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나라 짐바브웨, 잠비아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렘 찍고
잔지바르에서 2시간 동안 페리를 타고 수도 다르에스살렘으로 오다.
오는 배 안에서 생방으로 중계되는 독일 오픈 안세영의 경기를 보느라 노트북 화면에 정신 빼고 있는데, 저기 수도임을 알리는 고층 건물들이 떡허니 나타난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빌딩들이 생경하면서도 반가웠다. 아프리카에서 초원이나 동물 말고 이런 빌딩숲을 대하는 순간, 그때 나는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이 도시를 처음 접할 때 갖는 느낌, 이랬다.
오늘 일정이 이상하다. 버스로 달려 호텔에 오후 7시쯤 도착했는데 이후 각자 알아서 저녁을 먹고 호텔에서 잠시 몸을 누이고 새벽 1시에 나오는 거다. 그리고 공항으로 가서 아디스아바바를 경유하여 짐바브웨라는 나라로 들어가는 일정이란다.
이 도시에는 왜 왔는지, 비행기 연결 사정으로 이리 짜인 건지, 어쨌든 수도라는 것만 알고 통과하는 이 동선이 아깝고 이해가 안 된다.
일행 중 한 부부는 잔지바르에서 멈췄다. 거기서 귀국하기로 했단다. 남자분이 계속 열이 나고 뭘 먹지도 못하고 기운을 차리지 못하신다. 원인도 모르고 병원 환경이 열악하여 믿고 치료를 받을 상황이 아닌 듯하다. 얼마나 걱정되고 속상하고 복잡한 마음일까. 쉽게 오지 못할 곳인데, 큰맘 먹고 왔을 텐데... 일행들 맘이 무겁다.
짐바브웨와 잠비아
짐바브웨와 잠비아도 그렇고, '보츠와나'는 더욱 낯선 나라다. 세 나라를 가기 위해 한꺼번에 받는 카자유니비자를 받는다.
세계적으로 큰 폭포 셋(나이아가라, 이과수, 빅토리아)은 모두 두 나라에 걸쳐 있는데, 여기 빅토리아 폭포는 짐바브웨와 잠비아가 공유하고 있다. 이 두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온전히 빅토리아 폭포(빅폴)를 보기 위해서다.
처음 나이아가라를 봤을 때 경이로움과 함께, '안 그래도 땅도 넓고 부유한 나라에 이것까지 주시다니, 우리나라에 이 폭포나 그랜드캐년 같은 거 하나 주시지...' 이렇게 아쉬워했던 기억, 이과수에 가서는 그 넓이와 웅장한 폭포의 규모에 얼이 나갔던 기억, 이제 드디어 빅토리아 폭포를 보는 거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세계 3대 폭포'를 다 보는 행운을 얻게 되는 거다. 뭔 복인지...
잠베이지강 선셋크루즈
한 여행자가 유튜브에 올린 장면, 빅폴을 만들어내는 긴 강 잠베이지강에서 배를 타며 일몰을 보는 아름다운 장면을 봤다. 투어를 신청하다. 잠베이지 맥주와 와인에 곁들여 수프와 스테이크와 후식 등의 음식이 나온다. 사람들과 소소한 이야기 나누고 강에 펼쳐지는 해그림자를 보며 아주 잔잔한 강물을 거슬러 간다. 해가 바닷속으로 떨어지는 일몰은 아니고, 어디선가 지는 해의 노을이 사방으로 퍼지는 장면임에도, 어쩌면 한국의 바닷가에서 보는 일몰과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못할지라도, 우리는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고 설레는 것은, '여기는 아프리카야'라는 생각만 하면 모든 것이 더욱 각별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지.
빅토리아폭포와
리빙스턴이 이 폭포를 처음 발견했을 때 당시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라고 지었단다. 여기 원주민이 원래 부르던 이름은 "모시 오야 퉁야 (천둥 치는 안개)"라는데 짐바브웨로 들어오는 상공에서 저 아래 물안개가 연기처럼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거기가 천둥 치는 이 폭포.
먼저 잠비아로 넘어가 그쪽의 폭포를 보고 다시 짐바브웨로 넘어와 이쪽의 폭포를 걷는단다.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 여권을 들고 국경에서 절차를 밟는 것이 참 긴장되고 번거롭고 지루하다. 하나같이 권위적인 표정인 데다 뭐 하나라도 틀리면 일이 틀어질 것 같은 느낌을 풍겨 여행자를 주눅 들게 만드는 분위기가 싫다. 철저하게 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그렇지도 못한 느낌은 케냐에서부터 이 나라 오기까지 받은 인상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여기는 아프리카야.'로 퉁쳐야지.
짐바브웨 쪽의 폭포는 빅폴의 서쪽으로, 한눈에 담을 수 없는 넓은 폭을 가진 폭포는 거대한 물줄기를 내리꽂고 있다. 그야말로 천둥 치는 소리가 난다. 폭포가 쏟아지면서 뿜어내는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오른쪽에 펼쳐진 폭포를 보면서 걷고 있는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걷는 것과 같다. 우비를 입거나 옷이 다 젖거나이다. 외국인들은 수영복을 입고 걷는다기에 나도 수영복을 입고 래시가드를 걸쳤다. 오호! 앞으로 큰 폭포 갈 때는 필히 수영복과 래시가드 가져가라고 알려줄 거다. 젖어도 괜찮다. 걷다가 햇살에 바람에 자연스레 마르고, 물 맞으면 또 마르고. 차가운 폭포의 파편들은 뜨거운 햇살 아래 은총을 쏟아붓는 것 같다. 즐겁도다.
커다란 무지개가 겹으로 뜨고 있다. 천사가 긴 봉을 들고 둘러친 휘장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긴, 선명한, 오래오래 배경으로 멈춰있는 무지개는 처음이니까. 황홀하다.
하늘도 예술이다. 하나의 티끌도 없이 파란 것만 모두 모아놓은 듯한 완벽한 푸른 하늘, 오로지 하얀 것만이 겹겹이 모여 구름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여긴 아프리카라니까' 한 마디로 정리하는 듯하다.
이렇게 한 시간 동안 은총을 맞고 걷다. 걷던 길을 돌아가 폭포의 진원지인 잠비아강에 이르렀는데, 그런 천둥의 폭포를 만들어내는 강이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니. 맞다, 이과수를 걷고 상류 이과수강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그래서 놀랐었지.
이제 짐바브웨 쪽으로 간다. 폭포의 동쪽이다.
이 폭포의 폭이 약 1. 7km 정도, 높이는 최고 107m에서 떨어진단다. 폭포의 다양한 모습을 조망하도록 뷰포인트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고, 열몇 개의 코스가 있다. 일단 끝쪽으로 가서 거기부터 보면서 1번 포인트까지 오기로 한다.
걸으면서 이과수보다 폭이 넓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사실은 이과수가 훨씬 넓단다. 이과수 때보다 사람이 덜하여 번잡함 없이 곳곳의 멋진 모습을 좀 더 오래 붙들 수 있어서였나 보다.
우리는 환호하고 사진을 찍고 역시 쏟아지는 물보라의 은총을 맞으며 여유 있게 걷는다. 다른 관광객들의 표정들도 그렇게 싱그러울 수 없다.
쾌청한 날이 한몫한다. 폭포의 수량이 지금이 최대치란다. 막 쏟아진다. 짐바브웨나 잠비아에 이런 폭포를 주셔서 감사. 나이아가라에서는 '부익부' 이런 생각이 들어서 좀 아쉬웠다. 그러나 여기는 이 빅폴이 비자비와 입장료를 만들어내면서 경제의 큰 부분을 해결해 주고 살려주는 듯하여 다행이다 싶다.
빅폴의 서쪽 끝 지점, 강이 흐르는 절벽 위에 세워진 전망 좋은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다. 간이 부은 유쾌한 사람들을 위해 그 절벽을 가르는 짚라인이 있다. 대단한 인간들.
세련된 음식점에 흑인들의 매혹적인 사진이 걸려있다. 사실 나는 처음으로 흑인들의 '미'를 생각해 보는 것 같다.
음식도 좋고 맥주 한잔도 좋다. 맥주가 들어가는 시간은 감사가 나오는 시간이다. 하루의 중요한 일정을 마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오늘 하루 잘 보냈구나.' 쏟아진 은총과 함께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잘 견디고 있다. 잘 누리고 있다. 건강하게, 욕심내지 않고 하루하루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