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와 마사이 나라
응고롱고로의 마사이족
2박 3일 일정으로 사파리를 가는 날, 짐을 따로 챙겨 떠난다.
어제 놀란 몸이 어구구 많이 뻐근한데 울퉁불퉁한 길이 사정없이 몸을 다시 흔들어댄다. 아침 7시 반부터 12시간여, 지프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덜컹이며 흙먼지 휘날리며 세렝게티 (끝없는) 초원으로 향한다.
기린이 훌쩍 나타나고 코끼리 세 마리 보고 누도 보고 하이에나도 아주 잠시 보고 가벼운 톰슨가젤들은 엄청 보다. 이것은 맛보기일 게다. 정말 끝이 안 보이는 광활한 초원에 그들이 있다. 우리 눈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풀을 뜯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 또한 만만찮은 먹이사슬의 관계들이 있을 터.
세렝게티로 오기 전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지나는데, 세렝게티에서 이 지역으로 내몰려 사는 마사이족 마을을 방문하다. 커다란 나무 아래 관광객을 환영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모인다. 남자들은 나무지팡이를 들고 위로 뛰어오르는 그들의 전통춤을 추고 여자들은 그에 맞춰 각기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른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열심히 부르는 것도 같고 형식적인 것도 같다. 방문객도 함께 어울리는데 같이 열심히 그들을 따라 하니, 옆에 있던 젊은이가 웃으며 '땡큐' 인사를 한다. 그들의 전통의식을 같이 해주는 것이 진심 좋았나 보다. 다음 순서는 그들의 가옥을 둘러보는 시간. 두 사람이 한 가정을 방문하도록 배치가 된다. 우리를 자기 집으로 안내한 사람은 '미두(큰 비라는 의미라고)'라는 세 아이의 아빠, 다른 사람들과 달리 레게머리를 한 것이 특이하다.
그의 집을 들어갈 때 우리 보고 핸드폰 조명을 켜란다. 실내가 완전 컴컴하다. 돌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온다. 그것이 유일한 조명인 듯, 해가 떨어지면 그냥 잠만 자야 하지 않을까. 작은 초가집 안에는 아이들 방과 부부방 이렇게 작은 방 두 개와 화덕이 있는 부엌. 끝.
여자는 음식을 만들고 남자는 양이나 염소를 치는 일상, 이렇게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일인당 20달러를 받고 환영식을 하고 집을 안내하기도 하고, 마당에 펼쳐진 장터에서 작고 조잡한 물건을 판다. 관광수입은 공동으로 물을 구입하는데 쓴다고 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들은 많이 가난하다. 무엇이 자랄까 싶은 척박한 땅에서 산다. 오는 길에 어린 소년들이 양이나 염소를 치는 모습을 보았다. 어른들은 먼지 속에서 곤한 듯, 무념한 듯, 수줍은 듯 관광객을 맞이한다. 힘의 상징이었던 마사이족, 그러나 사자를 때려잡던 예전의 용맹은 이제 없다고 가이드가 전한다. 용맹과 자존의 힘이 빠진 가난한 부족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어둑해서야 세렝케티 공원 내에 있는 롯지로 들어오다. 여기서 이틀밤 자는 거다.
롯지가 텐트처럼 엉성한 천막으로 되어 있어 잠시 긴장했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의외로 넓고 있을 것 다 있는 호텔이다. 물론 도회지에 있는 호텔과는 다르지만 척박하고 깊숙한 곳에 이런 문명적인 시설이 있다니...
단, 밤에는 하마나 무셔운 동물들이 천막 근처로 올 수 있으니 절대 나가지 말라고 숙소의 젊은 스텝이 진지하게 얘기해 준다. 별이 떨어진다 했는데 어떻게 확인하나.
그대들을 만나러, 사파리
지프차를 타고 본격적으로 사파리 시작하다.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여행이다.
세렝게티는 '끝없는 평원'이란 뜻이란다. 영화 '라이언킹'의 배경이 여기라니 떠나오기 전 이 영화도 다시 봤다. 색감이 참 선명하다고 감탄했는데 여기 탄자니아에 오니 그 색깔이 과장이 아님을 알겠다.
오늘 본 동물이 무엇이었냐 하면,
얼룩말 지브라, 떼로 몰려다니는 그들을 볼 때 정말 세렝게티에 왔구나 했다. 몰려다니는 모습이 질서 정연하게 보인다.
그리고 눈 반짝이며 호기심을 빛내는 임팔라들, 깔끔하게 뛰는 그들이 쿨하고 날렵하다.
키 큰 나무에 목을 올린 기린들, 역시나 그들의 걸음걸이는 우아하단 말밖에 표현할 수 없다.
코끼리들은 왜 믿음직스러운 거지? 느릿느릿 움직임이 하쿠나마타타 그 자체다.
톰슨가젤은 옆구리에 검은 줄무늬가 있어 엉덩이에 M자를 보이는 임팔라들과 이제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다.
레오파드, 표범이라니. 사파리운전자가 나무를 가리키는데 처음엔 못 알아봤다. 자세히 보니 나무줄기에 누워 꼬랑지를 밑으로 내린 채 꿀잠을 자고 있다. 표범이 그렇게 앙증맞고 세상 편한 모습으로 늘어져 자고 있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 아기 표범인가 보다.
드디어 제일 보고 싶었던 사자를 보다.
암사자와 그 작은 새끼들 다섯 마리가 흙바닥에 정신 빼놓고 자고 있다. 한 마리는 나무 가지 사이에 코를 박고 자다가 시끄러운지 실눈을 뜨고 일어난다. 바위 위에 근엄하게 갈기를 휘날리며 있어야 하는 사자가 정신줄 놓고 자고 있다니, 지프차들이 그들을 에워싸도 모른다. '라이언킹'에서 본 멋진 수사자 '심바'의 모습은 절대 아니다.
지프차는 먼지 휘날리며 달리고, 운전자들은 무전기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동물들을 찾아다닌다. 어디쯤에서 앞서던 차가 멈추면 나머지 차들이 다가가 조용히 멈춘다. 사파리 운전자들은 오랜 경험으로 단련된 전문가의 특별한 눈을 가진 듯하다. 차가 멈춘 곳에서 자세히 보면 거기에 진짜 어떤 동물이 있다. 나뭇가지에 비스듬히 걸터 있는 레오파드 같은 애들은 일반인은 절대 알아챌 수 없다. 우리는 지붕이 열린 차 위로 머리를 내밀고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들을 찾아다니는 모습들이 재밌기도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편 우습기도 하다.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찻소리와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그들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자고 있는 애들은 "잠 좀 자게 해 줄래?" 하는 것같이 눈을 비비고 하품하다 한번 훑어보곤 귀찮은지 그냥 또 잔다.
나무에 기대어 정신없이 잠을 자는 아기 사자나 레오파드 모습이 귀엽다. 엄마 코끼리의 다리 밑에 딱 달라붙어 있는 아기 코끼리 역시 충분히 작고 귀엽다. 기린은 아기라 해도 훤칠하지만 정녕 어린아이 느낌 나고, 임팔라 작은 아이는 마른 강아지 같고, 길을 잃고 혼자 멍하니 서있는 어린 누는 애처롭다.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를 관심 있게 본 적 없는 내가 동물을 귀여워하다니, 게다가 그들이 고마운 건 또 뭔지. 그들의 땅에서 잘 크고 있어 고맙다. 어린아이가 잘 커줘서 고마운 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그들대로 행복하기를. 그들 간섭하지 말고 인간은 인간들끼리 잘 살기를.
세렝게티의 초원을 달리며 생각난 노래가 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이상적인 나라, 내가 꿈꾸는 나라.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 나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도 같이 뒹구는
참 사랑과 평등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