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Oct 13. 2023
어릴 적,
마을의 작은 길을 지나며
흔히
볼 수 있던 장면이 있다.
ㅡ
엿장수의
풍경이다.
엿장수 가윗소리는
아이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엿장수는
마을의 아이들에게
단순한 사업자가
아니었다.
그는
달콤한
추억의
주인공이었다.
마을의 아이들은
구멍 뚫린 양은 냄비나
찢어진 고무신을
손에 들고
엿장수에게 달려갔다.
그 아이들의 눈에는
단순한 물건 교환 이상의 기대와
설렘이
깃들어 있었다.
그 달콤한 엿 한 조각은
그때의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보물이었다.
허나
그 엿을 향한 열망은
때로
부모님의 눈에는 다르게
비쳤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는 달리,
어머니들은
그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아이들이 바꾼
물건들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어머니들에게는
생활의 일부였다.
뚫어진 냄비도
그들의 손길로 수리하고,
찢어진 고무신도
어떻게든 고쳐 신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에는
그 물건들의 가치보다
달콤한 엿의 매력이
더 컸다.
어머니의 부지깽이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혼쭐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아이의 순수한 욕구와
어른의 현실적인 생각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제
그 시절을 회상하며,
나는
그 당시의 감정을 이해한다.
아이들의 단순한 행복은
때로는
어른의 세계와
충돌하기도 했다.
허나
그 충돌은
우리가 성장하면서 배우는
가치와
이해의 일부였다.
그 엿장수의
가윗소리와
그 당시의
추억은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
담겨있다.
그것은
달콤하고도 씁쓸한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