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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Sep 30. 2023

넥타이 매고 손에 쥔 마포걸레

최선을 다해 팔을 벌리면 가슴도 열린다.

몇 년 전 서울의 쌍문동 골목에서 크고 자란 다섯 소꿉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응답하라 1988’ 드라마가 꽤 인기가 있었다. 그 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이웃 간의 오고 가는 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담아낸 따뜻한 드라마였다. 인기리에 방송되면서 많은 복고풍의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1988년은 복지정책으로 국민연금 제도가 시작되고 88 서울올림픽이 열린 의미 있는 해였다. 그 해에 수없이 들었던 88 서울올림픽의 공식 주제곡 '손에 손잡고'는 신나는 멜로디로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했던 그 해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사리 평생 함께할 직장을 찾았다.

직장에 취직한 것도 좋았지만 그 해에 개최될 올림픽의 축제 분위기에 마음 가볍게 올라탈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뻤다. 채용합격 통보를 받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대전 현충원 인근에 있는 신협연수원으로 신규직원 교육연수를 들어갔다. 매일 아침 연수원 운동장에서 기상 체조를 하고 현충원까지 뛰면서 순국선열의 고귀한 정신을 되새기며 감사한 하루를 시작했다.   

   

기쁨과 삶의 의미를 더해준 연수교육을 마치고 서울 본점에서 신규직원 임용장 수여식에 참석했다. 

그날 들었던 격려의 이야기 속에 그 시절 직장의 사무환경을 접할 수 있었다. 

예기인즉, 사무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우편으로 주고받던 공문서를 팩시밀리를 도입하여 실시간 업무처리가 가능하게 되었다며 좋은 환경에서 신규직원 생활을 시작한 것을 축하해 주었다.      

지금은 효용성이 떨어져 거의 사용하지 않는 팩시밀리가 그 당시에는 첨단 사무기기였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손 안에서 사무행정과 모바일뱅킹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직장 환경이

상전벽해와 같이 변했다.    

 

신규직원 임용장을 받고 입사 동기들은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내가 살고 있던 인천으로 발령을 받았다. 인천 사무실은 하나은행과 합병한 옛 서울신탁은행과 같은 건물에 있었다. 

신규직원으로서 업무를 익히는 수습과정을 밟아가면서 출근하여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사무실과 화장실, 계단을 청소하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도 제일 먼저 출근해서 청소 순서대로 사무실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마포 걸레를 앞세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다. 

신나게 마포질하며 청소하던 중 1층 출입구에서 출근하던 은행 여직원의 발을 마포 걸레로 덮쳐 버렸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들고 그 여직원과 얼굴을 보고는

  “어~!”  서로 놀랐다.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이었다. 

그 후로  마포 걸레를 들고 청소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더 일찍 출근해서 계단 청소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행에 업무가 있어서 내려갔는데 공교롭게도 그 여자 동창생의 담당업무였다. 

업무를 마치고 가려는데 그 친구가 먼저 저녁 식사를 하자며 약속을 잡았다. 

며칠 후 동인천 인근 경양식집에서 그 동창생을 만났다. 그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너는 매일 청소하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따로 없어?”

나는 별것 아니란 듯이 

“응 없어 아침에 운동 겸해서 좋던데” 라며 멋쩍게 대답했다. 초등학생 때 보고 어른이 돼서 만나게 되니 서로 성장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던 하루였다.      


그 후로는 마포 걸레를 잡고 계단에서 그 친구를 만나도 자연스럽게 인사하며 지내게 되었다. 

이렇게 아침에 운동 겸해서 했던 청소는 후배 직원들이 발령되어 오기까지 2년 동안 내 몫이었다.      

여기에 더해 업무분장 회의 때 대부분 꺼려지는 업무가 있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란 말이 있듯이 내가 먼저 손을 들었다. 어차피 버티고 기다리다가 떠안게 되는 것보다 즐겁게 일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대체로 큰 문제가 아니면 살아가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쓸데없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신규직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 자신에게 세 가지 약속을 했다.      

첫 번째는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이다. 

직장인의 기본적인 자세는 출근 시간을 잘 지키는 것으로 여기고 될 수 있는 대로 남들보다 먼저 출근해서 하루를 시작했다.  시간은 나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소중하다고 생각하여 시간을 정하여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직장생활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임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두 번째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는 것이다. 

신규직원으로 일에 대한 적응과 숙련이 덜 되어 서툴지만 일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서 함으로써 실수를 줄이고 직장 업무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늘 겸손한 자세로 일하는 것이다.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비굴한 것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라 여겼다. 

이런 생각으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나 후배에 대한 기대감은 내가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으로 흩어져서 다른 지역에 근무하는 입사 동기들은 1년 만에 후배를 받았는데 나는 말단 직원 노릇을 

2년을 채우고 나서야 두 명의 후배 직원을 만나게 되었다.     

직장 선배랍시고 두 해 동안 직장생활의 경험을 그들에게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심성이 좋은 두 후배는 나를 잘 따르고 선배 대접도 잘해주어 직장생활의 재미가 점점 더 커졌다. 


지금은 주 5일 근무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있지만 그 시절에는 토요일도 근무했었다. 

다만 반 공휴일이라고 불리었던 토요일은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는 밀린 일이 없으면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우리 셋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토요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 동안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고 

조언도 해주고 개인적인 어려움과 기쁜 일도 함께 나누었다. 

우리끼리 일명 ‘토요세미나’라고 부르며 두 후배와 거의 매주 토요일 함께 ‘토요세미나’를 가졌다.   

   

토요일 일과를 마치고 인근 사우나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한 주의 피로를 풀었던 ‘토요세미나’를 통해 선후배 간에 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때로는 사우나를 마치고 생맥주로 갈증을 풀고 한 주에 쌓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기도 했는데 그때는 우리 셋이 도토리 키만큼 차이나는 사회 초년생들이었기에 가능했었던 일이었다. 

생맥주 한 잔을 마주치며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 서로를 배려하는 훈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같이 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직장을 얻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선후배 간에 갈등으로 직장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도 주변에서 가끔 보게 된다. 

직장의 선후배 관계도 사무환경이 변해왔듯이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해나가면 선후배 간의 동료애가 쌓이고 살맛 나는 직장생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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