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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Oct 07. 2023

초여름 산들바람 타고 날아온 그녀

최선을 다해 팔을 벌리면 가슴도 열린다.

아내의 손을 잡고 주말 데이트에 나섰다. 

도심을 도망치듯이 벗어나 강변을 따라 한참을 자동차로 달리다 보니 양수리 두물머리에 다다랐다.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져서 흐르는 곳으로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하다. 꽉 들어찬 주차장에 어렵사리 차를 주차하고 아내와 함께 갈대가 무성한 강변을 따라 걸었다. 


어깨를 스칠 정도로 꽤 많은 젊은 청춘 남녀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아내와 손을 잡고 청춘들 사이로 길을 걸으며 그 들처럼 뚜벅뚜벅 걸었다. 

한참을 걸어 두물머리의 소문난 먹거리 연 핫도그 가게 앞에서 젊은 연인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줄을 섰다.

젊은 연인들 틈에서 총각 시절에 아내와 데이트하며 즐거웠던 추억을 생각하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 준 큰 선물이었다. 

대전에 있는 연수원에서 신입사원 연수교육을 마치고 인천으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인천은 내가 학창 시절 내내 성장한 곳으로 낯설지 않았지만 어엿한 직장인이 돼서 그런지 새롭게 다가왔다.      

첫 출근 날, 상사와 선배들에게 인사하기도 바쁘게 하루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직장 선배가 볼링 동호회 정기모임이니 함께 가자고 했다. 

딱히 개인적인 일정도 없거니와 그때만 해도 직장 선배의 제안을 거절하는 후배는 없었다. 

평소에 볼링장을 자주 갈 기회가 없었지만 직장 볼링 동호회 회원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선배를 따라나섰다. 


볼링장에 들어서자 볼링핀 넘어지는 소리와 스트라이크에 환호하며 손뼉 치는 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 경기를 중단하고 신입사원인 나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꾸뻑하자마자 볼링 애버리지가 얼마냐 묻고는 내 수준에 맞는 팀에 나를 배정하여 바로 그 팀에서 제일 먼저 볼링공을 던지라고 했다. 

오랜만에 볼링공을 잡아보기도 했고 잔뜩 긴장했던 탓에 힘껏 던진 볼링공이 레인 옆 구석으로 흐르며 딸랑 한 개의 핀 만 쓰러트렸다. 

     

등줄기에 바싹 흐르는 땀을 느끼며 창피해서 뒤를 돌아보기가 민망했다. 

어쩔 수 없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함께 팀을 이룬 여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다음번에는 잘할 수 있다는 듯 용기를 주었다. 

용케도 두 번째 던진 볼링공은 묘기에 가깝게 아홉 개 핀을 모두 넘어뜨리는 스페어처리 행운을 가져왔다. 

다음 차례에 나선 그녀는 볼링을 오래전부터 해 온 듯이 능숙하게 볼링핀을 모두 쓰러뜨렸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볼링핀과 환한 미소의 그녀를 보며 넋을 잃고 '멋지다'라고 환호했다.   

   

볼링 경기를 마치고 인근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가 동호회 뒤풀이가 이어졌다. 

우연히도 내 맞은편에 그녀가 앉게 되었다. 

식당 불빛 아래서 다시 본 그녀의 모습은 우아한 자세로 볼링공을 던지는 그녀의 잔상이 투영되었던지 더욱 아름다웠다. 

뒤풀이를 마치고 집에 오는 버스에서 그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 후로 출근 첫날 가졌던 좋은 느낌으로 업무를 익혀가던 중에 여직원들의 모임을 지원하는 업무가 나에게 맡겨졌다. 

여직원들은 모임을 통해 업무협력과 지역사회에서 선행을 실천하기도 했다. 

그 업무를 맡고 여직원 모임의 임원들과 첫 만남의 자리에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볼링장에서 만났던 그녀가 여직원 모임에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을 억누르며 연말 이웃 돕기 모금사업 등 구체적인 사업 실행을 위한 만남으로 이어갔다. 


사람과 사람이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익숙해지고 친해지듯이 업무를 핑계로 자주 만나다 보니 그녀의 청순한 매력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다. 

급기야 어느 날부터는 서로의 마음 끌림으로 만남이 조금씩 숨어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직장 안에서 비밀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서로의 사무실에 있는 전화가 유일한 연락수단으로 업무적으로 통화하면서 마무리에 슬쩍 서로의 언어로 만남의 약속을 하곤 했다. 


어느덧 서로에 대한 이해가 무르익어 가면서 여름휴가철이 되었다. 

나는 특별히 휴가 계획이 없었는데 좋은 기회가 왔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가 여름휴가로 부산여행을 계획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름휴가를 함께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여자 둘이서만 부산여행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핑계를 들어 내가 보디가드로 함께 가겠다고 했다.   

   

남자 하나 여자 둘 이렇게 세 명의 부산여행이 계획되었다. 

갑자기 계획된 여행에 숙소도 정하지 못하고 텐트와 대강의 짐을 챙겨서 직장에서 퇴근 후 동인천역에 모여 통일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여섯 시간 남짓한 시간을 꼬박 앉아서 잠이 들었다가 깨었다가를 반복하다가 이른 새벽에 부산에 도착했다. 처음 경험해 본 밤샘 기차여행으로 몸은 피곤으로 찌들었는데 그녀와 함께 여행한다는 생각에 어느새 새벽 공기의 신선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일출의 장관을 몸으로 느끼고 싶어 그녀들의 짐을 모두 내 배낭에 덧대서 등에 메고 태종대로 향했다. 

태종대를 향해 언덕을 오르는 내내 헉헉 대면서도 힘든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일출의 장엄한 장관을 눈에 담고서는 해운대 해수욕장에 텐트를 치고 부산여행의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여름휴가를 위해 급하게 샀던 텐트를 아지트 삼아서 밤에는 해운대 모래사장을 거닐며 밤하늘에 쏟아질 듯 총총하게 떠 있는 별을 보고 낯에는 부산 명소를 셋이서 뚜벅뚜벅 다니며 여름휴가를 즐겼다.

      

여름휴가를 함께 다녀온 후 가을로 접어들면서 그녀에게 느꼈던 순수한 매력에 이끌리어 멋진 프러포즈를 준비했다. 

직장에서 우리의 사귐이 직원들에게 들킬 수 있어서 주말에 주로 서울에 가서 데이트하곤 했다. 

프러포즈 당일 영화의 주인공처럼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미사여구를 섞어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로 했다. 

토요일 퇴근 후 그녀를 만나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프러포즈할 장소를 살폈다. 

호젓한 벤치에서 준비한 프러포즈 대사를 꺼냈다.   

   

“뭐라고요?”     

 

그녀는 내가 분위기를 잡고 서론부터 시작해서 결론에 이르기까지 어렵게 꺼낸 프러포즈를 잘 듣지 못했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언제 나타났는지 우리가 앉아 있는 벤치를 맴돌며 떠들썩하게 뛰어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중간에 멈출 수 없어서 말수를 줄이며 결혼 프러포즈를 다 했건만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그녀는 내가 말한 프러포즈를 잘 들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성급한 마음에 조용히 귀엣말로 프러포즈를 했다.     


그날 이후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내 프러포즈를 받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입을 뗐다. 

수도자가 되려고 수녀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나를 만났던 것은 좋은 사람 같아서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지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고 미안한 듯 말을 했다. 

그녀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나는 개신교 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천주교 신자인 그녀와 종교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서로의 종교를 존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줄 곳 해 왔었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용기가 필요했다. 

수도자가 되어서 많은 사람과 행복을 나눌 수도 있지만 내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앞섰다. 

먼저 종교적인 벽을 허물어야 하겠기에 일요일에 그녀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나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 활동을 마치고는 그녀와 함께 서울로 향했다.      

명동성당의 저녁 미사에 참석하여 그녀의 종교를 이해하고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고 진심으로 노력했다. 


무슨 일에든 정성을 다하면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잘 풀리듯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녀의 마음이 돌아서는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그녀의 부모님에게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그녀의 집에 찾아가서 반쯤의 허락을 받았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미인이라는 것이 외모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착한 심성을 가진 아름다움이기에 그녀를 향해 나는 전력투구의 용기를 냈다. 

그렇게 해서 초여름 싱그러운 산들바람을 타고  내 삶을 함께할 그녀가 내 곁으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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