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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쌤 Jul 12. 2023

방학이닷!

 이 땅의 학부모님께

 방학을 앞둔 학교는 방학식날 성적표를 내보내는 일정을 맞추려 매우 분주합니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야영 계획도 세우고 방학을 잘 보내기 위한 상담도 하고 한 학기를 정리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방학은 성적표와 함께’로 시작합니다. 어떤 녀석은 방학을 더 끔찍해하죠. 어쨌든.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일단 방학 땐 제발 놀기

어떻게? 컴퓨터나 스마트폰 외에 오락이 있을까? 당근! 해 질 녘까지 놀다 집에 들어간 우리들의 어린 시절, 어울리고 노는 것에서 얻는 틈들, 여유, 쉼, 즐거운 관계들, 그 신나고 자유로운 시간들을 우리 아이들은 알까.

 자전거 타고 싸돌아다니기, 땀 흘려 운동하기, 공연 찾아다니기. 그리고 가능하면 (가능하게 만들기) 집밖으로 떠나기. 텐트를 메고 바다로 또는 온몸으로 자연을 겪을 수 있는 산으로. 여유가 되면 멀리 바다 밖으로도 나가봤음(빚을 내서라도). 돈을 쓰는 관광이 아니라 낯선 곳을 찾아 나서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여행이 되기를. 많이 놀고 많이 싸돌아다닌 아이들이 확실히 다르지요. 싱싱합니다.


 그리고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책이랑 놀기.

 대형서점은 시원하고 쾌적해서 놀기에 딱이죠. 그 엄청난 책 속에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놓기. 엄마가 책을 골라주지 말라는 말씀. 엄마는 엄마대로 편하게 책에 빠지시길. 앞의 모든 것은 ‘노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공부를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일하지 않는 자먹지도 말라를 실현하기

집안일을 시키세요. 하루에 한 끼 정도의 설거지는 아이가 책임지게. 재활용 분리수거, 세탁기 돌리기, 빨래 널기 등 아이의 일을 정해놓고 시키세요. 아이는 공부만 하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부모가 돈만 버는 사람이 아니 듯이요. 공부만 잘하면 다 용서가 되는 편협한 아이로 키우지 않기를. 때로 힘든 일을 시키면 혹시 압니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엄마가 원하는 답이 나올지.


 그 중요한 공부이 두통거리는 어떻게 할까요.

     

‘공부’에 대한 화두로 딱 한 번만 아이와 진지하게 토론해 보시길. 공부하라는 말이 잔소리가 아니라 아이가 공감할 수 있도록 아이의 수준에 맞게. 그 후 ‘공부하라’는 말씀은 이제 그만.

‘공부는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 둬야겠지요. 그러나 이 말은 ‘공부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다’, ‘ 공부 잘해야 성공한다.’는 말이 아님을 분명하게 구별해야지요.

‘공부는 평생 하는 것’, ‘엄마도 공부한다.’, ‘시험공부가 공부의 다가 아니야.’, ‘공부가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알까?’, ‘네가 하고 싶은 일과 공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런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으면 좋겠죠.


 “너의 미래를 위해서 현재는 참아야 해!”, “다 너를 위한 거야!”, “공부해서 남 주냐?” “엄마 친구 아들은…….”  헉! 이런 말들은 제발!


 학원 문제는 어떻게?

이웃집 아이는 여기저기 다닌다는데…….(이웃집 아주머니와 이런 불안 유발형 대화는 자제를, 뜻을 같이 하는 용기 있는 이웃과  교제를.)

 공부를 잘하는 방법 중 핵심은 학교 수업시간. 최소한 고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걸로 충분하지요.

 물론 학원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어요.

이미 학교 수업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기초가 떨어져 있는 아이, ( 사실 이런 아이는 학원보다 개인적인 보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학교 수업은 거의 알아듣는 상위권 아이들. (목적이 있어 더 높이 도전을 하고 욕심을 내고 싶은 아이는 학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간의 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듣고 집에서 혼자 책상에 앉아 복습하고 예습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진짜~가장! 가장! 가장! 좋습니다. 학교 수업과 학원 수업을 다 소화해 내는 요상한 아이는 극히 일부랍니다. (어느 한쪽은 버리고 있다는 거죠.)


 방학 때 빈둥거리며 푹 쉬고 친구와 놀고 운동도 하고 여행 다니고 책 맘껏 읽고 식구들과 대화하고……. 그리고 일정 시간 혼자 책상에 앉아 그동안의 과정을 복습하고 다음 학기 예습하는 아이들이 정말 저력 있는 아이가 됩니다. 길게 보고 공부할 수 있기를.


 어머니는 방학 때 뭐 하고 계시나요?

     

 일단 집에 계시는 어머니

아이가 눈앞에 보이는 것을 불안해하지 마시길. 빈둥거리는 것을 고통스러워하지 마시길. 학교 다니면서 힘들었을 아이를 생각하고 맛있는 거 많이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엄마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먼저 엄마가 자신의 시간을 잘 보내시길. 엄마의 생활은 없이 온통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엄마를 아이는 많이 힘들어합니다. 나중에 “내가 누구 때문에 이랬는데 네가 이럴 수가…….” 이러면 아니 되옵니다.  


 직장에 다니시는 어머니 

엄마 없이도 아이 혼자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셔야겠죠. 계획을 짜서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격려해 주세요. 누가 감시하거나 간섭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하루 종일 혼자 있을 아이 생각에 미안해하거나 불안해하면, 아이도 자신을 못 미더워하거나 엄마를 어쩔 수 없이 속이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이 훈련이 지금 어릴 때 안 되면 사회 분위기상 자녀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관리해줘야 하는 불행한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수강 신청도 엄마와, 회사 상사와의 민원도 엄마와, 배우자와의 갈등도 엄마와... 끝이 없다네요.


 엄마가 자녀를 믿고 있다는 믿음을 주시고 진실로 믿어주세요. 간혹 속더라도……. 그리고 저녁에 만나면 꼭 안아주시든가, 공부 얘기 빼고 재밌는 얘기들을 나누세요. 엄마가 중심을 잡고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시면 아이는 바르게 성장하지요.


 우리 반 한 녀석을 소개합니다

 작은 녀석이 똘똘하게 생기고 웃는 모습이 얼마나 밝고 예쁜지, 예의도 발라서 제게 늘 기쁨을 줬던 아이예요. 청소도 잘하고 씩씩하죠. 근데 공부는 우리 반 거의 끝이랍니다. 가끔 자기네 가게에 꼭 보신탕 들러 오시라고 인사해요. 맛있다고요. 저는 이 아이가 참 좋습니다. 생활기록부에 이렇게 썼던 기억.

 “... 이 학생은 성적이 부족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노력하고 있으며, 인사성이 바르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아이입니다.”

 이 녀석은 앞으로도 뭘 하더라도 행복하게 살 거라 확신하죠.

우리 아이가 미래에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서 '지금' 인내를 요구하는 고통스러운 일들, 생각해 봐야겠어요.


 ‘현재가 행복하지 않은 아이가 미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늘 갖는 의문입니다.  

 아이들을 점수에 매달리게 하며 극한 경쟁 속으로 몰아넣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남을 이기고 어떤 행복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얻어서 '성공'한 아이들이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요.


  우리는 늘 세상 핑계를 대지요.

 “세상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우리가 만든 세상이지요.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지금 우리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다들 어디를 향하여 정신없이 질주하고 있는 걸까요.

 담임을 하면 방학을 맞아 벌써 걱정 한 짐의 부모님께, 성적표에 있는 가정통신란에 다음과 같이 적어 마무리합니다.


 “ 이 방학, 사랑스러운 자녀들과 함께 가정에서 평화롭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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