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참, 오늘 막걸리는 와 이리 싱거운겨!

막걸리와 할아버지









'막걸리
한 되
받아오란다.'

신작로를
한참
걸어야

동구밖이
나오고
그곳
모퉁이에

구멍가게가
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보낸
추억을
잊을 수 없다.

그 시절은
자유롭고,

마음이
따뜻했으며,

매일매일이
새로운 모험이었다.

어느 날,
아이디어 하나로
그 모험은
특별한 추억으로 바뀌었다.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논에서 일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실 때면
항상
눈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일 마치고 집에 오면
할아버지를
맞이하는 그 무엇이 있기에.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가
돌아오실 때쯤 되면
어머니는

나를 부르셨다.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빛바랜 주전자를 들려

“막걸리 한 되 받아오너라”

10원짜리 지폐 하나를 쥐어주신다.
나는 남는 돈으로
눈깔사탕 하나 물고 올 요량으로

마음은
벌써
구멍가게에 가 있다.

이 날은
특히 더웠다.


낮 동안
태양이
작은 마을을 구워버릴 것만 같았다.


주전자를 들고
구멍가게로 향하는 과정에
서너 살 터울의 동네 형을 만나
동행했다.

우리는
돌아오는 내내,
주전자 안에 묵직이 담긴 시원한 막걸리를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몇 모금 들이켜 볼까?”


서로
마주 보고 미소를 지었다.
형이

먼저 주전자를 기울여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 넘기는
소리가 대단타.

형은
슬며시 내게 건넸다.
나 또한 주저 없이
한 모금,
두 모금 들이켰다.

주전자가
훨씬 가벼워졌다.

우리는
이제
가뿐해진 주전자를
번갈아 들고
휘청거리며 걷고 있었다.

점점 머리가 무거워졌고,
발이
기울어진 땅을
온전히 찾지 못해 헛짚기 일쑤였다.


이러는 사이

집이
우리에게 왔다.


기쁨도 잠시,
가벼워진 주전자로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눈치 빠른

형은
집 앞 개울가로 내 손을 이끌었다.
물을 주전자에 적당히 채웠다.


다시 무게를 느꼈다.
불안하면서도

한 켠으로 뭔가 기쁨이 차올랐다.

생각에,
이 방법을
형도 또 다른 형들에게
배웠음이 분명했다.

집에 돌아와,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어머니께 주전자를 건넸다.


맛볼 리 없는

어머니이기에 그리 걱정은 되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어머니는 정성스레 부친 김치전을
곁들여
술상을 차려냈다.


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한 모금 들이키셨다.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신다.
고개를
외로 저으시며


"허 참! 이상타, 오늘 막걸리는 와 이리 싱거운겨?"


멀리서
숨죽여 이를 지켜본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저 말씀,
내가
한 짓을 알게 된 걸까?
아니면
그저 우연일까?

나는
불안을 잔뜩 안고
웅크리고 앉아,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꽉 다문 입에 경련이 일어났다.

그날 밤,
거나하게 취한 할아버지와
나는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 앉아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의
달콤한 막걸리와
따뜻한 별빛은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살아있다.

가끔,
나는 그때의 어린 나를 그리워한다.
그때처럼
순진하고,
모험을 찾아다니며,

할아버지와
무한한 상상을 나눴던 그 시절을.
빛바랜
연녹색의 주전자와
할아버지의 막걸리,


그리고
그 밤의 별빛은
나에게 있어
보물과도 같은 추억이다.

나는
그때
그 할아버지만큼 나이가 들었다.

때때로
그 추억에 잠기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요즘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고향에
들를 때면.


그때
그 형을 찾아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며

그 시절을
추억한다.

우리는
시종
말이 없다.

막걸리
빈 잔에
미소만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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