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님과 배냇저고리는 우리 집안의 종교였다

먼지 덮인 성경책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님께

비나이다.


신새벽

할머님의 간절한 기도소리다.


대대로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칠성님께

기도하던 집안이었기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청계천 헌 책방을

들를 때면

먼지가 뽀얗게 낀 채


이렇게나

꽂혀 있는

성경책을 본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음에도.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았다.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성경책을 헌 책방에

내다 팔 수 있을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경책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해서

읽지도 않으면서

보이는 대로 샀다.


그렇게 산 것이

10권이 넘었다.


먼지를 털어 정성껏 닦은 후

내 책꽂이

중심에 꽂아 두었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고등학교

졸업 후


성경책을 들고 시골 개척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믿음은

내게 멀게만 느껴졌다.


우리 집은

대대로 칠성님께 기도하는 가정이었기에,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청계천 헌 책방을 들를 때면

성경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에 가려진

그 책들은

왠지 손이 가서 담아 오고 싶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을 읽지 않았음에도

그 책을

계속

구매했다.


그 책들을

내 방에 정성껏 담아두고는

그 안의 이야기를 상상했다.


믿음이란 건

정말로 멀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성경은

내 책장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는 그 성경책들을 다시 들어보았다.

그 책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위로,


그리고

믿음의 힘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리하여

졸업 후

나는

결국 믿음의 길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성경책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 것 같다.


그것은

믿음을 찾아가는

나의 여정이었고,


그 책들은

나를 하나님에게 인도해 준

안내서였다.





대학 시험을

볼 때

할머님은

내게

배냇저고리를

허리에 묶어주셨다.


이것이

우리 집안 종교였다.


시험 보는

내내

허리에 두른 저고리가

불룩하게 나와

마치

임신 3개월 차로 보였다.


하루종일

배가 조여 아팠음에도


그것이

우리 집안의 종교였기에

감내해야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묶고 시험을 불편한 상태로 시험을 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감독이

무엇인가를 들어

길게 늘어뜨린 채


" 학생

이것이 떨어졌네!"


허리에 묶었던

배냇저고리가

어느새

풀려

교실바닥에 흘러내린 것이다.


진지하게

시험 치르던 학생들

소리 죽여 키득댄다.


그 해

나는

시험에

떨어졌다.


아하

칠성님


나의

할머님이시여!


순간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을 성경책이 떠올랐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순간, 이미 나의 글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