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접근, '태초에 말씀이 계시느리라'

성경도 인문학?

'



나는

인문학을 공부한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몇 권의 책

역시


논어와

맹자,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이다.


우연히

목사님의 소개로

성경을 만났다.


요한복음부터

꼼꼼하게

읽어보란다.


인문학을 공부한 나로서의

호기심은

지대했다.


허참!


요한복음

1장 1절을

접하는 순간,


문제에

직면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느리라."

내 국어학적 눈은

즉시

이 문장에 걸렸다.


'말씀'이라는 목적어와

'계시느리라'라는 서술어가

호응이 되지 않았다.


'계시느니라'를

'있느니라' 라고

수정하고 싶었다.


심히

란스러웠다.

다음날,

성경을 즐겨있는 한 친구에게

이 문장을 보였다.


친구는

내가 성경을

국어학 책처럼 읽고 있다며

웃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기에

당연히

서술어를

높였다는 귀띔이다.

그럴까?

인문학적으로나

국어학적으로나,


성경도

결국은

텍스트다.


우리의 해석과

시각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성경의 문장 하나하나를

국어학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성경은

단순한 교리의 책이

아니라,


인류의 지혜와

감정,

문화가 담긴 깊은 텍스트였다.

마치

공자나

노자의 말처럼,


성경

역시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것은

국어학적 분석 덕분이

아니라,


성경

자체의

깊이 때문이었다.

성경도

인문학의 한 부분임을 깨달았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느리라'의 문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모른다.


그 문장이

나에게 주는 감동과

깨달음은 분명하다.







그래,

나는 인문학도다.


그리고

성경

역시

내 인문학의 일부다.


허나

읽을수록

어느새

인문학적 접근이

심적으로

버거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신만의 색깔이 짙게 묻어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