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우리 가운데는 자신을 깊이 탐색해 거기서 발견한 보물을 이웃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가까이 사귀어라. 그리하여 너 자신의 깊은 경지로 들어가 두려움과 우려와 절망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되는 영성의 오솔길을 걸어라.
'틱낫한, 너는 이미 기적이다' 중에서
창 넓은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는데 국회정문 쪽에서 번잡한 소리가 들려온다.
구호 외치는 소리, 격정적인 연설 소리,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 확성기 틀어놓은 고농도 기계 소리…….
억울한 개인적인 사연부터 사회의 '불의하다'는 일을 알리는 것까지, 동조나 동참을 요구하는 강력한 분노와 저항의 표시일 텐데, 난 지금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겠다. 하나로 뭉쳐 어지러운 소음으로 들려온다.
그러다 느닷없이 이런 느낌이 드는 거다.
‘저들이 좀 무례하지 않나?’하는 불쾌감.
"내가 진리이니 제발 따라오라고!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무지한 이들을 계몽한다고 닦달하는 오만한 소리로도 들린다. 눈앞을 가리고 하늘을 가리는 정당들의 무질서한 현수막들을 볼 때도 그랬다.
지금까지 이러지 않았다.
저쪽 사람인 것 같으면 나는 눈을 흘기고 듣기 싫어하고, 이쪽 사람인 것 같으면 동조해 주고 응원하고 싶어 하고,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멀리서 듣자니 저 소리가 시민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이고 무례한 소음으로 들린다. 심지어 우리 편의 절규라 하더라도 말이다.
한편으로 불편하다.
내 평화를 깨치는 것을 불쾌해하는 소시민의 무관심, 이기심 아닌가? 내게 놀라는 마음이 있다. 그들에게 어떤 억울함, 어떤 사정, 어떤 진실이 있는지 알려고 노력은 해봤니? 손으로 쓴 피켓을 들고 오랜 시간 서있는 사람의 얼굴을, 그들이 쓴 글을 잠시 멈춰 서서 읽어보기는 했니?
한편으로 반성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내 생각이 옳음을 알리려고 조급해하며 시끄럽게 하지 않았는가. 이쪽저쪽 구분하며 비난하며 정죄하며 니 편 내 편 가르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정의가 핍박받는다고, 불의가 오히려 기승을 부린다고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우울해하고 있지 않은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등의 현장에서 어느 한쪽 편에 서려고 한다. 편파적인 증거나 남의 말에 근거해 그른 것에서 옳은 것을 가려낸다. 우리는 행동하려면 분개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합법적이고 정당하다 해도 분개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정의로운 행동에 기꺼이 뛰어들려는 사람들이 부족한 게 아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으면서 전체 현실을 껴안을 수 있고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다. 굶주리는 아이들의 몸이 자기 몸으로 보일 때까지, 살아 있는 중생의 아픔이 자기 아픔으로 느껴질 때까지, 마음 챙김과 화해를 연습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참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비의 눈으로 보고 사람들의 고통을 참으로 덜어 줄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중에서
마음이 심란할 때이다. 내 안의 나와 겨루고 있는 때이다. 나와 너를 심하게 분별하고 있는 때이다.
그래서 틱낫한 스님을 찾았을 것이다.
상식을 믿고 사람을 믿으면, '지금 이 땅을 걷고 있음이 기적'이라는 그 말씀을 진심으로 이해하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아름다운 밭을 갈게 되지 않을까.
타인에 무심하지 않고 신뢰하며 기다리면서 보물을 발견한 이웃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불안과 우울과 조급함과 화를 다스리며 고요히 오솔길을 걷고 싶다. 분별을 내려놓고 걷고 싶다.
하루아침에 이를 경지는 아니란 것을 안다.
그러나 하루아침이 중요하다는 것부터 깨닫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