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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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시]
왜 사느냐고 물으면
靑民 박 철 언
왜 사느냐고 물으면
'보고 들을 수 있으니까'
'걸을 수 있으니까'
'봉사할 수 있으니까'
'글 써야 하니까'
살아야 할 이유는 넘친다
그중 가장 큰 까닭은
'아직 못다 한 사랑이 있으니까'
대답하련다
대나무숲에 서면
꽉 찬 바람 소리만으로도
마음 비워져 맑아지듯
사랑의 뜨락에 서면 서로를 향한
꽉 찬 비움으로 맑아지는 가슴
어떠한 말도 비울 때 비로소
간절한 사랑에 가 닿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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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 박철언 시인의 '왜 사느냐고 물으면'
청람 김왕식(문학평론가)
이 작품은 청민 박철언 시인의 인생철학과 시적 미학을 가장 맑게 담아낸 응축체이며, 그의 제7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적 축이라 할 수 있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제7시집에 실린 대표작 '왜 사느냐고 물으면'은 단순한 시적 응답을 넘어, 한 인간이 겪어온 생애의 무게와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철학적 확신을 응축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시 한 편은 그의 삶 전체를 압축한 서사이자, 그가 시를 통해 독자와 나누려는 궁극적 대화의 결론을 보여준다.
특히 박철언 시인의 삶은 공직자로서의 길, 정치적 소용돌이, 감옥의 고독한 세월, 그리고 무엇보다 시를 통한 자기 구원의 과정이 겹겹이 얽혀 있다. 그러한 체험은 단순한 고백을 넘어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보편적 물음 앞에 울림 있는 답을 가능하게 했다.
시의 첫 구절은 직설적이면서도 단호하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 ‘보고 들을 수 있으니까’ / ‘걸을 수 있으니까’ / ‘봉사할 수 있으니까’ / ‘글 써야 하니까’”라는 대답은 생존의 당위가 아니라, 삶의 기쁨과 의무가 이미 충만하다는 고백이다.
단순한 신체의 기능조차 ‘살아야 하는 이유’로 전환시키는 시인의 태도는, 인간이 가진 존재 자체의 긍정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유가 하나가 아니라 ‘넘친다’는 데 있다. 이는 곧 삶을 결핍의 관점이 아니라 충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인의 철학을 드러낸다. 삶은 살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아니라, 살아야 마땅한 무수한 까닭들의 축적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단순한 생존의 기쁨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그 모든 이유를 넘어 “가장 큰 까닭”으로서 ‘아직 못다 한 사랑’을 제시한다. 사랑은 그에게 삶을 연장하는 마지막 힘이며, 동시에 가장 본질적인 이유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워내어 타인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 방식이다.
박철언 시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권력의 중심에 서 있다가 추락하고, 감옥의 차가운 시간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했던 경험은 많은 이들에게는 절망으로 귀결될 수 있었다. 시인은 그 속에서 외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직면했고, 시를 통해 그 답을 길어 올렸다. 따라서 그의 시는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라, 삶의 결산이자 고난의 초월적 해석이다.
특히 “어떠한 말도 비울 때 비로소 / 간절한 사랑에 가 닿지 않을까”라는 마지막 연은, 언어조차 내려놓아야 도달할 수 있는 사랑의 깊이를 역설한다. 이는 정치적 언어, 권력의 언어, 사회적 언어가 가득했던 과거의 삶을 버리고, ‘비움’의 언어, ‘사랑’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 시인의 내적 전환을 웅변한다.
오늘날 우리는 성과와 경쟁에 매몰되어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때로는 우울의 형태로, 때로는 공허의 형태로 우리를 짓누른다.
이 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살아야 할 이유는 결코 거창한 업적이나 거대한 사명이 아니다. 듣고, 걷고, 쓰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유로 충분하다. 나아가 사랑을 다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살아야 한다는 고백은, 아직도 누군가에게 건넬 미소 한 번, 손길 한 번이 남아 있음을 일깨운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왜 사느냐고 물으면'은 삶의 무게와 시적 성찰이 하나로 만난 작품이다. 존재의 이유를 ‘충만’에서 찾고, 그 모든 이유의 정점에 ‘사랑’을 세움으로써 그는 자신의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사랑을 ‘비움’으로 설명하는 그의 미의식은 단순한 서정적 울림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과제를 담아낸다. 제7시집의 대표작으로서 이 작품은, 시인의 삶과 철학, 그리고 문학적 지향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거울이다. 무엇보다 이 시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살아야 할 이유는 이미 넘치고 있다. 그것은 사랑 때문이다.” □
□ 청민 시인의 제7 시집 발간 축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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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 앞에서 망설이다가
— 청민 시를 마주하며
청람 김왕식
한 통의 전화였다.
그저 일상의 흐름 속에 놓인 평범한 울림이었으나,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진 말은 오래도록 마음을 붙들었다.
청민 박철언 시인이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제7시집을 내면서, 해설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순간, 기쁨보다 먼저 망설임이 앞섰다. 이미 문단에는 훌륭한 평론가들이 많고, 그 이름만으로도 작품을 충분히 밝혀 줄 수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어찌하여 이 부족한 사람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려 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다.
그동안 그의 시집 몇 권에 해설을 덧붙인 적은 있었으나, 모든 시집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고, 그 인연이 특별히 두텁다고 말하기에도 조심스러웠다. 그러므로 이번 부탁은 단순한 연속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어떤 신뢰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놀라움과 함께, 고마움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 고마움 위에 더 크게 놓인 것은 책임이었다.
시를 읽는다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한 시인의 생애가 축적된 시집을 해설한다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특히 청민의 시는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통과한 언어이기에, 그것을 다룬다는 것은 한 인간의 시간 전체를 마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여,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다.
청민의 시를 가리지 말자.
어떤 선입견도, 어떤 해석의 틀도 앞세우지 말고, 오직 그 시가 스스로 드러내는 결을 따라가자. 시를 설명하려 하지 말고, 시가 스스로 말하도록 곁에 서자.
평론이란 이름으로 시를 덮어버리는 일이 아니라, 시가 더 또렷하게 보이도록 비켜서는 일이 되어야 한다.
청민의 시는 이미 자신의 길을 알고 있다. 공직의 자리에서, 권력의 중심에서, 그리고 고독한 수감의 시간 속에서, 그는 삶의 가장 깊은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그 질문 끝에서 도달한 언어가 바로 그의 시다. 그러므로 그것을 읽는 일은 해석 이전에 경청이어야 한다.
그의 시 앞에서 평론가는 앞서 나갈 수 없다. 다만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언어가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함께 느끼는 동행자일 뿐이다.
전화 한 통이 남긴 울림은 단순한 청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시인이 다른 한 사람에게 건네는 신뢰의 방식이었고, 동시에 문학이 이어지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 부름 앞에서 잠시 망설였으나, 끝내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시에 대한 경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경외는, 결국 한 편의 해설을 넘어, 한 사람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작은 걸음이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시를 향해, 더 낮은 자리에서 읽는 일.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