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빼면 시체인 사람이 바로 나다. 아니, 나였다. 그러나 유방암 수술 이후로는 가녀린 청순녀가 된 것만 같다. 수술 후 살이 급격하게 빠져서 그런것일까. 남편의 당뇨 사건 이후부터 남편에게 신경을 쓰느라 내 식사를 제대로 못 챙겨서 그런것일까. 자꾸 사물이 두 개로 보이면서 어지러웠다.
혹시 체력이 떨어졌나 싶어 등산을 좀 더 자주 다녔더니 저혈당이 찾아왔다. 혈압도 뚝뚝 떨어졌다. 더 잘 먹어야 겠다 싶었지만 내가 뭔가 먹으려고 할 때 남편이 옆에 있었고, 먹을 것에 눈이 뒤집히는 남편은 내가 얌전히 먹도록 두지 않았다. 그래서 숨어서 먹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고구마 반개. 삶은 달걀 하나. 두유 하나..
"같이 앉아서 밥을 먹으면 되지 않니?"
그러나, 남편과 같은 식탁에 앉으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 반찬의 이름을 알려주거나 밥 위에 반찬을 얹어주는 등의 일들을 해야하기 때문에 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허겁지겁 밥을 먹게 되어 오히려 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체하면 간병을 할 수 없다.
여튼, 아무래도 눈이 안 좋은 것 같아 안과를 갔더니 안검하수 증상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동공을 많이 가렸으니 얼른 수술을 하라고 덧붙이면서.
아니, 이게 왠 떡인가. 쌍커풀 수술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일률적인 간병생활에 새로운 이슈가 생겨 괜히 신이 난 나는, 지역에서 가장 좋은 성형외과를 찾아 예약을 했고,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수술대에 올랐다. 암이고 나발이고 여자는 미모가꾸기에 약한 법 아니겠는가.
마취는 수면마취를 한다고 했고, 잠시 잠을 자는 듯 하다가 점점 의식이 깰 것이라고 했다. 과연 그랬다. 깜빡 잠들어 푹 잔 것 같은데 귀가 열려있는 느낌. 그러나 귓전에서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쿵 쾅 쿵 쾅
그 소리에 맞추어 모니터와 연결되어있는 알람도 고심박수를 알리며 자꾸 울려댔다. 이 소리는 남편의 중환자실에서 너무나 자주 들었던 소리라 급격히 불안해졌고, 공황발작이 올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내 앞에서 아른거리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제 심장 너무 빨리 뛰죠.”
“좀 그런 편인 것 같아요.”
“모니터 소리가 너무 큰데 그냥 빼 주시면 안될까요. 저 다 깼는데요.”
괜히 수술이 안될까봐 암환자인 것도 말하지 않고 수술대에 올랐다. 쌍커풀 수술은 수술도 아니라는 자기 위로는 했지만 심박수가 요동을 치는 걸 보니 겁이 나긴 나는가 보다. 내 말을 들은 간호사는 정말 괜찮냐고 재차 물었고, 진지진지열매를 오백개는 먹은 것 같은 내 얼굴을 보고 모니터와 연결된 전선을 뽑았으며 고요해지자 심장의 쿵쾅거리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아...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그러나 구원투수는 등장하는 법. 의사가 웃으며 들어왔고, 본격적인 수술을 시작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모양을 잡고 수술을 하는 과정을 거치니 긴장이 풀린건지 공황발작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서 누워있는데 뜬금없이 머리가 핑 돌았다. 그리고 속이 울렁거리면서 누워있는 내게 커다란 돌이 떨어져 납작해진 것만 같았다.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온 몸에 땀이 물처럼 쏟아졌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공황이라는 것은 절대 죽는 일이 없지만 죽을 것 같아서 오는 정신적 방어기재 일 뿐이라고. 그러니 난 괜찮다고 몇백번을 되뇌이며 숨을 크게 쉬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10분정도 외로운 싸움을 하다보니 발작은 가라앉았고, 슬쩍 일어나 옆에 있던 티슈로 땀을 슥슥 닦고는 회복실을 나갔다. 그리고 쌍커풀 수술 떄문에 운전을 못할 나를 데리러 온 이웃사촌에게 아무일 없다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때? 나 수술 잘 된거 같아?”
INTJ는 쓸데없이 예민하다. 뭔가 신경을 쓰면 소화가 안되고 위경련이 발생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이제는 위경련이 오지 않으면 공황발작이 발생하는 것으로 그 증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공황발작은 점점 발생주기가 짧아졌고, 이젠 일상생활에서조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유방암환자가 호르몬치료를 위해 먹는 타목시펜의 부작용으로 일시적인 우울감등이 생길 수 있다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치부하기에는 목숨에 위기를 느낄 만큼 일상이 너무 힘들어졌다. 갑자기 길을 가다 쓰러진다던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심장마비가 오진 않으련지 하는 등의 쓸데없는 걱정은 공황발작을 더 유발시켰다. 진료를 보러 간 유방외과 교수에게 정신과로 협진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정신적인 문제로 보기 이전에 신체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하는 절차가 필요해요."
그래서 정신과를 보기 전 신경과로 진료를 보게 되었지만, 이미 내 안에서는 신경과의 진료가 전혀 필요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신체적 문제를 발견하게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생각이 돈다.
필요 없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내 몸의 문제.
혹시나 내 몸에 뭔가 있지 않을까.
뇌로 전이가 되어서 이렇게 우울한 증상이 오는건 아닐까.
처음에 항암을 했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신경과 교수님을 만나면 뭘 말해야 하지.
공황발작이 온다고 말하면 되는걸까.
유방외과 교수님이 다 코멘트를 남겨두지 않았을까.
일단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자....
생각이 꼬리를 무는 동안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오늘도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남편. 어쨌든 남편은 남편이다. 뭔지 잘 몰라도 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 줘야 하는지 알고 있다. 옆에서 아무말 없이 내 등을 두드려주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옆에 남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참 소탈하기 그지없다.
"들어오세요"
아무리 기억을 못하는 남편이라고 해도 나의 병들을 남편에게 알리고 싶진 않았다. 기억은 잃어도 감정은 남는다. 남편이 나를 약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홀로 진료실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담담한 목소리와 그렇지 못한 땀샘. 무엇 때문인지 땀이 계속 났다. 교수는 넘어온 차트를 보더니 내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혹시 어지러운건 없어요?"
"가끔 어지러워요."
"어떨때 어지러워요?"
"어떨때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핑 하고 돌면서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요."
나는 글을 쓰는 작가이긴 한데, 입을 거쳐야 하는 표현은 왜이렇게 유치원생 수준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를 표현하는 와중에 점점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고, 땀범벅에 부들부들떠는 내 손을 잡으며 교수가 말했다.
"힘들어요?"
울음이 날 것 같다. 힘들다고 말하면 정말로 힘들어질까봐. 힘들다고 절대 입밖으로 내어서는 안될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말보다 눈물이 더 빨리 튀어나갈 것 같다. 얼굴이 시뻘개진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입을 꾹 닫고 앉아있는 내게 교수는 처방을 내어 주었다.
"일단, 전정기관에 문제가 있는지 어지러움증 검사 예약을 잡고 가세요. 그리고 힘든 증상이 있을 때마다 이 약을 드시면 좀 편해지실 거예요.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 협진 넣어드릴게요."
"그... 저... 서00교수님으로 해주실 수 있어요?"
"정신과는 교수님 지정이 안되는데요.?"
"...저. 그 제 남편이 산재환자인데요... 제가 남편을 간병하거든요... 근데 제가 암에 걸렸고요... 그런데 남편이 인지장애가 있어서 정신과 다니는데 교수님이 서00교수님이라서요....그래서 제 사정을 잘 아시니까..."
싫다.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나열하는 게 싫다. 싫으면서도 키오스크처럼 버튼을 누르면 술술 말하는 내 자신이 싫다. 싫다. 아주 싫다.
"그래요. 일단 지정을 해볼게요. 근데 될지 안될지는 몰라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뛰어 나왔다. 대기실에서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던 남편이 환하게 웃는다. 나의 마음 바닥까지 비추는 햇살같은 미소. 내가 구원받은 그 미소.
"엄마!"
불안해서 붕붕 떠있던 마음이 안심이 된다. 남편이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가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남편은 회사에서 사고를 당한 산재피재자다. 남편의 시간들을 보상해 줄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남편은 인지가 떨어져 아무것도 기억할 수도, 말할 수도 없으니 그 대리인은 자연스럽게 보호자인 내가 되었다. 오늘은 그 민사소송의 재판이 있는 날. 변호사가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한번쯤은 가보는게 좋다고 해서 선뜻 동행하기로 했다. 혹시나 판사가 나에게 한마디 해보라고 말할 것을 대비해 간단한 발언내용을 준비하는게 좋겠다고 했고, 일주일 내내 쓰고 고치고 외워두었다.
법원앞에 도착했다. 이미 출발하기 전부터 심장이 뛰어 따뜻한 커피를 한잔 했는데 망했다. 커피에는 카페인 성분이 있어 심장을 더 뛰게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마셔버렸다. 심장이 터질듯이 뛰었다. 워치의 심호흡앱을 켜서 다섯번의 호흡을 했다. 워치에 새겨진 심박수 102BPM가 눈에 들어왔다. 이쯤되면 심장만은 갓 태어난 신생아가 아닌가 싶다.
혹시나 회사사람들을 만나지 않을까.
만나면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혹시나 내가 얻어맏으면 어떻게 하지.
별의 별 상상들은 발을 떨어지게 하지 않았다.
-네. 김00입니다. 어디세요?
다행이다. 변호사가 도착했다는 전화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들게 했다. 그게 누가 되었든 나는 그의 옷에 튀어나와있는 실밥이라도 잡아야 했다. 태연한 듯 똑바로 걷는 내 손끝은 불안하리만치 덜덜 떨렸다. 다행히 변호사는 눈치채지 못했고,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해주었다.
처음 맞닥뜨린 재판장은 생각보다 그렇게 딱딱하진 않았고, 티비에서 보는 것 처럼 다들 현란한 말솜씨를 뽐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법원이라는 장소가 주는 위압감 때문인지 상당히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상대편 변호사는 당연히 회사의 변호인이니 남편의 잘못을 들추어내려고 노력을 해야하는 역할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할 때마다 열불이 나고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이 싸움은 누가 이득을 얻는 싸움일까.
-삐빅
워치가 알람을 알려왔다. 고심박수다. 가만히 앉아있는데 심박수가 150BPM을 넘어섰다. 내 등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인데 판사가 나에게 무슨말을 시킬 것 같아 정신을 붙잡고 어떻게든 앉아있었던 것 같다. 내가 쓰러지는 극적인 사건보다 판사에게 한마디라도 더 해보는 게 이득이지 않을까 싶어 바득바득 버텼다. 그러나 재판이 길어져 다행히(?) 내게 발언은 주어지지 않았고, 증인 발언을 위해 재판은 다음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법정에 버티고 앉아있는 것 만으로도 모든 힘을 다 써버린 나는, 한동안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법원주차장에 앉아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망가져버리게 된걸까. 어디서부터 망가진 것일까. 나는 언제까지 이 길을 걸어야 하는걸까. 왜 이렇게 힘들게 땅을 박박 긁어가며 기어가야 하는걸까. 살다보면 그런일들을 겪는다고 하지만 왜 이렇게 나에게는 한꺼번에 오는 걸까.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