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제주 공항 근처, 바다를 앞두고 구석진 골목에 낮은 집 한 채 있다. '바라나시', 찻집 겸 책방이다. 조그만 방 몇 개로 된 공간, 사방은 인도풍의 주인이 모았을 법한 책들로 가득 차 있다. 판매하는 새 책도 있다. 별 인기 있지는 않으나 이 공간처럼 '뒷골목'에서 사유하는, 사유하게 하는 책일 것 같은 주관적 느낌을 주는 책들.
제주에 오면 들르는 서점이 몇 있다. 평화롭고 편안한 쉼의 공간. 여기에서는 다리를 뻗고 누워 책을 읽을 수 있다. 내가 찾는 자리는, 랭보는 나를 외면하고 있지만 카프카가 나를 요렇게 바라보고 있는 방이다.
이 미국의 시인은 지금 나와 같은 시간을, 나와 같은 세상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인가.
표현하기도 쉽지 않고 느끼기도 흔치 않은 형용사인데, 나와 똑같은 감정을 가진 이가 이 공간에 같이 있다는 건가, 이런 떨리는 우연이 있을까.
다른 많은 날들에도 그랬듯이 작은 노래 하나가 내 마음에 흐른다. 음악적이라 노래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냥 말들이다. 이상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하나의 생각이다. 사실 그런 오후에 그런 생각을 안 한다면, 머리와 몸에 그런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 말들은 이렇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난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세상에 주어야 할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완벽한 날들’ 중에서
글의 서문부터 나를 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은혜처럼 쏟아지는 축복에 감탄하며 완벽한 시간을 찬양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나는 무슨 선물을 할 수 있을까"라니. 세상에, 나는 그런 생각을 해봤을까. 이 아름다운 세상 누리는 것을 고마워하고 감동하고, 그리고 조금 미안해하고 끝!
"이 세상에 어떤 선물을 줘야 할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라니, 시인이 달리 시인이 아니네. 나도 그런 발상을,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볼까나…….
일어나 책을 구입한다. 내 책으로 읽어야지.
차를 마시며 잠시, 사람들이 남긴 메모가 빼곡한 수첩을 펼쳐보다.
익숙한 H의 그림과 이니셜. 이 사람은 정말 나와 무슨 인연인 거야. 이틀 전에 다녀간 흔적이다. 여기에서 두 번째다.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기원하는 그 인연의 강 바라나시가 맞네.
반가운 마음에 톡을 보낸다. 역시 경쾌하게 답이 온다.
"이 정도면 우리 결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전생에 그랬을지도.
세상은 아침마다 우리에게 거창한 질문을 던진다. '너는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이 책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나에게 시는 세상에 바치는 찬사다. 이 책에서 여러분은 산문들 사이에서 시 몇 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시들은 작은 ‘할렐루야’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시들은 산문과 달리 무엇을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저 책갈피에 앉아 숨만 쉰다. 그 시들은 몇 송이 백합 혹은 굴뚝새 혹은 신비한 그림자들 사이의 송어, 차가운 물, 거무스름한 떡갈나무다.
정신을 환희로 깨운다.
이 땅을 걷고 이 자연을 누리며 느꼈던 나의 ‘완벽한 나날들’에 대해 늘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대하던 마음은 너무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것인지 몰라.
그래 내가 이제 무슨 선물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고 길을 잡게 만드는 한 줄, 가슴이 뛴 한 줄을 만나게 된 것이 인연이고 운명이다.
집에 와 그녀의 다른 책들도 구입해 읽다. 결이 비슷하다. 걷고 읽고 쓰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어떻게 살까를 깨어 실천하는 사람임을 알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며 깊숙하게, 진심을 모아 사는 작가에게 사랑과 경의를!
예술가들이 하는 모든 종류의 창작은 세상이 돌아가도록 돕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우려는 것이다. 그것은 평범함과는 완전히 다르다. 창작은 평범함을 부정하진 않는다. 단순히 다른 것일 뿐이다.
비범함이 어디서 일어나고 어디서 일어나지 않는지, 그 장소들의 목록을 만든 사람은 아직 없다. 하지만 지표들은 있다. 군중 속이나 응접실, 평화로움이나 안락함, 즐거움 속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범함은 야외를 좋아한다. 집중하는 정신을 좋아한다. 고독을 좋아한다.
'긴 호흡' 중에서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 란 부제가 달린 그녀의 산문집 '긴 호흡'(마음 산책, 2019)은 글 쓰려는 이에게, 젊은 시인에게 주는 글이다.
제목으로 감 잡기는 단지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길게 보고 글을 쓰자고 위안을 얻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길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님을 알다. ‘평화로움’과 ‘안락함’을 누리는 나는 역시 글을 쓰기 쉽지 않겠다는, '조준' 확인** 받은 느낌이다. 작가의 제안과 진심을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그의 시집 '기러기'(마음산책, 2021)의 시들.
불가사리
나의 두려움은 작아져갔지./불가사리들이 물속에서/ 꽃처럼, 불확실한 꿈의/ 얼룩들처럼 피어나는 사이.
블랙워터 숲에서
우리가/ 영원히 그 의미를 알지 못할/ 구원이 있지./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만 하지./ 유한한 생명을 사랑하기./ 자신의 삶이 그것에 달려 있음을 알고 그걸 끌어안기./ 그리고 놓아줄 때가 되면/ 놓아주기.
시집 '기러기' 중에서
작가가 오래 살았다는 매사추세츠 주의 프로빈스타운, 그녀가 일상을 살고 자연을 만나고 자연과 하나가 되고 그 아름다운 세상을 시로 풀어낸 곳을 구글지도에서 찾아봤다. 쭉쭉 손가락으로 펴보니 미국 동쪽 끝 북대서양으로 둘러싸인 너른 바다와 케이프코드만에 있는 곶이 만나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자연과 함께, 자연에 안겨 살면서, 산책을 하거나 숲을 걷거나 늪을 지나거나 바닷가를 거닐거나 배를 타거나……. 이렇게 지냈단다.
아주 미세한 생명에서부터 불가사리, 따개비, 뱀, 올빼미, 고래 등 이들과의 교감, 이들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 마을 사람들 이야기, 아침에 바닷물에 몰려든 수많은 까나리들, 기괴한 아귀들의 서사가 촘촘하고 흥미롭게 펼쳐진다.
아름답고도 원초적인 삶의 현장에서 겪는 일들, 생각들, 감상들, 분노, 안타까움, 바람들…….
그러나 무엇보다 기쁨, 환희, 햇살의 은총, 찬사들을 표현한 것이 정녕 '할렐루야'답다.
150여 편의 시들은 자연 예찬, 바로 짝사랑의 다른 표현들이다.
"사랑하는 이 세상에 어떤 선물을 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온전히 이 의미를 생각한다.
사랑과 실천을 삶으로 구체적으로 밝힌 이 글을 필사하고 싶다.
아름다운 문장이어서,
정신이 명료한 글이어서,
내가 닮고 싶은 글이어서,
내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자연,
세상을 향한 지침서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