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7. 2023
'걸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오래전,
그저
가난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상상했다.
이제
그 개념은 크게
변했다.
한 때,
우리 국민들의 상처로 굴러간
6.25 전쟁 이후,
상이군들이
거리를 헤매던 모습이
마음에
남아있다.
의료 시스템의 열악함 때문에
갈고리가 달린 팔을
늘어뜨린 그들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실
그들은
우리 민족을 구해낸
의인들이다.
그러한 시절에
그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있었는데,
그들이 보여준 건
동족상잔의
비극의 결과였다.
이제,
걸인이란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도심의 몇몇 곳에
노숙자들이 모여있는 걸 보면,
그들 대부분은
몸과 정신,
또는
경제적 문제로 인해
노숙자가 된 것 같다.
가끔,
조건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원하며
노숙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 중
한 사람을
직접 만나
나눈 이야기이다.
그는
노숙이 '편하다'라고 말하며
살아간다.
매일
정부나 자선단체에서 배식하는
무료 식사를
먹고 생활햐다.
유독
커피만큼은
행인에게 구걸해서 얻은 돈으로
직접 사 마신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신이 원하는 근사한
카페만을
찾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하루종일
구걸에서 얻은 돈 전부를
커피 한 잔에 투자한다.
그는
맘껏
나름의 폼을 잡고
음악을 들으며
자신이
원하는
산미가 깃든
'에티오피아 드립 커피'만을 마신다.
로맨틱한 걸인,
철학이 있는 젠틀맨 걸인.
그의 삶을 통해,
나는
삶의 여유와 미소를 배운다.
이런 걸인을 만나면,
그의 삶에서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는
'자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아니면
그는 '자유'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일까?
더 이상
걸인이 아닌,
철학자가 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걸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걸인'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의미에서,
걸인에 대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보여준
'자유'의 의미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후
이 걸인을
'길 위 걸인 철학가'로
바라보게 되었다.
ㅡ
이제
철학은
철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생활인의
철학,
걸인의 철학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