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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Sep 22. 2023

사막에서 찾은 오아시스

최선을 다해 팔을 벌리면 가슴도 열린다.

“저의 장점은 매사에 성실하고 목표에 대한 추진력이 강합니다” 

신규직원 채용 면접장에서 다소 긴장된 모습의 채용 면접 지원자가 씩씩하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자기의 주장을 밝힌다.      

대학 졸업을 앞둔 취준생은 빨리 직장에 취업하여 자아실현과 부모님에게 아들, 딸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요즈음 직장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라는 말이 당연한 듯이 상당히 좁고 어렵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지원자들은 “지피지기 백전불태”의 자세로 면접장에 들어선 듯 두 눈이 초롱초롱했다.     


좋은 인재를 찾으려는 직장에서는 취업 준비생이 만든 주관적인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만으로는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면접장에서 면접관들은 지원자의 변별력을 판단하기 위해 지원자가 예상하지 못한 심도 있는 압박 질문을 퍼붓는다. 소신껏 당당하게 자기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지원자는 당황해서 말을 잊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기도 한다. 

직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환경에서 취업 준비를 단단히 하고 면접장에 들어섰는데 단 몇 분의 면접에서 당혹스러운 질문에 낭패를 보기도 한다.    

  

지금은 직장에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는 면접관 자리에 있지만 나의 직장 취업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환경이 다르고 시대를 거슬러도 취업의 어려움은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나는 대학 4학년이 되면서 그동안 가계부를 쓰면서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생활비로 취업 준비에 전념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는 한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의 시간을 겪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에서 취업의 목적이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취업 준비를 위해 다시 도서실을 찾았을 때는 기업들의 공개채용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흘러간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보니 어느덧 기업들의 공개채용이 시작되었다. 

취업 고시로 일컬어졌던 대규모의 대기업 공채부터 적은 인원을 뽑는 중소기업 채용에 이르기까지 서류전형, 필기시험, 면접전형에 지원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어쩌다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에 합격했던 기업도 면접전형에서 떨어지곤 했다.  

    

몇 번의 채용시험을 치르면서 채용의 마지막 단계인 면접전형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기업의 입사 지원서류에는 사는 곳과 가족관계를 알 수 있는 주민등록등본을 반드시 함께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 그 시절 주민등록이 지금처럼 전산화되어 있지 않아서 말 그대로 주민등록등본은 주민센터에서 복사된 등본을 발급받아야 했다. 

수기로 작성된 주민등록등본은 모든 가족 구성원들의 변동 사항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면접관들은 입사 지원서류 중에 유독 내 주민등록등본을 보고서는 매번 비슷한 질문을 했다. 

주민등록등본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의 이름에 밑줄이 죽 그어져 사망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달랑 내 이름만 덩그러니 나와 있었다. 

면접관들은 부모님은 언제 돌아가셨나? 형은 어떻게 사망했나? 가족 없이 혼자 어떻게 살고 있는가? 

순서도 비슷하게 질문을 쏟아냈다. 


면접 전날 밤새워 준비한 대학 전공이나 직무 수행능력을 측정하는 질문은 드물었다.      

그도 그렇듯이 당시 기업들은 사훈에서 ‘인화단결’을 내걸고 구성원들의 화합과 단결을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기업은 파란 없이 평탄한 환경에서 성장한 인재를 선호하고 있었다. 

성장 과정에서 가족의 죽음을 일찍 체험하고 나처럼 혼자 살아가는 지원자를 선뜻 채용하기에는 기업의 부담이 커서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곳저곳의 기업의 채용면접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세상을 알아가던 중에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채용공고를 신문에서 발견했다. 

서둘러 채용 서류를 접수하였더니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하여 채용 일정에 따라 필기시험을 치르게 됐다. 

전국에 걸쳐 직원을 모집하는 것으로 필기시험은 대전에 있는 연수원에서 실시되었다.  

    

필기시험을 치른 며칠 후에 필기시험 합격했으니 면접전형에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그동안 몇 차례 지원했던 기업에서 면접에 대한 징크스를 경험했던 터라 큰 기대는 없었다. 

서울에 있는 면접장에는 필기시험 때 마주쳤던 지방에서 온 반가운 얼굴들도 보였다. 

다들 경쟁자들인데 이상하게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란히 면접 순서를 기다리는 지원자들을 보면서 그들은 평탄한 가정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 걱정이 앞섰다. 

긴장되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마음을 애써서 달래고 있다가 나의 면접 순서를 맞았다. 

면접장에 들어서니 여섯 명의 면접관들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예상했던 대로 그동안 면접장에서 겪어서 익숙해진 질문이 이어졌다.     

 

내가 제출한 주민등록등본은 면접관들의 단골 질문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형님의 부재로 인한 사연을 차례로 답변하면서 면접관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전에 경험했던 면접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망으로 밑줄 그어진 가족관계의 질문에 이어 군대 입대를 면제받은 것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국방의 의무는 당연함을 넘어 반드시 짊어져야 할 필수사항으로 여겨졌다. 

대학을 휴학하고 군대 입대를 위해 징병 신체검사를 받고 현역 입영 대상자로 군대 입영을 기다리던 중에 갑작스러운 형의 죽음으로 입영이 연기되었다. 

입영이 연기되고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부선망 독자가 되었고 병환 중에 계신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생계유지의 사유로 군대 입대가 면제되었다.      


그동안 다른 기업의 면접에서 이런 사연을 듣고는 면접관은 측은지심에 고개를 끄덕였었는데 결과는 늘 불합격이었다. 그런데 그때의 분위기는 그전과 달랐다.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면접관 중 한 분이 내 말을 이어갔다. 부선망 독자로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대 입영을 면제받는 경우가 있다며 나 대신에 더 구체적인 대답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지내온 것 같다며 세상을 살아가는 좌우명을 물었다.      

언뜻 몇 년 전 대학입시를 위해 도서실에서 공부하면서 경험했던 일이 떠올랐다. 

동전 몇 개가 부족해서 도서실 식당에서 어묵 국물과 버스 요금의 선택 속에 갈등했을 때 다짐했던 마음가짐의 문구가 떠올랐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남에게 꾸어줄지언정 꾸임 받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수년 전에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문구가 마치 질문의 정답 인양 자신 있게 튀어나왔다. 

질문했던 면접관이 나의 대답을 듣고 크게 공감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면접장 분위기가 나에 대한 의문점이 풀렸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내가 전공한 경영학에 대한 지식과 직장 지원 동기 등 일반적인 질문으로 넘어갔다. 

다른 면접 대상자들보다 다소 긴 시간을 질의받고 대답하면서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면접을 모두 마치고 면접장을 나오면서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서 최종 합격 통지서와 신규직원 연수 교육 통보를 받았다. 

목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마음 깊이 기쁨과 감사함이 치솟았다. 

그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나의 30여 년 직장 생활 내내 올바르게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얼마 전에 대학 졸업을 앞둔 막내딸과 밤을 지새우며 와인을 곁들인 대화에서 요즈음 대학생들의 취업 환경이 내가 지나온 시절보다 훨씬 심각함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옛말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지 않았던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헤치고 나갈 길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 부딪친 어려움을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해결 방법을 찾아 두드리면 길은 열리게 되어 있다.   

   

내가 살아오면서 마주친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받은 감명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의 여정을 선한 영향력으로 이끌어 주고 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선한 마음과 노력이 있으면 다소 앞서거나 뒤서거나는 있어도 노력의 대가는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고 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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