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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Aug 22. 2023

처음이자 마지막 "어부바"

주어진 것에서 느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힘든 사람~ 

어부 어부 어부바~ 

평생 어부바 신협~!     

 

텔레비전에서 귀에 낯익은 멜로디의 광고가 들려왔다. 

칭얼대며 보채는 아기를 어머니는 “어부바” 하며 등에 업어 잠들게 했었다. 

이처럼 어린 시절에 편안했던 기억을 새삼 불러일으키는 정감 있는 멜로디 소리는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의 ‘평생 어부바’ 나눔 광고였다. 

     

배우 신현준, 설수진, 라미란, 유선, 이동건 등 유명 연예인들이 그들의 광고 출연료를 생활고를 겪고 있는 선후배 영화인을 돕는 첫 번째 나눔 광고에 출연했다. 

이어서 좋은 뜻에 함께하고자 두 번째 나눔 광고에는 고두심, 정보석, 고수, 홍수현, 이장우가 자발적으로 재능 기부에 나섰다고 한다. 광고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어머니가 “어부바” 하며 등을 내어 아이를 업어 주는 것처럼 어부바는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어려운 이웃들에게 비빌 언덕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옛말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라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의지할 곳이 있어야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  

    

내 어린 시절의 비빌 언덕은 단연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목수이셨다. 공사 현장을 따라 목수 일을 하시면서 그달 벌어 그달 겨우 살아가며 일정하지 않은 벌이로 살림을 지탱하셨다. 소음과 먼지로 뒤덮인 공사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아버지의 몸에서는 공사장의 먼지 냄새가 배어 있었다. 

     

어떤 날은 공사장에서 지친 몸을 한 잔의 막걸리로 풀어내며 용케도 자전거를 끌고 집에 돌아오셨다. 술을 한잔하신 날은 평소에 다정다감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막걸리에 숨어 들어가 늦은 시간까지 술 주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날은 어머니와 나는 힘든 하루를 지내야 했다. 옛말을 곁들인 술 주정은 아버지의 삶이 녹아 있었다. 그렇지만 술에 취해서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은 늘 내 귓등을 스치듯이 지나가곤 했다.  

    

살기 바빠서 건강을 돌볼 형편이 못됐던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육체노동으로 지친 몸을 한 잔의 술로 해소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공사장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힘든 삶을 위로받으려 했던 술과 지나친 흡연으로 인해 아버지는 건강이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마가 찾아오면 아픔의 증세가 있었을 텐데 육체노동의 피곤함으로만 느끼고 술과 담배로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이기려고 했던 것이 큰 화근이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도 채 안 돼서 췌장암 말기의 판정을 받고 더 이상 병원에서 치료방법이 없다고 퇴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담당 의사는 췌장암은 비교적 드물게 발생하는데 조기 진단이 어려워 병을 키워왔었을 것이라며 지금 상태는 수술도 어렵고 집에 가서 안정을 취하라는 말만 해주었다.    

  

어머니 또한 오랫동안 류머티즘 질환에 시달리며 건강하지는 못한 상황이라 고등학생인 내가 퇴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병원비를 내고 병실로 돌아와 초췌해진 모습으로 침상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애써 눈물을 참고 아버지에게 의사 선생님이 집에 가서 잘 쉬고 계시라고 한다며 아버지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침대에서 한 발짝도 걷지 못하는 아버지를 등에 업는 순간 그동안 병으로 야위어져 가벼워진 아버지의 몸은 내 등에 찰싹 붙다시피 했다.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참을 수 없어 병원 문을 걸어 나오는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집으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아버지는 가냘픈 목소리로...

“내가 너한테 업히는 신세가 되었구나 미안하다.” 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은 더 돌봐줘야 할 아들의 등에 업히게 된 현실에 아버지는 무척 괴로워하셨다.      

그날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아랫목에 누우시며 “내 집이 제일 편하다.” 하시며 스르르 잠이 드셨다. 

병원 퇴원 후 집에서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한 아버지는 퇴원한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다. 길지 않은 시간을 아버지는 병마와 싸우고 병약한 어머니를 남기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고등학교 2학년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현실이었다. 


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받아 들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눈물마저 다 말라버렸다. 

다행히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도움으로 기독교 공동묘지를 소개받아 묘지를 마련해서 아버지를 모실 수 있었다. 장례 치르느라 며칠 북적거렸던 우리 집은 나와 어머니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꿈만 같은 현실에 어머니와 나는 앞으로 살아갈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야만 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비빌 언덕이 없어진 것이다. 그나마 아버지가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셨다면 경제적인 상황은 감당할 수 없었을 텐데 아주 짧게 병마와 싸우시고 돌아가셨다. 당장의 생활비는 그럭저럭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하게 되었다. 줄일 수 있는 지출은 줄여야 했고 공부에 전념해서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 비빌 언덕을 만들어 세상을 살아가며 아이답지 않은 애늙은이 같은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마치 외양간에 어린 소가 커가면서 뿔난 자리가 간지러워서 외양간 기둥에 몸을 문질러대도 끄떡없이 버텨주는 기둥이다. 외양간에 비빌 기둥 없이 자란 황소는 털도 윤기 없고 마르고 쇠약하지만, 튼튼한 기둥에 잘 비비고 자란 황소는 털도 곱고 튼튼하게 잘 자란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의 청소년기에 비빌 언덕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삶이지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해 가기 위해서는 굳건한 마음의 기둥을 만들어야 했다. 삶의 여정에서 겪어야 할 많은 어려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사고의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여기며 살아갔다. 

그 때에 만들어 놓은 내 마음속의 기둥이 지금까지 내 삶의 비빌 언덕을 만들어 놓고 있는듯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젊은 세대를 일컬어 금수저와 흙수저로 구분하면서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환경과 부모의 재력에 빗대어 자신의 처지를 구분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흙수저와 금수저의 판단을 부를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빈부격차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강자를 구분하는 잣대로까지 확대해석 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 ‘개천에서 용났다’ 고했다. 그런데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이 생겨나면서 사회적인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흙수저 환경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처럼 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이 모두 물질적인 재산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재물보다 부모님의 재능을 물려받기도 하고 체력적으로 건강함을 타고나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넉넉하지 못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을 부모님이 물려주신 타고난 재능을 살려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성공적인 삶을 볼 때 부모님이 주신 재능이나 건강한 체력이 물질적인 재산보다 훨씬 값어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에게 더욱 소중한 것은 어부바하며 등을 내어주신 부모님들의 무조건적 사랑이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어부바’ 해주었듯이 부모가 나이가 들고 병약해지면 자녀가 부모를 어부바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본 신협의 ‘어부바’ 나눔 광고에서 보듯이 아이와 연로한 부모님을 어부바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시대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서를 갖게 해준다. 


병고로 야위어서 가벼워진 아버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등에 업고 병원 문을 나선 것이 아버지가 주신 사랑에 보답한 마지막 ‘어부바’ 였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어부바’ 광고 출연료를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선후배 영화인에게 기부하면서 등을 내민 영화인들의 모습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힘들어하는 남을 위해 ‘어부바’ 하며 등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참 살맛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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