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쌤 Jul 27. 2024

티베트 1,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2007.7


 북경에서 티베트로 가는 찡짱 열차

     

 백두산에 갔던 선생님들과 같이 간다. 이번엔 어른들끼리만이다.

처음으로 애들을 놔두고 우리 둘이만 떠나는 '밖으로 여행'이다. 11박 12일의 일정이다.

아들은 내일 중국으로 선교여행 출발한다. 떠나는 날도 돌아오는 날도 봐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지만 녀석은 괜찮아 보인다. 그런 거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딸아이는 다행히 조카가 와서 같이 지낸다. 아이에게는 식구와 떨어져 혼자 지내는 것도 그 나름의 자유로운 경험이겠지 싶다. 어제는 아이들과 한강에 나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자고, 그리고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고, 건투를 빌었다.  


 티베트로 가는 찡짱열차를 탄다.

내몽고 호화홋에 갈 때 이용했던 베이징 기차역에 오다. 중국답게 사람들 바글바글이다. 예정했던 4인실 침대칸은 이미 물 건너갔고( 공항에서 7만 원씩 돌려받았다), 6인실 침대칸도 하늘의 별따기 식으로 얻었다고 하니 다행이나 문제는 우리 일행의 좌석이 다 떨어져 따로 가게 되었단다.

할 수 없다, 우리는 손짓발짓의 수고 끝에 사람들의 양해를 구해 자리를 13 호칸, 14 호칸에 모여 잡는 쾌거를 이룬다. 단 두 명, 내 남편과 한 선생님만이 해결이 안돼 저쪽 4 호칸으로 뚝 떨어지게 됐다. 내가 있는 14호까지 그가 놀러 오려면 산 넘고 물 건너오듯 와야 하는 긴 길임을 나중에 알다.

 이 열차로 48시간을 타고 간다. 기차에서 이틀 밤을 자는 거다.

일행 중 일부는 고산병 때문에 긴장도 하고 일부는 술을 먹는 걸로 여행의 본 게임을 시작한다.                                           

 


  찡짱 열차 안에서 48시간

     

 하루 종일 기차 안에 있다.

책을 보든지, 잠을 자든지, 풍경을 보든지, 대화를 나누든지, 먹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다. 이런 여행,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이런 생각도 절로 나며.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 칸으로 간다. 산 넘고 물 건너가는 길 같다.


 6인실을 몇 량 지나고 침대칸이 아닌 의자칸을 몇 량 건너간다.

의자칸을 지나갈 때가 문제다. 통로까지 사람이 꽉 차있어 지나가기가 미안하다. 48시간을 앉아서 가다니... 고꾸라져 자는 아이들, 구겨져 자는 사람들, 카드놀이 하는 젊은이들, 그 와중에 음식 해 먹는 사람들....

워낙 비싼 기차라 중국에서는 이 열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부유하다고 한다는데...

4인실 침대칸도 지나간다. 좀 더 우아하고 인간적이다. 여기에 묵었다면 이 여행은 훨씬 더 쾌적하였을 것이란 생각이 저절로 나지만, 그냥 의자에 앉아 가는 사람들 생각하면 저절로 마음 고쳐먹을 수밖에...


 식당에 앉아 간단한 점심을 먹는데 지나치는 풍경이 끝없는 평원이다.

이 많은 땅을 어디다 쓰나... 우리는 땅이야기를 또 한다. 다시 산 넘고 물 건너 우리 칸으로 온다. 중간층인 내 자리로 돌아와 누울 생각을 하면 기분이 참 좋다. 가끔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머리만 안 아프면 다 참을 수 있겠다. 여행 내내 이 머리가 걸릴 것이다.


  새벽 5시 반쯤 친구가 나를 깨운다. '꺼얼무'다. 여기부터는 티베트이다. 해발 2829m 잠시 정차한다. 아직 어두운데 밖은 추울 정도로 상쾌한 바람이 불고 별이 몇 개 떠있다. 완전 낯선 곳에 왔다는 설렘이 인다. 머리가 아프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세계 最高라는 초나호수를 지난다. 해발 4700m. 달리는 기차에서 한참을 배경으로 있는 걸 보니 바다라 해도 되겠다. 물이 너무도 푸르다. 사람들의 감탄이 이어지고 호수도 계속 길게 이어진다. 중간중간 설산이 보이면서 풍경들은 마음을 흔든다.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역이라 하는 '탕굴라 고개'(5027m)를 지나간다. 고산지대에 들어섰다 하니 물을 계속 마신다. 얘기도 나누고 앞에 앉은 중국인과도 얼굴을 익힌다. 라싸에 사는 중국인 꼬마의 얼굴도 익힌다.



 여행을 오기 전 찡짱열차를 대하는 마음은 복잡했다. 설렘과 긴장과 티베트인에게 미안함 등.

중국이 왜, 어떤 이유로 티베트를 침공하였는지 모르겠다. 대부분 그렇듯이 땅에 있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

 티베트를 도시화시켜 완전히 중국화 하려는 찡짱열차를 만든 숨은 의도가 아닌가 하고 많은 이들이 의심한다. 이 열차는 세계 최고, 세계 최장 등등의 최고의 기록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것이 티베트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기차를 타고 티베트를 간다. 이미 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변방 '신장'이라는 자치구로 전락했지만, 나는 침략자가 만든 불순한 열차를 타고 티베트란 나라를 여행한다.


 라싸로


 예정보다 1시간 이른 7시 50분에 수도 라싸에 도착한다. 3650m. 세계 最高의 도시. 라싸에 들어오면서 산중턱에 포탈라궁을 잠시 보다. 티베트아이가 포탈라! 를 외친다. 라싸역은 매우 크다.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정거장이다. 베이징역보다 잘 지어진 것 같다. ‘개통 1년’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그들의 한자를 대충 때려 맞춰보니 인민의 위대함으로 이루었다는 그런 내용도 들어있는 것 같다.

 아주 천천히 걷는다. 고산병은 언제 올지 모르니 절대 방방 뛰지 말라 했다. 라싸역 주변은 공원처럼 넓고 크게 잘 다듬어놨다. 광장은 연인들의 공간 같기도, 시민들의 휴식처 같기도 한데 생각했던 티베트의 분위기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중국 참 애 많이 썼네. 숙소도 현대식 호텔이다.


  라싸의 사원들을 순례하다


노블랑카

 달라이라마의 여름 궁전이다.

천으로 된 커튼으로 창문을 장식한 것이 티베트 건물의 특징인 듯하다. 그렇게 화려하거나 섬세해 보이지 않다. 티베트인들인지 중국인들인지 그들은 이 공간을 굉장히 신성시하는 것 같다. 실내는 사진도 못 찍게 한다.


 세라사원

스님들이 토론을 하는 사원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책에서 봤다. 토론은 3시에 이뤄진다는데 시간상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야크털로 촛대같이 세워둔 기둥이 인상적이다. 사원 안은 야크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토론장이 있는 본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길게 선다. 땡볕에 엄청 힘이 들다. 할머니가 어린 손자와 같이 힘겹게 올라와서 주저앉으신다. 물 한 모금 드리려 물병을 건네는데 통째로 갖고 건네주지 않는다.  

 오체투지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땡볕에 저게 가능한가. 한눈에 봐도 극한 체험 같다는 생각이다. 멀리 산에는 여러 부처의 모습을 그린 바위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포탈라궁

 궁 앞에는 외국인들이 줄을 서있다. 잠시 티베트할머니 옆에 앉아있는데 아는 체를 하신다. 준비한 인사말 ‘따시 딸래’ 인사를 드린다. 염주를 세면서 입으로는 계속 ‘옴마니 팟메훔’을 외신다. 따라 했더니 ‘옴마니팟메훔세’라고 하란다. ‘세’가 뭘까.

 4시 30분 입장하기 전 들어갈 수 있네 없네 설왕설래하더니 간단히 들어간다. 여기는 뭔가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고, 중요한 듯하면서 하나도 안 중요하고, 하나도 안 중요한 것은 매우 중요해지는 것 같고, 원칙적인 것 같으면서도 하나도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 같은 석연치 않은 분위기가 있다. 어쨌든 그 유명한 포탈라궁에 들어간다. 1시간 동안만 돌게 되어 있다 한다. 까다로운 규칙 하곤...

 날이 맑고 경치가 좋다. 주변 자연은 완벽한 티베트이나, 인공적인 분위기는 완전 중국이다. 이런 기분이 내내 맘에 걸린다. 중국이 맘에 걸리고 맘에 들지 않는다. 머리가 땡겼다 풀어졌다 한다. 고산증세인가 보다. 두통약을 하나 먹다.

 저 높이 보이는 붉은색과 흰색의 포탈라궁은 사진에서보다 실제가 오히려 품위가 있고 멋있다는 느낌이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데 기분이 좋다. 무지 뜨거운 날인데 습기가 없어 바람이 잠시라도 불면 상쾌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운동을 열심히 했던 덕을 보는지 숨이 차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힘들어하는데 끄떡없이 거뜬히 올라간다. 그렇다고 까불진 않는다. 어느 순간에 그놈이 찾아들지 모르니까 무지 겸손하게 걷는다. 궁전의 규모만큼이나 그 내부는 참으로 화려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어둡다.


 달라이라마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가이드는 조선족인데 말끝마다 ‘우리 중국, 우리 중국’ 한다. 같은 소수 민족으로서 티베트의 아픔을 알 텐데 그가 받은 교육이 철저한 것인지 진심인지 티베트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완전히 중국인 같다.

  포탈라궁은 내부보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좋았다. 가이드는 티베트의 역사 등을 감격적으로  계속 설명하는데 (이건 또 의외이다.) 별로 설명이 들어오지 않는다. 딱 1시간을 둘러보고 내려온다.

 티베트의 하늘은 정말 파랗다. 빛이 그냥 내리쪼인다. 하늘과 인간 사이에 한 치 간격이 없는 것 같이 날것으로 쪼인다.


 조캉사원

 조캉 사원 앞에는 오체투지의 물결이다. 참 놀라운 풍경이다. 또 한 번 묻게 된다. 무엇을 기도하는가. 그 깊은 신심이 무엇을 원하는가. 이승에서의 소망이나 욕망은 아닐 것이란 확신이 든다. 그렇게 온몸을 던져 바치는 이유가 이승의 것이나 욕망이나 가벼운 것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저승에서의 구원을 비는 것일까? 너무 경건하다. 사원 안은 내일 들어가기로 되어있다.


 한 시간의 자유 시간에 사원 주변에 형성된 바코르 시장을 돈다. 여기 시장의 모습도 재밌고 정겹다. 오체투지 하며 사원 주변을 돌고 있는 나이 든 할아버지, 이런저런 물건을 파는 상점들, 룽다를 달아놓은 티베트인의 집들... 우리가 티베트에 왔구나.


 30위안에 작은 마니차 한 개를 사다. 마니차를 돌리며 인파에 자연스럽게 묻혀 다닌다. 골목병이 도진 우리는 골목으로 들어가 넋 놓고 구경하다 곧 길을 잃었다. 조캉사원으로 가야 하는데... 같은 초보인 외국인에게 물어 간신히 원위치하다. 머리가 아파오다. 야크고기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기진맥진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녁 먹을 때 또 술을 먹더라. 완전 강심들이다.

어쨌든 내일 다시 기운차게 살아나기를 기도하며.                                                    


  조캉사원은 티베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사원으로 송첸캄포의 부인 당나라 사람 문성공주가 세웠다는 전설이 있단다. 티베트의 궁과 사원과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티베트를 통일시킨 '송첸캄포'라는 왕은 달라이라마와 함께 제일 많이 듣는 이름이다. 귀에 ‘송첸캄포’ 딱지 앉은 듯하다.


 입구에는 오체투지 하는 티베트인들이(남녀노소) 이미 자리를 잡고 깊숙한 절을 하고 있고, 한쪽에선 야크 기름과 차를 파는 사람들이 있고, 저쪽으로는 사원으로 들어가려는 티베트인들과 광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커다란 마니차를 돌리며 안으로 들어가는데 티베트인들은 끝이 없이 줄을 서 있고 외국인들은 조금 빠른 속도로 들어간다. 나중에 보니 관광객들은 설명을 듣고 빨리빨리 이동하는데 티베트인들은 한 곳 한 곳에 헌금을 하며 엄청 정성을 들여 참배하며 천천히 이동을 하는 거다.

 안으로 들어가니 숨이 막힌다. 머리가 아파오고 어두침침한 곳에 송첸캄포가 커다랗게 앉아있고  가이드의 여러 설명들은 이미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원 옥상으로 올라가니 먼 곳에 포탈라궁이 보인다. 어느 책에선가 조캉사원 위에서 바라본 포탈라궁 사진을 본 듯하다. 똑같은 장소에서 바라보니 책과는 달리 커다란 크레인이 포탈라궁을 딱 막고 서있다.


 우정공로 (friendship road)를 달리며


 티베트 여행의 진수라고 하는 우정공로로 들어선다.

라싸에서 네팔로 가는 국경도시 장무까지 725km 이어진 길이다. 길은 팅그리까지 편도 1차선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다음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와 장무까지는 비포장길이다.


 얌드록초 호수로 향한다. 最高인지 최고와 같은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높은 곳에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바다와 같은 넓고 푸른 호수가 있다 하니 얼마나 장관일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운전자도 같은 마음일까, 엄청 빠른 속도로 중앙선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험하게 운전을 한다. 앞이 안 보이는 굽은 길에서 앞차를 추월하는데 아찔, 그러나 뭐라 말해야 하지? 그 순간 옆 선생님이 기겁하여 ‘만만디!’를 외친다. 오, 만만디. 운전자가 갑자기 얌전해졌다. 서로가 놀랐다.


 가는 길은 너무 아름답다. 끝없이 펼쳐진 산이 나무가 있는 산은 아니다. 풀 한 포기 없을 것 같은 돌 혹은 흙으로만 된 산이다. 모래로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산이다. 그 이국적인 산이 너무도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아래서 간간이 나타나는 샛노란 유채꽃밭과 푸르른 밀밭(라이보리)과 함께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아, 이것이 진짜 티베트구나. 아름답다. 아름답다....


  한참을 잘 달리는데 장체쪽으로 꺾어지면서 군인인지 경찰인지 공안인지가 차를 세운다. 어젯밤 비가 많이 와 길이 무너졌다고, 그래서 얌드록초 호수를 갈 수가 없다고... 이런... 물론 호수를 보고 나오는 길이 무너져 그 자리에서 묶이게 되는 것보다는 훨 낫다고 갑자기 긍정적인 사고를 지니며 스스로 위로를 하게 됐지만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긍정적이 되어야 한다. 상식에 맞지 않는 엉뚱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으며,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안 되거나 되거나 하는 일이 많으니까) 참 아쉬운 부분이다. 해발 4441m에 위치해 있다는 꿈의 호수를 볼 수 없음이 정말 아쉽다.


 제2의 도시 시가체

 '타쉴훈포사원'에 도착. 여기는 달라이라마가 아닌 불교계의 이인자 판첸라마가 거한다는 사원이다. 사원의 꼭대기에 있는 마당에서 내려다보니 시가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 쪽에 거대한 건물이 하나 있는데 탱화(그들은 탕카라고 한다)를 다는 곳으로 5월 행사 때 탕카가 걸린다고 하니 도시 저 멀리서도 그림이 보일 것이다. 얼마나 멋있을까. 마당 한쪽에 노스님 두 분이 앉아서 얘기하고 계시는데 그들과 얘기 나누고 싶다. 그러나 티베트 말은 하나도 모른다.


 가이드에게 판첸라마에 대해 묻는다. 중국에서 인정한 짝퉁 판첸라마가 여기 타쉴훈포에 있고 티베트인이나 달라이라마가 인정하는 진짜 판첸라마는 북경에 억류되었다는데 사실이냐.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인 것처럼 완강하게 부정한다. 판첸라마는 딱 한 분뿐이며 지금 북경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가이드는 진짜 그렇게 알고 있을까, 그렇게 교육받은 미묘한 부분일까. 조선족 가이드는 정말 중국인인가 보다.


 경건한 일기-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오늘 하루는 행복하게 다녔습니다. 약 한 알 없이 하루를 견뎠으니까요.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고산병의 증세가 우리 팀에게는 크게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가끔 머리가 아프고 띵한 정도, 누구는 숨이 조금 차고, 누구는 감기 증상 정도이지요.

티베트의 산맥들을 확실히 잘 보고 있습니다. 티베트의 하늘을 보지 않고서는 하늘을 보았다 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아침에 '싸자사원 (사가사)'를 가는데 가는 길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이 감동의 연속입니다. 꾸불꾸불 험한 산길을 올라갑니다. 산을 몇 개 넘는 것 같습니다. 어느 곳의 제일 높은 지점에서 차는 멈춥니다. 운전사가 ‘가쵸라’라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5220m의 가쵸라 고개입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우리는 뒤차를 기다리는 동안 약 50m 정도 높은 곳에 있는 정상을 향해 올라갑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조금만 고도가 올라가면 숨이 찰 수 있어 지레 겁을 먹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올라갑니다. 주변은 참 아름답습니다. 오색 룽다가 걸려있고 부적 같은 색색의 종이가 날리는 모습이 축제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멀리서 볼 때는 지저분한 헝겊이 걸려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티베트 경전이 촘촘히 쓰여 있는 천으로 이것을 ‘룽다’라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고개에서 잠시 쉬면서 룽다를 사서 줄에 매달아 놓는 것입니다. 뻥 뚫린 풍경은 광활한 대자연 그 자체입니다.


 고개를 주욱 내려와 '싸자사원'으로 향합니다. 사원은 한창 공사 중인데 공사하는 방법이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공사하고 있습니다. 지게로 흙과 돌을 나르는 모습, 우물을 들어 올리는 모습, 흙을 골라내는 모습 아마도 우리의 예전 모습과 같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남녀노소가 하는 일에 차이를 두지 않고 다 동원되는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채로운 것은 사원 지붕에서 흙을 다지는 일을 하는데 여성 동지들이 모여서 노동요를 부르며 거기에 맞춰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원 안에서는 스님들이 돈을 세고 있습니다. 자루에서 걷어내 세고 있는데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으는 것 같더군요. 티베트의 사원과 궁을 돌면서 느꼈던 것, 티베트 인민들의 돈들이 모두 사원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로 돈이 아주 많이  쌓여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가이드가 타쉴훈포에서 한 얘기가 있는데 이렇게 사원에 헌금으로 들어온 돈은 나라에 다 고스란히 바쳐야 한답니다. 그 후에 나라에서 사원으로 다시 내려보낸다는데, 글쎄 얼마나 다시 돌려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찢어지게 가난한 티베트인들은 그들이 구걸을 하거나 공들여 벌어들인 작은 돈을 몽땅 다 절에 와 스님들께 바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오체투지까지 하면서, 마니차를 돌리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절하면서.... 그들의 신심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진짜 신심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스님은 돈 세느라 바빠서 도 닦을 시간이 없을 것 같고요.


 비포장길을 따라 지도에 나와 있는 이름 없는 호수 둘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어제 못 간 얌드록초 대신. 두 시간여를 가니 옥색의 호수가 나타납니다. 백두산 천지가 클까 이 호수가 클까 비교해 보고 싶을 정도로 아주 긴 호수입니다. 물색이 참 곱더군요. 얌드록초는 얼마나 멋있을까.... 그래도 폼 잡고 사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신나서 물수제비뜨기를 정신없이 했더니 그새 숨이 컥컥거리면서 기운이 빠집니다. 고산증세는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티베트에서는 절대 힘쓰거나 까불면 안 되는데 잠시잠시 까먹곤 합니다. 그놈의 경치 때문이죠.


 또 한 곳 들른 호수는 앞의 것보다 훨 컸지만 이상하게 물색깔이 따로 나지 않는 좀 평범한 호수였습니다. 호수 너머로 보이는 산이 오히려 멋있어서 파노라마로 사진을 찍어둡니다. 오가는 길에 야크들, 말들, 양들, 염소들, 그리고 점잖은 개들을 봅니다. 모두 순박하고 느긋해 보여요. 그들도 절대 함부로 뛰거나 까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차가 아무리 빵빵대도 그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네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길을 건넙니다. 아님 그냥 서있던가. 할 수없이 차가 비켜가야지요.

 라체 시내로 돌아와 저녁을 먹습니다. 오늘 묵기로 한 라체빈관이 바로 앞에 보이면서 밥맛을 딱 떨어지게 하고 한숨 나오게 하는데, 다행히 숙소가 좋은 곳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라체빈관은 도저히 잘 수 없는 곳이라면서요... 가이드에게 박수를 힘껏 쳐줍니다. 새로 지은 숙소에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푹 담급니다.  피로와 그 많은 먼지가 쏴악 날아갑니다. 여행의 묘미가 또 이런 것이겠지요. 사서 고생하고 조금만 편해져도 행복해하고...


 내일은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가는 날입니다. 아이들 생각도 나고 그들에게 고맙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실 분도 생각나고. 내일은 너무 기대됩니다. 조금 아픈 것은 참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밤새 잠이 오지 않고 시가 한편 떠오릅니다.

신동엽 시인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지붕 덮은 쇠항아리


아침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모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너무 좋아하는 시. 그래서 외웠던 시.

몇 번에 걸쳐 생각해내고 해서 적습니다. 다 맞는지는 모르겠고.

나라 잃은 티베트인을 생각하며 읊습니다.

이 세상을 경외하며 연민을 갖고 엄숙하게,

서럽게 살아가야 함을 다짐하며 반복합니다.

잠이 오지 않는군요.

몸은 몹시 곤한데, 머리가 하얗습니다.

 




이전 05화 태국, 만만치 않은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