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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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보이지 않는 문장이 먼저 쓰인다
깊은 흙 속에서
오래 접어 두었던 숨 하나가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채
자기 안쪽으로만 흐르고 있을 때
비는
하늘이 아니라
시간의 뒤편에서 먼저 온다
젖는 것은 흙이 아니라
굳어 있던 기다림의 결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깊이 닿는 방식이라는 듯
봄비는
소리 대신 스며드는 쪽을 택한다
단단히 잠겨 있던 계절의 이음새에
아주 작은 틈 하나
그 틈은
부서짐이 아니라
지나갈 수 있게 열어 둔 길
그리하여
빛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먼저 색이 태어난다
연둣빛이라는
가장 연약한 결심이
어둠의 가장 안쪽에서
자기 자신을 밀어 올린다
씨앗은
자신을 지키는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래서
열리는 쪽을 선택한다
찢어지는 것이 아니라
풀리는 방식으로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지는 방식으로
뿌리는 아래로 더 깊어지고
싹은 위로 더 가벼워지며
서로 반대의 방향으로
하나의 생을 완성해 간다
이때
어둠은 더 이상 막힘이 아니라
버티게 하는 자리
빛은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견딘 만큼 스며드는 것이다
하여
4월은
무너뜨리는 달이 아니라
스스로를 통과하도록
조용히 허락하는 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
아주 오래된 다정함 하나가
마침내
형태를 얻어
꽃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닿는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