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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바가지와 병아리

바가지의 양면성



'박'을

이야기하자면


흥부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지금도

간혹 박을 심는다.


과거에는

박을 많이 심었다.
바가지를

만들 요량이었다.

목포에서는

연포탕을 끓일 때,


박속을 넣어 요리한다.

고급요리다.


박이 귀해

서울에서는

박을 넣은 요리를

접하기는 쉽지 않다.





바가지는

우리 삶의 일부였다.


아이들은

물놀이할 때

바가지를 갖고 장난을 치고,


주부들은

물을 옮길 때나

물고기를 씻을 때 쓰였다.


그렇지만

모든 바가지가

같은 운명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바가지는

대갓집 뒤주에서

손님을 대접하며 깨끗한 물을 담아낸다.


어떤 바가지는

재래식 화장실에 사용되어

인간의 똥을 담게 된다.


똥을 담는 바가지,

똥바가지는 우리 사회에서

천대받는 존재였다.


그것은

바가지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

똥바가지 앞에,

한 작은 병아리가 떨어진다고 상상해 보자.


작은 병아리는

화장실의 깊은 구멍에 빠져,


물에 젖어 허우적대며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때,

똥바가지가 그 작은

생명을 구하게 된다.


그 순간,

똥바가지는

한 생명의 구원자가 된다.


로는

우리의 존재나 역할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순간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순간,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바가지처럼,

우리

모두는

어떤 순간에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궁벽하다 해도


훗날

생각지도

못했던

긍정적 상황으로 반전될 수도 있다.


세상일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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