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귀한 아이들
" 아이구 참 그만두시길 잘했어요. 어른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대요. 우리 때는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요? 선생님께……."
무슨 말씀인지 감이 온다. 학교를 일찍 떠나온 게 '운이 좋은' 것이 되었고, 그런 것 같아 미안하고,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책임전가 하는 대처방식들에 참담했던 차다.
교단에 서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고 준비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집에서는 너무도 귀한 딸이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배우고 가르치며 잘 어울려 노는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고단한 근무 환경이지만 그렇게 교실에서 신나게 아이들을 만나고 있었을 것이다.
젊고 귀한 선생님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절망으로 몰아간 상황, 그를 애도하는 선생님들이 모여 절규하는 외침을 이 사회는 알아듣고 있는가.
누구의 인권을 줄여야 나의 인권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 아이들도 살고 선생님도, 부모님도, 이 사회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 이 아픔을 끝으로 정상적인 교육 환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두의 뼈아픈 성찰이 선생님의 죽음을 직시하는 가장 진실한 애도라는 것을, 이 사회는 알아듣고 있는가.
학교 현장과 관련된 불편하고 불행한 사건들, 터지고 해명하고 흥분하고 비난하고 법적 대응까지 이어지는 수순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막혀오고 답답하다.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된다.
선생님들과 한 해가 다르게 변화하는 '다른 인간 종 같은' 아이들이 살아가는 학교는 배움과 공생의 와중에 끊임없이 새로운 일이 터진다. 때로 전쟁 같기도 하고, 때로 코미디 한마당 같기도 하고, 때로 감동을 전해주는 살맛 나는 곳이기도 한 역동적인 공간이다.
이들 사이는 뭔 일이 터져도 어떻게든 지지고 볶으며 해결된다. 서로 간 기본적인 신뢰, 믿는 구석이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부모, 관리자, 교육청, 지역사회는 교육 현장을 지원하고 어려움이 생길 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협력자 역할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운이 좋은' 일기 둘
1. 알콩이 달콩이가 모여 사는 곳
얘들아, 어제 우리 반 음악시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선생님께 들었다. 장구를 배우는데 Y가 어색한 행동을 하고 몇 남자아이들이 낄낄거리고 하여 선생님이 너희들 야단도 치게 됐다는 말씀을 하셨다.
너희들에게 Y 얘기를 할 때 선생님은 조금 미안하다. 선생님 같은 어른들도 잘 못하는 것을, 어린 너희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
그러나 이런 마음도 있단다. 어른들은 못하지만 너희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리 반 녀석은 그게 되지 않을까? 선생님이 너희를 너무 '어른같이 다 큰 아이들'로 보는 걸까?
아직 팔팔한 중2인데?
그러면 녀석들은 '다 큰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본다. 연설 시작~
학과 선생님들이 수업을 방해하는 Y를 지도할 때 너희는 거기에 맞는 분위기로 정숙해주면 어떨까?
Y의 행동에 낄낄대거나 선생님의 지도에 짜증을 내는 반응을 보이면 선생님도 힘들고 Y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생각해 보거라.
그리고 우리 반 친구 Y.
앞으로 Y는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해. 많이 힘들지 않을까?
지금 잘 알아듣지 못해도 너희들과 같이 수업을 받고 같이 어울리는 시간을 갖는 이유지.
Y가 수업시간 45분간 앉아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고문일 수가 있단다. 너희도 수학 어려운 것 풀 때 못 알아들을 때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힘드니.
Y는 모든 시간이 그렇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움직이고 두드리고 수업 방해 행동을 하는 것이지. Y를 그냥 조용히 있으라고 하는 것보다 너희 한 명 한 명이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말도 해주고 같이 하는 게임도 하고 이렇게 간섭을 하면 안 될까?
학급의 구성원이라는 마음이 생기고 친구들이 자신을 대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Y의 마음과 행동이 조금씩 안정적으로 될 것 같다. 너희도 너희를 존중해 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부드러워지잖니.
Y가 2학년 마치고 3학년 올라갈 때 너희들을 고마운 친구로 기억하고,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경계심 없이 다가가는 친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Y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Y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때문에 힘든 것도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은 비장애자 위주로 구조화되어 있어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불편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일이 많단다. 계단이 누군가에게는 길로 안내하는 곳이지만 누군가에겐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이 길을 가로막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렴.
야단은 선생님만 칠게. 그것도 최소한의 것만, Y에게 필요한 것만 할 거야. 너희는 가능하면 친절하게 대해줬으면 좋겠구나. 선생님도 반성한다. 더 세심해야 하는데……. 노력할게. 우리가 아무리 불편해도, Y만큼 불편하겠느냐.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겠니?
아이들이 '다 큰 눈'으로 대답한다. 네!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방해를 하는 친구가 짜증이 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 때문에 수업이 끊기거나 억울하게 야단을 맞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 아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유형의 장애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인간이 갖는 이기심이나 아이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넘어, 어떻게 더불어 삶을 살아야 하는지 실제적으로 나누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같이 고민하고 이해를 구하면 녀석들은 그들 나름 알아듣고 이해하고 판단한다.
물론 팔팔한 중딩 녀석들이 이후 천사 같이만 지내기야 했겠는가마는, 큰 일 치르지 않고, 야단도 맞고 이해도 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지지고 볶으며 잘 마무리했다. 아이들이 많이 애썼다. 종업식 날 Y의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셨다. 감사한 일이다.
2. 작별 인사
선생님이 교단에 선지 올해 30년 됐다는구나. 발령받은 날, 그때의 아이들, 초창기의 아이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선생님은 인생에서 아주 잘한 선택이 세 가지 있단다. 그중의 첫째가 국어선생님이 된 거야.
국어를 좋아했고, 아이들과 문학을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연극을 하고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 이 뭔가 엄격하고 쉽지 않은 담임샘을 싫은 내색 없이 믿어주고 따라준 우리 반 아이들, 선생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아이들 운이 좋은’ 선생님이다. 참 멋진 아이들을 만난 거지.
고맙다. 특히 올해 너희들, 선생님을 이렇게 좋은 기억으로 평화롭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
선생님은 지금까지 제1의 청춘의 시기를 행복하게 교사 생활을 했고, 이제 늦기 전에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싶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싶고, 연극을 만들고 싶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싶다.
햇살 좋은 날 한가하게 서울길을 걸어볼 거고, 혼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논문을 찾아볼 거야. 그리고 선생님이 좋아하는 여행, 추운 날이나 아주 더운 방학 때 말고, 날 좋은 때에 아주 긴 길을 걷고 싶고, 긴 여행도 해보고 싶구나. 지금까지 했던 선생님으로서의 규칙적인 삶을 떠나 좀 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보려 해.
선생님이 잘 해낼 수 있겠지?
학교를 정리하려 마음먹었을 때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래 생각을 하고 결정을 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네 번째의 이 선택이 선생님을 긴장되고 설레게 하고 흥분되게 하는구나.
선생님은 신나게 놀고 여유 있게 공부하고 정성을 다해 봉사하는 시간을 가지려 해.
너희들도 카르페디엠!
너희들이 평화를 사랑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만들어가렴. 선생님도 그렇게 살게.
너희를 만난 것이 큰 축복이었음을, 다시 한번 감사하며, 사랑한다.
나의 귀한 제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