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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Sep 16. 2023

휠체어의 기쁨과 이별 준비

주어진 것에서 느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레이야 힘내라~"

작고 귀엽게 생긴 자동차 레이는 가파르고 좁은 언덕길을 씩씩하게 내달렸다. 

설 명절을 앞두고 우리 동네에 있는 어르신 돌봄 지원센터의 사회복지사와 함께 신협 어부바 박스에 생필품을 담아 홀몸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했다.   

   

사회복지사가 말하기를 홀몸 어르신들은 경제적 궁핍과 각종 질병, 정신적 고립감 등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나라도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홀몸 어르신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방문했던 홀몸 어르신들은 경사진 언덕길에 살면서 겨울철에 눈이 내리면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매년 돌아오는 겨우살이는 추위와 외로움이 가장 힘드시다고 했다. 

추위는 계절이 바뀌면 없어지지만 외로움은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사라지는 것 같다. 

인기척에 살며시 문을 열고 낯익은 사회복지사를 보고는 환하게 웃음 짓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오랜 병환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시던 중 큰아들인 형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으셨다. 

월세 단칸방에 살다가 비록 비좁고 허름하지만 우리 집에 다시 돌아온 것은 다행이었는데 몸과 마음이 불편한 어머니는 날로 쇠약해지셨다.      


어느 날 어머니는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셨다. 급한 마음에 어머니를 업고 병원 응급실로 가서 어머니의 상태를 검사하고 골절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했다. 

다음날 담당 의사 선생님은 곤란한 표정으로 나에게 어머니의 상태를 설명했다. 

검사 결과 어머니의 쇠약해진 몸과 그동안 복용했던 약의 부작용으로 수술 전 마취 쇼크가 올 수가 있어서 생명이 위험하여 수술할 수 없다고 했다. 

     

다리를 고치려고 수술 도중에 마취 쇼크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수술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는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와 밤마다 부러진 다리의 고통을 참으며 가늘게 신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안타까움만 더해갔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어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궁리 끝에 어디에서나 수시로 어머니와 통화하여 어머니의 상태를 알기 위해 전화국에 전화를 신청했다. 

그 당시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전화가 없는 집이 많았다. 전화국도 전화회선이 많지 않아서 전화를 신청해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전화를 설치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날마다 동네 어르신들이 집에 오셔서 어머니와 음식도 나누어 드시고 말동무도 해주시고 하셨지만 늦은 밤에는 어머니는 내가 오기만 기다리고 계셨다. 

하루 중에 틈틈이 공중전화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하며 불안감을 잠재우곤 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어린 시절 친구분들이 집에 오셨다가 불편해진 다리로 문밖출입이 어렵게 된 것을 보시고 휠체어를 사라고 돈을 모아 주셨다. 

어머니 친구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안고 종로에 밀집한 의료기기 전문점에서 휠체어를 사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휠체어를 타고 외출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 벅찬 기쁨을 느꼈다.     


여섯 달 만에 어머니의 첫 외출이 있던 날이다. 다니던 교회에 주일예배 참석을 위해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집을 나섰다.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길을 가던 중 돌부리에 휠체어 바퀴가 부딪치면서 어머니가 휠체어에서 앞으로 곤두박질 떨어지셨다. 순간 놀래서 얼른 어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마주친 어머니의 얼굴에는 땅바닥에 엎어진 아픔보다는 기쁨이 더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길거리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기쁨에 찬 얼굴을 마주 보며 기쁨의 웃음을 내뱉었다.   

   

이날부터 어머니는 일요일마다 휠체어를 타고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그전에 즐겨 다니셨던 재래시장에 가서 장을 보며 시장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어머니의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소소한 기쁨으로 살아가면서도 대학교 3학년이 되고 나니 앞날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해서 더 나은 환경에서 어머니를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요즈음과 같은 취업난은 아니더라도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학점도 관리하고 취업공부도 해야 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마을금고와 친척들에게 빌린 대학 등록금과 어머니 병원비는 다 갚았는데 은행 학자금 대출 상환과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다. 은행에서 빌린 학자금 대출은 거치 기간이 있어서 이자만 내다가 졸업 후에 직장 취업을 해서 갚으면 되지만 무엇보다도 매월 들어가는 생활비가 문제였다.   

   

그때부터 1년 동안 병원비, 약값, 콩나물, 두부 한 모를 사는 것까지 월별 지출 위주의 가계부를 썼다. 

대학 졸업반이 되어 한 해 동안 취업 준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공부만 했을 때 필요한 생활비가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시작할 무렵 어머니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부러진 다리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지고 손마디의 변형을 가져온 류머티즘 질환에 합병증이 더해지면서 어머니는 거동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병환이 심해지며 음식 섭취가 힘들어지더니 급기야 자리에 누운 채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급기야 기저귀를 차고 눕게 되어 대소변을 받아 내어야 했다.

기저귀를 가는 나에게 어머니는...

“내가 어떻게 너에게 이런 일을 다 시키게 되었는지” 하시며 흐느끼셨다.

 나는 애써 눈물을 참고...

 “엄마가 나 아기 때 기저귀 많이 갈아 줬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듯 이야기했다.      


아픔을 참으려 애쓰는 어머니의 신음 소리를 들으며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 한편으로 긴장하며 준비했던 직장 취업을 위한 공부는 나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었다.      

어머니의 병세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의사로부터 병원 치료도 희망이 없음을 전해 듣고서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변변한 사진 하나 없어서 동네 사진관에 가서 주민등록증 사진을 확대하여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만들었다.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비통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 끝내 마지막 날이 왔다. 

그해 추석날 아침이었다. 

새벽에 어머니 옆에서 쪼그려 잠이 들었는데 평소와 다른 어머니의 신음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 어머니를 보니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어찌할 바를 몰라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순간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를 보고 뭐라고 말을 잊지 못하고는 이내 눈을 감으셨다.    

  

다급한 마음으로 병원에 전화하고 친척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차갑게 식고 굳어져 가는 어머니의 팔다리를 곱게 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편하게 잠든 것 같은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서 허무함과 회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온 가장 익숙했던 환경이 낯설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영원히 잠들어버린 나의 희망이었던 어머니의 고운 얼굴을 가슴에 담았다. 

     

이런 아련한 기억 속에 사회복지사와 가파르고 좁은 언덕길을 올라 허름한 집 문 앞에 다가서서 그곳에 사시는 홀몸 어르신을 마주했다. 

반갑게 맞아주시기는 하지만 힘없이 서서 계신 할머니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건강하세요” 반찬과 생필품을 담은 어부바 박스를 건네는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신다. 

어쩌다 한번 방문한 나에게 홀몸 어르신은 밝은 웃음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진정으로 홀몸 어르신들을 살피는 것은 단순한 생필품보다 외로운 마음에 온기를 더하는 것일 것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홀몸 어르신들의 쓸쓸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가족을 대신하여 홀몸 어르신들을 살피는 사회복지사의 손길이 그나마 온기를 지펴주고 있는 것 같아 콧등이 시큰해지는 흐뭇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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