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섬, 잔지바르라는 도시
킬리만자로 공항에서 약 1시간 20분 정도 날아가니 탄자니아의 휴양 섬 잔지바르에 닿는다. 구름 위로 모습을 드러낸 킬리만자로 정상을 보다. 반가워라.
잔지바르는 '검은 해안'이란 뜻. 페르시아인이 이 섬에 들어왔을 때 검은 피부의 사람들을 보고 지은 이름이고, 그룹 퀸의 멤버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이란다. 영화의 내용 중 하역장에서 일하던 그를 동료들이 인도 출신이라며 무시하는 대사가 문득 기억나는데, 인도 출신의 페르시아계 부모가 이곳에 정착하여 머큐리를 낳은 것이고, 그가 어린 시절 인도로 유학 가기 전까지 살던 집은 박물관이 되어 여기 머무는 동안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관광객이 끊임 없이 줄을 서고 있다.
향신료가 무엇이기에
향신료 농장에 가서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고 농장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는단다.
세계사 시간에 식민지 개척이 향신료를 얻기 위한 발광에서 시작한 것을 들었을 때 난 정말 이해를 못 했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거라고, 미식의 욕망이 얼마나 강하기에 남의 나라를 탐하며 목숨을 건 항해를 한다는 말인지. 여행하면서 이런 향신료 농장 탐방은 처음이다. 현지인 스텝이 한국어를 섞으며 향신료를 만드는 열매들, 나무들, 풀들을 익살스럽게 설명한다. 기억나는 것은 생강!
한 젊은이가 두 발에 끈을 단 채 저 높은 코코넛 나무 위를 훌쩍훌쩍 올라가는데, 아래서는 하쿠나 마타타 노래를 불러주며 흥을 돋운다.
노예무역의 그 자리, 스톤타운
잔지바르의 중심가 스톤타운은 노예무역을 하던 곳이다.
노예를 사고팔던 장소에 사슬을 채워놓은 그들의 모습을 조각한 조각상을 보다. 성공회 성당의 지하에 노예를 가둬놓은 시설을 보니 숨이 막힌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를 다시 생각하는 곳. 그러나 노예무역을 막기 위한 선교사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을 기념한 곳에 세운 성당이라니, 인간에 대해 절대 절망은 없다는 것도 확인한 곳.
골목골목이 미로로 이어지고 상점들이 끝이 없다. 흰 벽들을 가진 집과 상점들은 아랍과 인도풍의 집들이다.
3일간의 휴식
우리는 여기서 아무 투어도 하지 않고 온전히 쉬기로 한다. 잔지바르는 안전하다니 이 스톤타운 지역을 가볍게 돌아보고 몸을 충전하기로 한다. 날이 습하고 뜨거워 낮에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겠다. 숙소에 머물며 밀린 빨래도 하고 틈틈이 에어컨 나오는 카페에 들러 케냐와 탄자니아 편 여행기를 정리할 예정이다. 고단한 여행 중 가능할지 모르겠다만, 일단 초고라도 올리는 걸로 해야겠다.
9시도 안 되어 빨래방에 빨래를 맡기고 해변 잠시 도는데 벌써 땀이 나고 호흡이 '흡! 헙! 컥! 헉!'하다.
해변은 아름답다만 안 되겠다. 조금 걷다 숙소로 얼른 도피하자 하는데 깔끔한 카페가 보이다. 보석도 팔고 투어도 하고 카페도 하는 회사 건물 안에 있는 에어컨 빵빵한 카페다. 바리스타 청년이 사람 좋은 얼굴로 커피를 내려오고 사진도 찍어준다. 난 이제 피부 검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적응했다고 봐. 친절하지 않은 이들이 없다. 바깥은 체감온도 37도라고 나오니 나갈 엄두도 안 나고, 여기는 이제 설설 추워지려 한다. 보아하니 여기 카페들은 에어컨이 없다. 내일도 모레도 이곳으로 피신 와야겠다.
이틀째 호텔에서 휴식 중. 일행들은 오늘 섬 투어를 갔고, 우리는 느지막하게 일어나 뽈레뽈레(천천히) 조식을 먹고, 어슬렁거리며 스톤다운 거리로 나선다. 해가 구름에 가려있어 어제 아침보다 공기가 훨 여유롭다.
어제 안 가본 새로운 골목으로 들어서니 저기 가방을 멘 아이들이 걸어간다. 따라가니 이슬람 초등학교가 나오고 학교 문은 아직 열리지 않은 모양, 검은 히잡을 쓴 아이들이 정문 앞에서 놀고 있다. 어디나 부지런한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 더운 날 히잡이 바람은 잘 통하는지 모르겠다.
열린 상점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의 색들을 보자니 그 밝고 선명한 색감 따라 기분도 상쾌해지는 아침이다. 한 아주머니는 그 귀하다는 물로 가게 앞 계단을 물로 쓸어낸다. 힐끗 본 가게 안도 정갈하다.
냄새 참기 힘든 생선 가게도 얼른 지나고 우리의 남대문 시장 같은 큰 시장도 지나가는데 시장통이 끝이 없다. 여기 스톤타운은 줄줄이 상가인데, 그 많은 물건을 누가 다 사는 걸까. 소비자가 그렇게 많을까?
도로가 나오고 차들 오토바이들 쌩쌩 달리고 해도 튀어나오고 먼지 범벅들이고, 지도를 보며 항구까지 오는데 여기서 많은 ‘삐끼’ 아저씨들이 붙는다. 어떤 아저씨는 자기는 삐끼가 아니라면서 섬투어를 하라며 다가온다. 단호히 '노' 하는 소리에 점잖게 물러나는 거 보니 마구잡이로 달라붙은 유형의 삐끼는 아니란 뜻이었나 보다. 고마워라. 아, 사람들 헤치고 나오니 낯익은 해변이 나온다.
어제 갔던 에어컨 빵빵인 카페로 오다. 아마 여기서 에어컨 있는 유일한 카페가 아닐까 싶고, 아이스커피와 콜라를 얼음과 함께 마신다. 아, 살 것 같다. 무지 습하고 덥다더니 정말 낮에 돌아다니는 것 아닌 것 같다. 섬투어 간 사람들은 괜찮으려나.
저녁에 해변으로 나와 노을을 보다. 인도양의 해가 지고 있다. 배가 떠 있고 라마단의 초승달이 떠 있는 곳에서 해가 떨어진다. 아름답다. 일행 중 한 분이 올려주신 사진이 예술이다. 라이언킹에 나오는 색감이 바로 이것이었다. 마사이족이 두른 담요나 옷도 이런 색이었다. 탄자니아 사람들이 입던 옷도 이런 색이었다.
부유하지 않으나 그건 문제없어. 우리의 삶은 선명하고 진실하게 나아갈 거야. 하쿠나 마타타!
내일은 빅폴로 떠난다. 짐바브웨, 잠비아, 그리고 처음 듣는 나라 보츠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