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자연분만 이야기
4월의 어느 날,
나는 아이를 낳았고
(내시점)
얼렁 뚱땅이는 태어났다.
(얼뚱시점)
그것도 예상치 못하게
자. 연. 분. 만.으로_
좀 더 빠르게 기록을 남겼으면 좋았겠지만
처음으로 접한 '육아'란 세계는
머릿속에 육아 빼고는 아무것도 용납하지 않는,
이른바
정확한 매뉴얼이 입력되지 않은
회로 꼬인 로봇처럼 오류가 뜬 채
얼레벌레 6개월이 흐른 것 같다.
(물론 그 오류는 현재진행형이다)
출산초기는 핸드폰 끄적 일시 간에
잠보충이 우선이었고
백일이 지났을 때는 육체적 고단함으로_
그냥 그러한 이유들_
육퇴 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졸려서 눈이
끔벅끔벅_
나는 얼렁 뚱땅이를 갖은 후 단 한 번도
자연분만을 할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_
쌍둥이는 여러 가지 위험상황 때문에
제왕절개가 대부분이므로.
물론 자연분만을 원하는 둥이맘들은
자연분만으로 유명한 선생님들을
찾아가기도 한다.
나는 제왕절개를 고집하지도
자연분만을 고집하지도 않았지만
당연스레 제왕절개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때는 바야흐로 벚꽃의 계절
4월.
그간 조심한덕에 경부길이도 짧아지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었고
조산의 위험성도 없었기에
쌍둥이 만삭으로 보는 37주 예정일을
정서적으로는 평온하게 기다렸고
육체적으로는 꽤나 힘들게 보내고 있었다.
막달에 다가올수록
위가 꼬이는 듯한 통증과 위경련 때문에 응급실을 가기도 했고
이틀에 한 번씩은 오바이트를 했다.
오히려 임신초기보다 훨씬 고생한 막달_
약 먹고 수액도 맞아가며
이 시간도 결국 지나가겠지
생각하며 버텼다.
입덧지옥은 없었지만 막달지옥은 있었다.
힘들었지만 이 또한 감사한 기억_
예정일을 앞둔 이틀 전
태동검사를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별다른 조짐이 없었기에
그냥 마실 나가듯 쭐레쭐레~
머릿속엔 온통
아산병원 지하에서 오늘은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ㅋㅋ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를 보는데
내가 느끼질 못하는 정도의 진통이 계속 잡혀
이대로 집에 보내기는 안될 것 같다며
입원을 권유했다.
별다른 진통 못 느꼈는데..
다만 전날 어김없이 극심한 위경련으로
토를 10번 정도하고 몸무게도 1.5kg 빠진 상태였고
토가 넘어오면서 배가 심하게 출렁거려 아가들이 잘 있나
걱정은 좀 된 상태였다_
생각해 보면 잦은 위경련과 구토 증상이
나에게는 출산의 징조였던 것 같다.
얼렁 뚱땅이가
"저희 이제 방 뺄 거예요."라고 보낸 신호_
무튼 쭐레쭐레 왔다 졸지에 입원_
막달에는 흔히 있는 일이 라지만
내가 겪을 줄은 몰랐다.
출산까지는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인 것 같다.
남편이 급히 와서 입원수속을 마쳤고
아산병원 고위험산모실에 입원.
(출산하는 곳에 바로 옆에 있는 입원실)
조금 더 디테일한 검사를 진행하였다.
늦은 오후까지도 별다른 증상을 못 느낀 채
나의 담당의 원혜성 교수님을 뵈었다.
(원혜성교수님은 정말 갓혜성)
교수님과 수술일을 상의하며
원래 예정일인 이틀뒤에 낳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내일 나올 것 같은데 하시면서도
좋다는 날짜 받아온 거니 예정대로 해보자며
환자인 내 의견을 들어주셨다.
그렇게 이틀뒤로 수술날짜를 잡고
고위험산모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다.
일반병실로 옮긴 후
밤이 될 때 까지도 별다른 진행이 없어
며칠 밤샘일을 한 남편을 집에 가서 편히
자라고 보냈다.
남편도 출산 이후부터 시간을 비우기 위해 근 2주를 매일같이 새벽까지 일했던 터라
어차피 수술은 낼 보레고
한 사람이라도 편히 자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_
언뜻 보면 쿨내진동하지만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나는 뼈. 저. 리. 게. 후회했다.
남편을 10시 정도에 보내고
나도 급작스런 입원에 피곤해서 자는데
배가 생리통처럼 살살 아프기 시작!
일어나서 화장실을 갔는데 작게 이슬이 묻어 나왔다!! 이슬이 묻어나오니
투둑투둑 하혈 섞인 양수도 흘렀다.
놀래서 간호사 부르고 이때부터 모든 상황이
응급으로 진행_
심장이 나대기 시작.
정말이지 듀근듀근.
다시 고위험실로 베드채 질질 끌려갔다.
정말 별별 생각이 드는데..
마음이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몸에는 이미 각종주삿바늘이 달렸으며
내진을 하고 제왕절개예정으로
제왕절개용? 제모까지 마치고
관장은 하지 않았다.
출산굴욕세트라고 해서 걱정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 여유?
없다.
진통 때문에 배는 아프고
아이는 건강하게 나올까 하는 걱정으로
이미 머릿속은 복잡하다.
소변줄이 꼽혔는데 자꾸 소변이 마려운듯한
느낌이 들면서 불편해서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하니 위험해서 안된다고.
계속 소변 마려운 거 같다고 징징대니
소변줄을 다시 꼽아주었다.
그러니 징징댄 게 무색할 정도로 멀쩡해짐.
매번 과정들이 진행될 때마다
"보호자는 어디 계세요?"
"...."
난 긴박해 죽겠는데
베드채 끌려갈 때부터 전화를 안 받는 남편.
난 미저리미저리 이런 미저리가 있나 싶을 정도로 내 손의 근육들이 허락될 때까지
전화를 하기 시작.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전화를 하면서 분노가 진통을 이기는
기괴한 경험을 함.
진통은 점점 세졌고 진통이 올 때마다
옆으로 누워 침대 가드를 붙잡고 짐승처럼 흔들었다.
(보통 남. 편. 손을 붙들겠지만.)
가만히 누워있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왜 머리끄덩이를 잡을 수밖에 없는지
왜 욕을 하는지 새삼 깨달음_
잡을 수 있는 머리끄덩이가 내 옆에 없어
또다시 분노.
치밀어 오른 분노 때문에 진통이 줄어듬_
위의 과정이 계속 반복 ㅋㅋ
무통이 삽입되었지만 나는 아쉽게도
무통천국을 맛보진 못했다.
별도의 진통제를 맞으니 그게 그나마
진통을 경감시켜 주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남편님은 놀래서 달려왔고
나는 이미 자궁문이 거의 다 열린 상태였다.
남편 없이 사. 연. 이 씨. 는. 여자처럼 혼자
진통의 절정을 맛보고
진통제로 수 그러 질 때쯤 등장한 남편.
이 남자 타이밍보소!
기기 막히네!
(병원에 입원했다면
남편 절대 집에 보내지 마세요!
그런 쿨내진동하는 배려 따위
잠시 넣어두길_)
원혜성 교수님이 오전 7시 넘어서 오셨고
나의 상태를 보시고는 자궁문이 다 열려 자연분만 해야 된다고
젤 첫 타임 응급으로 수술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자연분만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기들이 66 자세로 있었기 때문.
순식간에 제왕절개에서 자연분만으로 둔갑.
나는 간호사를 다급히 붙잡고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 좀 갔다 가면 안 되겠냐,
난 원래 제왕절개여서 관장을 안 했다,
나 그럼 힘 절대 못준다,
제발 화장실 좀 보내달라 했지만...
위험해서 결국 노!
그냥 그렇게 화장실 타령만 하다
또다시 질질 수술실로 끌려갔다.
그냥 그렇게
혼자서 진통을 다 겪고
새 생명 탄생의 아름답고 경건한 분위기를 꿈꿨던 나는
주야장천 화장실타령만 하다
분만실에 입성했다는
출산 전반전 이야기 끝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