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니어링 1, 이 부부가 사는 법
젊은 날 처음 이 책을 읽고 기록해 놓은 흔적엔 '죽음'에 관한 내용만 있다.
몸이 활발하게 움직이던 때, 막연하거나 너무 먼 주제였을, 완곡어나 금기어로 사용했을 법한 이 단어, '죽음'을 그들 부부는 어떻게 그리 담담하고 의연하게 그릴 수 있을까 놀라웠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이제 죽음과 삶의 경계를 심하게 구분하지 않고 죽음을 '진심으로' 생각해 볼 때 다시 읽다. 죽음보다 '두 사람의 삶'이 더 진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물론 죽음을 외면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 말이다.
스코트가 100세 생일을 맞이하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은 헬렌이 87세에 쓴 글이라 한다.
내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법이 없다. 인간의 기품이 가득한 생각들이 자연스럽고도 단단하게 이어진다.
탄생과 죽음은 우리 지식의 한계를 표현하려고 지은 말이다.
한 친구가 자기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 우리에게 썼다.
“죽음은 단지 지평선입니다. 지평선을 우리가 볼 수 있는 한계를 표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나는 스코트가 새 지평선을 찾기 위해 앞으로 나갈 뿐이라고 느꼈고, 그이가 좋아하는 우화를 떠올렸다.
“ 나는 바닷가에 서 있다. 내 쪽에 있는 배가 산들바람에 흰 돛을 펼치고 푸른 바다로 나아간다. 그 배는 아름다움과 힘의 상징이다. 나는 서서 바다와 하늘이 서로 맞닿는 곳에서 배가 마침내 한 조각구름이 될 때까지 바라본다. 저기다. 내가 가버렸다. 그러나 내 쪽의 누군가가 말한다. ‘어디로 갔지?’ 우리가 보기에는 그것이 전부이다. 배는 우리 쪽을 떠나갔을 때의 돛대, 선체, 크기 그대로이다. 목적지까지 온전하게 짐을 싣고 항해할 수 있었다. 배의 크기가 작아진 것은 우리 때문이지. 배가 그런 것이 아니다. ‘저기 봐! 배가 나타났다!’ 하며 다른 쪽에서는 기쁜 탄성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튜브에 '나이 듦', '노년', '행복', '인생'……. 이런 제목을 단 내용들이 부쩍 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어떻게 후회하지 않는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인가……. 이런 유형의 질문에 대한 조언, 상담, 가르침들일 것이다. 그 수많은 내용들을 간추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아마도 이 부부의 삶으로 요약되지 않을까 싶다.
'삶과 사랑과 철학과 죽음', 인생을 통틀어, 아니 인생을 넘어 저 '지평선 너머'로 흐르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보았다는 느낌이다.
이 부부가 사는 법이 공감이 되고 존경스럽기도 하여 꼼꼼하게 그 삶을 기록하고 싶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묘법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시했다.
1.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2.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라.
3.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4. 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
5.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에 땅을 느껴라.
6. 농장일 또는 산책과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라.
7. 근심을 떨치고, 하루하루씩 살아라.
8.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누라. 혼자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무엇인가 주고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를 도와라.
9. 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라. 할 수 있는 한 생활에서 유머를 찾아라.
10. 모든 것에 내재해 있는 하나의 생명을 관찰하라.
11. 모든 피조물에 애정을 가져라.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은 나이 차이가 스무 살이 넘는데 그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다.
성격은 완전 다르다고 봐야 할까.
치밀하고 이성적인 한 사람과 자유롭고 감성적인 한 사람이다.
둘은 관심 분야나 살아온 방식도 많이 다르다.
그러나 50년 넘게 함께 살아오면서 그들은 한 곳을 바라보며 그들의 다른 책 제목처럼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그들의 아름다운 삶을 정리해 본다.
1. 스코트 니어링에 대하여
지적이고 지혜롭다. 몸을 건강하게 하며 정신은 더욱 건강하다. 자신뿐 아니라 이웃 사회 세계 우주에 대한 성찰이 깊고 책임감이 있다.
그는 생각한 대로 산다. 그의 생각들을 가감 없이 그의 삶에 일치시켰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것일지라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맞고 옳으면 그대로 살려했다. 핑계나 변명이나 ‘현실이 어쩌구’ 하며 물러나지 않는다. 인간과 인류와 생명체를 위해 옳은 것을 생각하고 생각한 것은 그대로 실천하려 했고 그렇게 산 것 같다. 이 점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자신에게 철저할 뿐 아니라 타인이나 가까운 가족에게도 타협 없이 그렇게 요구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소비 지향적이고 물신적이고 천박한 사고를 경멸하는 그는 자녀가 편리함을 좇고 그런 유형의 상류층의 길을 가고 있을 때, 마음의 빚을 졌음직한 자식에게도 분명하게 요구하고 주장한다.
그것은 비양심적인 일이며, 착취에 가담하는 것이며,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도움을 주는 못된 짓이라고.
자신은 철저히 산다 해도 자식은 그렇게 키우지 못해서 모순을 일으키는 일은 없다. 하여 이 말을 듣지 않았던 자식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고집불통이거나 비정하다는 느낌보다는 철저함이 느껴진다.
사랑하는 동지, 동역자 헬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그렇게 한 길로 걷도록 이끈다. 그는 돌아가는 법이 없다.
2. 헬렌 니어링에 대하여
헬렌이 없었다면 스코트가 가능했을까?
“어려웠을 것이다.”가 나의 결론이다.
그녀의 능동성과 적극성이 놀랍다. 수동적이거나 억지로 같이 가는 모습이 아니다. 기꺼이 배우고 존경하며 함께 한다. 농촌에서의 가난한 삶은 여성에게 더욱 힘든 환경일 수 있으나 그녀 역시 잘 감당한다. 부인으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인 동등한 인격체로서 그녀의 삶이 느껴진다.
불평이나 힘든 소리가 없다. 힘들었으나 남편 때문이나 생활고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이 부분이 아주 궁금하고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이 궁금증은 다음 회에 발행할 그녀의 책 "소박한 밥상"에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3. 이들은 이웃과 지구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는 행동을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한다.
그들 둘만의 조화로운 삶이나 실천적인 삶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다. 그래서 강연에 나가고 연설을 하고 책이나 잡지를 낸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하나도 없다. 인류에 대한 사명감으로 즐겁게 한다.
‘인간이 얼마큼 선하고 위대할 수 있을까’를 느낀다.
4. 이렇게 살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일까.
자신감!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이 인류의 지향점이라는 확고함, 인식의 깊이, 박학다식함……. 이런 능력이 있다.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으니 그렇게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둘이 함께!
혼자보다 자기를 전적으로 지원하는 동반자가 옆에 있다는 것이 이상에 날개를 달아준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건강하게 옆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자원이 아니었을까.
스코트는 첫 부인과는 그런 교류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별거 중이었고, 그녀가 죽은 후 헬렌과 결혼을 하였다. 헬렌은 젊은 날 크리슈나무르티와 영적인 사랑에 빠지고 헤어진 이후, 스코트와의 만남으로 이 '완벽한' 사랑을 이룬 것.
부부 관계!
둘은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 북돋우며 정신적인 교류를 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함께 실천하는 충실한 삶을 살았다. ‘남성’ ‘여성’을 넘어, 인간과 인간이 만나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관계였다는 생각이다.
5. 현자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 이들 삶의 정점이 아닐까.
마지막 죽을병이 오면 나는 죽음의 과정이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1.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나는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에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기를 바란다.
나는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그러므로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찬가지로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2.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 없다.
3. 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하게 가고 싶다. 따라서 주사, 심장 충격, 강제 급식, 산소 주입 또는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리를 함께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이해,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바란다.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
스코트니어링은 준비한 대로 그렇게 새 지평선으로 넘어갔다.
헬렌은 스코트가 떠난 후 8년이 지난 후 이 책을 썼고, 몇 년 뒤 그녀도 조용히 새 지평선으로 넘어갔다.
단정하고 건강한 삶을 살다가,
누구의 손도 타지 않고 나의 마지막을 내가 결정하면 좋겠다.
소박하고 당당한 삶을 살다가,
나룻배를 타고 고요하고 평화롭게 수평선을 넘어가면 좋겠다.
아름다운 한 삶을 꼼꼼히 기록하며, 나의 삶을 돌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