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라이언킹 탄자니아
어젯밤 나이로비에서 탄자니아 킬리만자로공항으로 날아오다.
비행시간이 한 시간 정도인데 별 안내도 없이 한 시간 넘게 연착한다. 게이트에 있는 직원들은 그들만 바라보고 있는 외국인들 시선은 아랑곳없이 그들끼리 긴 수다를 떤다. 여기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데 아프리카니까 봐줘야 하나?
프로펠러 비행기가 서있는 활주로 쪽으로 걸어가 비행기를 탄단다. 앞쪽으로는 짐을 싣고 사람들은 뒤쪽에 있는 출입문으로 직원이 부르는 좌석 순서대로 두 명씩 탄다. 그런 비행기 처음 타고 좀 불안하기도 한데 생각보다 덜 흔들리고 가볍게 날아왔다. 아프리카에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킬리만자로를 수도 없이 오르고 이곳이 좋아 눌러앉았다는 젊은 한국인 가이드의 야무진 설명을 들으며 숙소에 도착, 12시가 넘었다.
킬리만자로 트레킹
킬리만자로 산은 아프리카 최고봉으로 5895미터란다.
해발로 따지지 않는다면 에베레스트보다 높은 산이라지만, 용필오라버니의 고독이 서리서리 피어난 노래로 우리에겐 아련하고 친숙한 산이다 보니, 나는 이 산을 트레킹 한다는 생각만으로 떠나오기 전 이미 많이 설렜다.
숙소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간에 떡 나타난 봉우리! 그 꼭대기의 흰 자태가 환상이다.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눈이다. 저 눈 쌓인 정상이 차츰 녹고 있단다.
그곳에 구름이 끼면 그 또한 환상이라는데, 그러나 오늘 트레킹 중에는 저 산을 한 번도 볼 수 없단다.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차에서 내려 사진에 담는다. 한라산과 많이 닮았다. 제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라산처럼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저 산도 우뚝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걷는 길은 1814m에서 시작하여 2700m 높이까지 오르는 '마랑구루트'란다. 약 8킬로 걷고 같은 길로 하산하는 왕복루트로 걷는데 약 7시간 예상한다.
입구에서 참으로 오랜 시간 기다리다. 새벽부터 달려왔는데 뭐 하느라 입장을 못하게 하는지. 가이드들의 움직임이 급하지 않다. 방문객을 일일이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 모양이다. 전산으로 예약하고 바로 확인하고 들어가는 우리나라 등반 시스템 좀 도입하면 안 되겠니. 이 산이 좋아 먼 나라에서도 많이들 찾아온다는데 우리가 좀 조급해하면 그냥 '하쿠나마타타(다 잘 될 거야)'란다. 어제 공항에서도 그리 늑장을 부리더니, 땡볕에 한 시간 넘게 지체하는 게 참 속 터진다.
포터 겸 가이드 네 명이 우리의 점심 도시락을 짊어지고 간다.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등정도 아니고 트레킹인데 어째 나는 좀 어색하다.
초입길부터 열대우림이 이어진다. 한 시간 여 올라가는 길은 평이한 오솔길로 되어 있어 평화롭기까지 하다. 제주의 곶자왈처럼 숲이 무성하고 푸릇하다.
그러다 이어 자갈길인 임도가 시작된다. 길이 좋지 않다. 그리고 정말 킬리만자로는 그 자태는 물론이고 어떤 바깥 풍경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 킬리만자로에 왔는데, 여기가 킬리만자로라는 것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냥 아무 산의 우림에 들어온 것 같다.
막판에는 그런 길로 계속 오르막길인데 덥기도 하고 길이 참 재미없다. 힘든 것은 아닌데 주변에 곶자왈 외에는 아무 경치도 보이지 않으니 그냥 오르기만 하는 길이 되고 있다.
다만 이 장면, 무엇을 지고 가는 것인지, 가끔 포터들이 이따만한 짐을 머리에 이고 지고 오르고 내려가면서 인사를 한다. 사람들이 ‘잠보!’ 인사를 건네면 같이 '잠보 잠보!" 답하며 지나간다. 하나같이 웃으며 인사를 받는다. 우리가 무거운 짐에 인사하느라 힘들겠다 싶어 인사하지 않으면 그들이 먼저 인사하며 지나간다. 대부분 그렇다. 어떤 긍정적인 힘인가. 일이 있어서 행복한 건지, 삶이 그렇게 행복한 건지 모르겠다. 케냐도 그렇고 여기 탄자니아에서 만난 사람들이 늘 웃으며 인사한다. '하쿠나 마타타'의 행복지수일까....
가이드들이 지고 온 점심을 먹다. 김밥에 미역국, 치킨과 과일. 한국음식점에서 싸 온 것이다. 킬리만자로에서 미역국이라니... 정말 잘 먹었다.
올라왔던 길로 내려오는데 그나마 초입 때 걸었던 그 열대우림 대신 주욱 임도로 내려오다. 죽는 줄 알았다. 자갈길에 몇 사람이 미끄러진다. 나무들에 가려 주변 풍경 역시 볼 수 없다.
나처럼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찾았을 거고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물을 찾는 다른 선택 여행이 있었다.) 아니면 산을 타지 않은 사람이 '킬리만자로'여서 찾았을 터인데, 이 코스는 뭔가 이상하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며칠이 걸리는 길이라지만, 우리나라 큰 산들도 산을 다양하게 누릴 수 있도록 길을 얼마나 잘 만들어놨는데, 작은 산도 길을 얼마나 예쁘게 만들어놨는데, 이 높고 멋진 산의 길이 이게 최선인가? 아직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길을 만들지 못한 것일까?
돌길을 내려오며 앞에서 무심히 걷는 가이드에게 이런저런 것을 묻는다.
탄자니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달라니,
'탄자니아는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합쳐서 된 연합국이라고, 자기 나라는 평화로운 나라'라고 덧붙인다.
부족 간 내전이 없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라고 읽고 왔는데 자국인이 그렇게 느끼고 있구나. 좋겠다.
'나는 평화로운 나라가 정말 좋아. 우리도 평화로운 나라였음 좋겠는데 지금 그렇지 않다'니, 김정은에 대해 주르륵 얘기한다. 폭력적인 것 같아 싫단다. 그렇구나.
이들은 우리와는 영어로 이야기하면서도, 그들끼리는 우리가 하나도 못 알아듣는 말로 어찌나 시끄럽고 활발하게 떠드는지 모른다. 국어샘의 입장에서 언어가 궁금할 수밖에.
"너희들 쓰는 언어는 뭐야? 글자는 있니?"
그들에게는 세 부족이 각기 모국어가 있지만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쓴단다. 문자는 없고 영어의 알파벳으로 표기한단다. 그렇구나. 우리도 그럴 뻔했는데 세종대왕님 덕분에 위대한 문자를 갖고 있지. 얼마나 다행이고 대단한지...
"너는 네 나라를 좋아하니?"
우리나라의 젊은이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 젊은이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특히 열악한 나라에 사는 젊은이들은 자기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20대의 젊은 가이드는 자기 나라를 무척 사랑한단다. 이 어려운 나라가 자기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자리가 많이 부족한 것 같고, 거리에 그냥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고, 아마도 차비가 비싸서일 듯 땡볕에 차가 달리는 도로 옆을 걸어가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이들은 나라를 진정 사랑한단다. 무거운 짐을 이고 가는 포터도 해보았고, 사실 포터가 가장 힘들지만 돈은 가장 적게 벌고, 사파리 운전자가 가장 쉬운데 돈은 가장 많이 번다고, 자기도 그것을 하고 싶다고 한다. 탄자니아의 젊고 진지한 가이드,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길 바라요. 하쿠나 마타타!
갑자기 다리 흔들리게 무지 빠르게 내려오게 되다. 한 사람이 나를 제치고 빠르게 앞서 걸으니 앞서 안내해야 하는 가이드가 더 빨리 내려가면서 속도가 붙는다. 이 길을 이렇게 내려가면 안 되는데... 저 뒤에는 일행 중 몸살과 설사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잘 내려오고 있을까. 죽음이었을 것이다. 내려와 한참을 차에서 기다리는데 뒤에 내려온 그 사람의 얼굴은 예상한 대로다. 다시는 '등산' 이런 거 하지 않겠단다.
이런, 킬리만자로가, 겨우 트레킹이 이렇게 만들다니...
아, '나 킬리만자로를 걸었어' 이렇게 만족하라는 것인가.
응고롱고로의 마사이족
2박 3일 일정으로 사파리를 가는 날, 짐을 따로 챙겨 떠난다.
어제 놀란 몸이 어구구 많이 뻐근한데 울퉁불퉁한 길이 사정없이 몸을 다시 흔들어댄다. 아침 7시 반부터 12시간여, 지프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덜컹이며 흙먼지 휘날리며 세렝게티 (끝없는) 초원으로 향한다.
기린이 훌쩍 나타나고 코끼리 세 마리 보고 누도 보고 하이에나도 아주 잠시 보고 가벼운 톰슨가젤들은 엄청 보다. 이것은 맛보기일 게다. 정말 끝이 안 보이는 광활한 초원에 그들이 있다. 우리 눈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풀을 뜯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 또한 만만찮은 먹이사슬의 관계들이 있을 터.
세렝게티로 오기 전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지나는데, 세렝게티에서 이 지역으로 내몰려 사는 마사이족 마을을 방문하다. 커다란 나무 아래 관광객을 환영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모인다. 남자들은 나무지팡이를 들고 위로 뛰어오르는 그들의 전통춤을 추고 여자들은 그에 맞춰 각기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른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열심히 부르는 것도 같고 형식적인 것도 같다. 방문객도 함께 어울리는데 같이 열심히 그들을 따라 하니, 옆에 있던 젊은이가 웃으며 '땡큐' 인사를 한다. 그들의 전통의식을 같이 해주는 것이 진심 좋았나 보다. 다음 순서는 그들의 가옥을 둘러보는 시간. 두 사람이 한 가정을 방문하도록 배치가 된다. 우리를 자기 집으로 안내한 사람은 '미두(큰 비라는 의미라고)'라는 세 아이의 아빠, 다른 사람들과 달리 레게머리를 한 것이 특이하다.
그의 집을 들어갈 때 우리 보고 핸드폰 조명을 켜란다. 실내가 완전 컴컴하다. 돌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온다. 그것이 유일한 조명인 듯, 해가 떨어지면 그냥 잠만 자야 하지 않을까. 작은 초가집 안에는 아이들 방과 부부방 이렇게 작은 방 두 개와 화덕이 있는 부엌. 끝.
여자는 음식을 만들고 남자는 양이나 염소를 치는 일상, 이렇게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일인당 20달러를 받고 환영식을 하고 집을 안내하기도 하고, 마당에 펼쳐진 장터에서 작고 조잡한 물건을 판다. 관광수입은 공동으로 물을 구입하는데 쓴다고 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들은 많이 가난하다. 무엇이 자랄까 싶은 척박한 땅에서 산다. 오는 길에 어린 소년들이 양이나 염소를 치는 모습을 보았다. 어른들은 먼지 속에서 곤한 듯, 무념한 듯, 수줍은 듯 관광객을 맞이한다. 힘의 상징이었던 마사이족, 그러나 사자를 때려잡던 예전의 용맹은 이제 없다고 가이드가 전한다. 용맹과 자존의 힘이 빠진 가난한 부족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어둑해서야 세렝케티 공원 내에 있는 롯지로 들어오다. 여기서 이틀밤 자는 거다.
롯지가 텐트처럼 엉성한 천막으로 되어 있어 잠시 긴장했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의외로 넓고 있을 것 다 있는 호텔이다. 물론 도회지에 있는 호텔과는 다르지만 척박하고 깊숙한 곳에 이런 문명적인 시설이 있다니...
단, 밤에는 하마나 무셔운 동물들이 천막 근처로 올 수 있으니 절대 나가지 말라고 숙소의 젊은 스텝이 진지하게 얘기해 준다. 별이 떨어진다 했는데 어떻게 확인하나.
세렝케티 사파리
지프차를 타고 본격적으로 사파리 시작하다.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여행이다.
세렝게티는 '끝없는 평원'이란 뜻이란다. 영화 '라이언킹'의 배경이 여기라니 떠나오기 전 이 영화도 다시 봤다. 색감이 참 선명하다고 감탄했는데 여기 탄자니아에 오니 그 색깔이 과장이 아님을 알겠다.
오늘 본 동물이 무엇이었냐 하면,
얼룩말 지브라, 떼로 몰려다니는 그들을 볼 때 정말 세렝게티에 왔구나 했다. 몰려다니는 모습이 질서 정연하게 보인다.
그리고 눈 반짝이며 호기심을 빛내는 임팔라들, 깔끔하게 뛰는 그들이 쿨하고 날렵하다.
키 큰 나무에 목을 올린 기린들, 역시나 그들의 걸음걸이는 우아하단 말밖에 표현할 수 없다.
코끼리들은 왜 믿음직스러운 거지? 느릿느릿 움직임이 하쿠나마타타 그 자체다.
톰슨가젤은 옆구리에 검은 줄무늬가 있어 엉덩이에 M자를 보이는 임팔라들과 이제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다.
레오파드, 표범이라니. 사파리운전자가 나무를 가리키는데 처음엔 못 알아봤다. 자세히 보니 나무줄기에 누워 꼬랑지를 밑으로 내린 채 꿀잠을 자고 있다. 표범이 그렇게 앙증맞고 세상 편한 모습으로 늘어져 자고 있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 아기 표범인가 보다.
드디어 제일 보고 싶었던 사자를 보다.
암사자와 그 작은 새끼들 다섯 마리가 흙바닥에 정신 빼놓고 자고 있다. 한 마리는 나무 가지 사이에 코를 박고 자다가 시끄러운지 실눈을 뜨고 일어난다. 바위 위에 근엄하게 갈기를 휘날리며 있어야 하는 사자가 정신줄 놓고 자고 있다니, 지프차들이 그들을 에워싸도 모른다. '라이언킹'에서 본 멋진 수사자 '심바'의 모습은 절대 아니다.
지프차는 먼지 휘날리며 달리고, 운전자들은 무전기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동물들을 찾아다닌다. 어디쯤에서 앞서던 차가 멈추면 나머지 차들이 다가가 조용히 멈춘다. 사파리 운전자들은 오랜 경험으로 단련된 전문가의 특별한 눈을 가진 듯하다. 차가 멈춘 곳에서 자세히 보면 거기에 진짜 어떤 동물이 있다. 나뭇가지에 비스듬히 걸터 있는 레오파드 같은 애들은 일반인은 절대 알아챌 수 없다. 우리는 지붕이 열린 차 위로 머리를 내밀고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들을 찾아다니는 모습들이 재밌기도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편 우습기도 하다.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찻소리와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그들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자고 있는 애들은 "잠 좀 자게 해 줄래?" 하는 것같이 눈을 비비고 하품하다 한번 훑어보곤 귀찮은지 그냥 또 잔다.
나무에 기대어 정신없이 잠을 자는 아기 사자나 레오파드 모습이 귀엽다. 엄마 코끼리의 다리 밑에 딱 달라붙어 있는 아기 코끼리 역시 충분히 작고 귀엽다. 기린은 아기라 해도 훤칠하지만 정녕 어린아이 느낌 나고, 임팔라 작은 아이는 마른 강아지 같고, 길을 잃고 혼자 멍하니 서있는 어린 누는 애처롭다.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를 관심 있게 본 적 없는 내가 동물을 귀여워하다니, 게다가 그들이 고마운 건 또 뭔지. 그들의 땅에서 잘 크고 있어 고맙다. 어린아이가 잘 커줘서 고마운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그들대로 행복하기를. 그들 간섭하지 말고 인간은 인간들끼리 잘 살기를.
세렝게티의 초원을 달리며 생각난 노래가 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이상적인 나라, 내가 꿈꾸는 나라.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나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도 같이 뒹구는
참 사랑과 평등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잔지바르 섬으로
킬리만자로 공항에서 약 1시간 20분 정도 날아가면 탄자니아의 휴양 섬 잔지바르에 닿는다. 오늘 비행기에서 본 킬리만자로는 구름 위로 나타났다.
잔지바르는 '검은 해안'이란 뜻. 페르시아인이 이 섬에 들어왔을 때 검은 피부의 사람들을 보고 지은 이름이고, 그룹 퀸의 멤버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이란다.
향신료 농장 향신료 농장에 가서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고 농장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는다.
세계사 시간에 식민지 개척이 향신료를 얻기 위한 발광에서 시작한 것을 들었을 때 난 정말 이해를 못 했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거라고, 미식의 욕망이 얼마나 강하기에 남의 나라를 탐하며 목숨을 건 항해를 한다는 말인지. 여행하면서 이런 향신료 농장 탐방은 처음이다. 현지인 스텝이 한국어를 섞으며 향신료를 만드는 열매들, 나무들, 풀들을 익살스럽게 설명한다. 한 젊은이가 두 발에 끈을 단 채 저 높은 코코넛 나무 위를 훌쩍훌쩍 올라가는데, 아래서는 하쿠나 마타타 노래를 불러주며 흥을 돋운다.
스톤타운 잔지바르의 중심가 스톤타운은 노예무역을 하던 곳이다.
노예를 사고팔던 장소에 사슬을 채워놓은 그들의 모습을 조각한 조각상을 보다. 성공회 성당의 지하에 노예를 가둬놓은 시설을 보니 숨이 막힌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를 다시 생각하는 곳. 그러나 노예무역을 막기 위한 선교사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을 기념한 곳에 세운 성당이라니, 인간에 대해 절대 절망은 없다는 것도 확인한 곳.
골목골목이 미로로 이어지고 상점들이 끝이 없다. 흰 벽들을 가진 집과 상점들은 아랍과 인도풍의 집들이다.
3일간의 휴식
여기서 3박을 한다. 우리는 아무 투어도 하지 않고 온전히 쉬기로 한다. 잔지바르는 안전하다니 이 스톤타운 지역을 가볍게 돌아보고 몸을 충전하기로 한다. 날이 습하고 뜨거우니 낮에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겠다. 숙소에 머물며 밀린 빨래도 하고 틈틈이 에어컨 나오는 카페에 들러 케냐와 탄자니아 편 여행기를 정리할 예정이다. 여행 중 가능할지 모르겠다만, 일단 초고라도 올리는 걸로 해야겠다.
9시도 안 되어 빨래방에 빨래를 맡기고 해변 잠시 도는데 벌써 땀이 나고 호흡이 '흡'하다.
해변은 아름답다만 안 되겠다. 조금 걷다 숙소로 얼른 돌아가자 하는데 깔끔한 카페가 보이다. 보석도 팔고 투어도 하고 카페도 하는 회사 건물 안에 있는 에어컨 빵빵한 카페다. 바리스타 청년이 사람 좋은 얼굴로 커피를 내려오고 사진도 찍어준다. 난 이제 피부 검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적응했다고 봐. 친절하지 않은 이들이 없다. 바깥은 체감온도 37도라고 나오니 나갈 엄두도 안 나고, 여기는 이제 설설 추워지려 한다. 보아하니 여기 카페들은 에어컨이 없다. 내일도 모레도 다시 와야겠다.
이틀째 호텔에서 휴식 중. 일행들은 오늘 섬 투어를 갔고, 우리는 느지막하게 일어나 뽈레뽈레(천천히) 조식을 먹고, 어슬렁거리며 스톤다운 거리로 나선다. 해가 구름에 가려있어 어제 아침보다 공기가 훨 여유롭다.
어제 안 가본 새로운 골목으로 들어서니 저기 가방을 멘 아이들이 걸어간다. 따라가니 이슬람 초등학교가 나오고 학교 문은 아직 열리지 않은 모양, 검은 히잡을 쓴 아이들이 정문 앞에서 놀고 있다. 어디나 부지런한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 더운 날 히잡이 바람은 잘 통하는지 모르겠다.
열린 상점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건들의 색들을 보자니 그 밝고 선명한 색감 따라 기분도 상쾌해지는 아침이다. 한 아주머니는 그 귀하다는 물로 가게 앞 계단을 물로 쓸어낸다. 힐끗 본 가게 안도 정갈하다.
냄새 참기 힘든 생선 가게도 얼른 지나고 우리의 남대문 시장 같은 큰 시장도 지나가는데 시장통이 끝이 없다. 여기 스톤타운은 줄줄이 상가인데, 그 많은 물건을 누가 다 사는 걸까. 소비자가 그렇게 많을까?
도로가 나오고 차들 오토바이들 쌩쌩 달리고 해도 튀어나오고 먼지 범벅들이고, 지도를 보며 항구까지 오는데 여기서 많은 ‘삐끼’ 아저씨들이 붙는다. 어떤 아저씨는 자기는 삐끼가 아니라면서 섬투어를 하라며 다가온다. 단호히 '노' 하는 소리에 점잖게 물러나는 거 보니 마구잡이로 달라붙은 유형의 삐끼는 아니란 뜻이었나 보다. 고마워라. 아, 사람들 헤치고 나오니 낯익은 해변이 나온다.
어제 갔던 에어컨 빵빵인 카페로 오다. 아마 여기서 에어컨 있는 유일한 카페가 아닐까 싶고, 아이스커피와 콜라를 얼음과 함께 마신다. 아, 살 것 같다. 무지 습하고 덥다더니 정말 낮에 돌아다니는 것 아닌 것 같다. 섬투어 간 사람들은 괜찮으려나.
저녁에 해변으로 나와 노을을 보다. 인도양의 해가 지고 있다. 배가 떠 있고 라마단의 초승달이 떠 있는 곳에서 해가 떨어진다. 아름답다. 일행 중 한 분이 올려주신 사진이 예술이다. 라이언킹에 나오는 색감이 바로 이것이었다. 마사이족이 두른 담요나 옷도 이런 색이었다. 탄자니아 사람들이 입던 옷도 이런 색이었다.
부유하지 않으나 그건 문제없어. 우리의 삶은 선명하고 진실하게 나아갈 거야. 하쿠나 마타타!
내일은 빅폴로 떠난다. 짐바브웨, 잠비아, 그리고 처음 듣는 나라 보츠와니!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