심. 그는 이를 악물고 달려 들어왔지만 이미 한 아이가 그보다 앞서 있었다. 동운이는 3등이었다.
그 순간 운동장에 깔린 공기는 묘해졌다.
나는 우승자였지만 떳떳하지 못했고, 동운이는 패자였지만 완전히 진 것은 아닌 얼굴이었다. 아무도 정확한 사정을 몰랐다. 사정을 아는 사람은 동운이, 나, 그리고 2등으로 들어온 그 아이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들 세계에서 비밀이란 늦어도 한나절을 넘기지 못한다.
시상식은 오후 햇살이 운동장을 비스듬히 가를 무렵 열렸다.
교장선생님은 확성기를 입에 대고 단 위에 섰다. 전기가 귀하던 시절이라 확성기 하나가 행사 전체의 권위를 떠맡고 있었다. 목소리는 자꾸 찢어졌고, 그럴수록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오히려 더 엄숙해졌다.
“오늘 우리 학교 역사에 드문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운동장에 웃음과 웅성거림이 번졌다.
나는 1등 줄 맨 앞에 섰다. 손에는 아직 땀기가 남아 있었고, 얼굴은 뜨거웠다. 동운이는 3등 줄 끝에 서 있었다. 평소라면 제일 앞에 있을 아이가 그날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먼지를 발끝으로 긁고 있었다.
상품은 공책이었다. 1등 다섯 권, 2등 세 권, 3등 한 권. 지금 생각하면 하잘것없는 보상이지만, 그 시절 공책 몇 권은 명예의 물증이었다. 그걸 들고 집에 가면 며칠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교장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이었다.
2등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는 숨길 줄 모르는 아이였다. 봤으면 봤다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교장 선생님!”
운동장이 잠시 조용해졌다.
교장선생님은 안경 너머로 그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왜 그러나.”
그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왕식이가 일등한 건, 동운이가 설사 나서 콩밭에 들어간 사이에 그냥 뛰어와서 그런 겁니다!”
순간 운동장이 터졌다.
전교생이 웃고, 학부모들이 웃고, 선생님들까지 웃었다.
누군가는 허리를 잡고 웃었고, 누군가는 입을 막고 웃었다.
웃음은 파도처럼 밀려와 내 얼굴과 동운이 얼굴을 번갈아 적셨다.
콩밭.
설사.
1등.
이 세 단어가 한 문장에 들어가는 순간, 운동회 전체가 하나의 희극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동운이도 고개를 숙였다.
누가 더 깊이 숙였는지 모르겠다.
그날 우리는 함께 웃음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나는 얼떨결에 이긴 아이로, 다른 하나는 하필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배가 무너진 아이로.
교장선생님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애써 엄숙한 표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입가엔 웃음이 걸려 있었다.
공책은 예정대로 나누어졌다. 나는 다섯 권을 받았고, 동운이는 한 권을 받았다. 그 무게 차이가 그날은 이상하게 공책 수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 공책을 품에 안고도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이긴 기쁨은 분명 있었다. 늘 2등이던 내가 마침내 1등을 했다는 사실은 아이 마음에도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기쁨은 어딘지 반쯤 젖어 있었다. 나는 정말 이긴 걸까. 아니면 우연이 내게 자리를 비켜 준 걸까. 동운이를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3등에게는 졌을까. 혹은 셋이 함께 웃으며 들어왔을까. 이런 생각들은 한동안 내 안을 떠돌았다.
그 뒤로도 세월은 많이 흘렀다.
수많은 결승선이 지나갔다. 학교 시험, 입시, 직장, 사람 관계, 글쓰기도 다 비슷했다. 조금만 더 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끝은 늘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인간의 품격은 압도적으로 이길 때보다, 애매하고 난감한 순간에 더 잘 드러났다.
훗날 미국 댈러스 마라톤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는 오래전 그 운동장을 다시 보았다. 결승선을 183미터 앞두고 무너진 선두, 그를 일으켜 세운 2등 주자,
“당신은 할 수 있어요” 하고 등을 밀어준 장면. 그건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보는 사람 누구나 박수를 칠 만한 장면이었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세상에는 그런 결승선도 있고, 어떤 결승선은 콩밭 때문에 뒤집히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경쟁자를 부축하며 함께 달린다.
누군가는 경쟁자가 콩밭으로 사라진 사이, 잠깐 망설이다가 그대로 결승선을 향해 뛴다.
둘 다 인간이다.
하나는 이상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현실에 가깝다.
삶은 언제나 그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오래 지나 돌아보면 그날의 1등은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한 편의 소설이다.
가장 비장해야 할 순간에 설사가 끼어들고, 우승의 환호성 한가운데 폭소가 터져 나오고, 제일 높은 자리와 제일 민망한 자리가 한 몸처럼 겹쳐지는 이야기. 웃기면서도 서늘한, 부끄럽지만 오래 잊히지 않는 이야기.
지금도 가끔 그 운동장을 떠올린다.
노랗게 익은 들판, 숨이 목구멍을 긁던 흙길, 언덕 위 교문, 그리고 마지막에 터져 나오던 환호성. 그 환호성 속에는 내 생애 첫 1등의 짜릿함도 있었고, 남의 불행을 딛고 올라섰다는 어린 양심의 따끔거림도 있었다. 동시에 그 시절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무자비한 솔직함과, 웃음으로 모든 난처함을 덮어 버리던 시대의 천진함도 들어 있었다.
결승선은 늘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막상 닿고 보면 몇 걸음 차이로 모든 것이 갈린다.
그 몇 걸음 앞에서 사람은 자신의 품성과 본능, 욕망과 망설임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그날 나는 아주 훌륭한 아이도, 아주 비겁한 아이도 아니었다.
그저 숨이 차고, 뒤에서 3등이 쫓아오고, 앞선 아이는 콩밭으로 사라져 버린 상황 속에서 다리부터 먼저 반응한 한 아이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 기억은 더 오래 남았다.
인생은 대개 멋있게 정리되지 않는다.
눈부신 미담으로 끝나지도 않고, 완벽한 교훈으로 봉합되지도 않는다.
대신 어딘가 어설프고, 우습고, 인간적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한 장면은 살아남는다.
환호성은 오래전에 그쳤다.
운동장도 바뀌었고, 교문도 낡아 새로 칠해졌을 것이다.
콩밭은 아마 다른 작물밭이 되었거나 집터가 되었을지 모른다.
동운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날의 2등은 여전히 무엇이든 보면 참지 못하고 말하는 어른이 되었을까.
나는 모른다.
다만 안다.
내 생애 가장 극적인 1등은 가장 떳떳한 승리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이 오히려 그날을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완벽한 영웅담보다, 조금 민망하고 조금 우스운 이야기를 더 오래 기억한다.
눈물보다 웃음이 먼저 터지지만, 그 웃음 뒤에는 꼭 사람의 속내가 남기 때문이다.
그날의 우승 역시 그랬다.
공책 다섯 권은 사라졌어도, 교장선생님 앞에서 “동운이가 설사 나서 콩밭에 들어간 사이에”라고 외치던 아이 목소리는 아직도 또렷하다.
그리고 그 순간 전교생이 터뜨린 폭소의 한가운데, 나는 생애 처음으로 알았다.
환호성과 부끄러움은 때로 같은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는 것을.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