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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Oct 29. 2023

이삿날 몰려간 산부인과와 티코 유감

최선을 다해 팔을 벌리면 가슴도 열린다.

제주도에서 있었던 직장 연수를 마치고 김포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올랐다. 

푸른 바다를 건너 육지에 접어들면서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우리나라 국토의 70%는 산이다.’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하늘에서 본 녹색의 정원에 군데군데 우뚝 솟아 군락을 이루는 아파트들이 산과 평지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띈다. 나도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열 명 중에 여섯 명이 아파트에 산다고 한다. 

산자락의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이 살려면 아파트가 답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아파트가 어쩔 수 없는 주거형태라고 하지만 사는 동네가 수도권이냐 지방이냐에 따라 아파트 가격이 큰 폭으로 차이가 난다.   

   

이처럼 부동산의 불평등을 알려주는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어느 신혼부부의 고단한 서울살이가 소개되었다. 신혼부부는 전셋집을 알아보려고 이곳저곳의 부동산업소를 돌아다니다가 그들이 가진 돈으로 전세를 얻으려면 서울은 벗어나야만 가능함을 알고는 크게 실망했다. 

여기에 더해 샐러리맨이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15년 이상을 꼬박 저축해야 가능하다는 뉴스를 보고는 그 들은 더욱 망연자실했다.      


그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보며 비록 삼십여 년 전이지만 나의 신혼생활은 그나마 내 집 마련이 수월했었던 것 같다. 나는 신혼 살림집을 결혼식을 올린 성당 근처에 마련했는데 도둑이 들어도 훔쳐 갈 물건이 없을 정도로 신혼살림은 단출했다. 

가진 것은 없이 결혼했지만 내 집 마련을 위해 주택청약 통장을 만들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결혼예물도 결혼식에 필요한 예물 반지 하나만으로 하고 혼수예단도 간소화하여 아내가 직장을 다니며 저축한 돈은 집을 마련하는데 보태는 것으로 결혼 비용을 최대한 아꼈다. 

아내는 쥐꼬리만 한 내 월급을 가지고 알뜰하게 살림하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한 걸음씩 내디뎌갔다.     

 

아파트 청약자격을 얻어서 신규분양 아파트에 몇 차례 지원하며 높은 경쟁률에 번번이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당첨되었다. 

저축했던 돈으로 계약금을 치르고 중도금과 잔금 납부는 은행 대출을 얻어야 했다. 

중도금 납부 날이 어찌나 빨리 돌아오는지 숨이 헉헉 막힐 정도 힘든 시간을 버티다 보니 어느덧 내 집 마련의 기쁜 날이 찾아왔다. 

그런데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둘째 아이를 가져서 만삭이 된 아내의 출산 시기와 입주 일정이 겹쳐 즐거운 고민을 해야 했다. 결국에는 출산 전에 이사하자는 아내의 주장으로 아파트 입주를 감행했다.      


단출한 신혼살림이었는데 딸아이가 생기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새로 산 것도 거저 얻은 것도 많아져서 이삿짐이 적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이사가 늦은 저녁이 돼서야 대강의 이삿짐을 정리하고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친척들과 거실에 둘러앉아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 도중에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오늘내일 출산을 앞둔 아내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일렀건만 기쁜 마음에 꽤 무리해서 움직였던 것 같다. 

점점 심해지는 출산 진통으로 참을 수가 없어 보였다. 

차 한 잔의 여유는 사라지고 서둘러 출산 준비물을 챙겨서 우르르 산부인과로 몰려갔다.     

 

산부인과에 도착하니 곧 출산할 것처럼 진통의 간격이 더 빨라졌다. 

길지 않은 시간을 분만대기실에 있다가 이내 분만실로 들어가더니 새벽의 고요함을 깨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분만실에서 나온 간호사가 이미 내가 딸아이가 있는 것을 아는지 

“아들이에요. 축하합니다.”라고 활짝 웃어주었다.      

회복실에 누워있는 아내를 다독이며 내 집도 마련하고 아들도 얻은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깬 딸아이가 어리둥절하면서... 

 “아빠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라고 물었다.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 첫날밤을 산부인과에서 보냈으니 딸아이는 그곳이 새로 이사한 우리 집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새로 이사를 한 동네는 택지개발지구라 기존 동네에서 떨어져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많이 불편했다.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사려고 중고차 시장을 넘보다가 때마침 우리나라 최초의 경차로 불린 국민차 ‘티코’가 눈에 띄었다. 신차라도 가격이 저렴하길래 무작정 가까운 자동차 대리점에 찾아가서 영업사원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는 바로 계약했다. 

며칠 후 영업사원에게 자동차 매매 계약서에 적혀있는 대로 차량 구입대금과 취득과 등록세 등 부대비용을 주고는 정산서를 받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자동차 매매 정산서를 살펴보다가 손글씨로 써진 세금 납부 명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상 자동차를 살 때 영업사원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관련된 세금을 내는 것은 신경을 쓰지 않고 믿고 맡기게 된다. 그런데 영업사원이 고의로 세금을 부풀려서 나에게 돈을 더 받아서 자신의 호주머니를 채웠다. 

그럴 리가 없다며 부인하는 영업사원에게 관련 세법을 보여주며 잘못된 것을 증빙해 주었더니 그제 서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잘못했다고 선처를 빌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영업사원에게 자동차를 사면서 속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무관심을 이용하여 자기 잇속을 챙긴 영업사원이 괘씸했다. 

더욱이 내 경우는 자동차 중에도 가장 싼 경차를 사는 형편인데도 그렇게 한 걸 보니 속담에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영업사원의 행동은 괘씸하지만 나도 그와 같은 월급쟁이다 보니 일을 확대하여 그에게 어려움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일하는 자동차 대리점 사장에게 사실을 알려서 잘못된 것을 시정하고 그 영업사원은 대리점 사장이 해당 조치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런 에피소드를 안고 마련한 아파트와 국민차 티코는 우리 가족의 삶에 디딤돌이 되었다. 

내가 집을 마련했던 때보다 지금 신혼부부들은 주택 가격 상승과 대출 규제 등 내 집 마련에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다. 

하지만 장기적인 목표를 정하고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마련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면 내 집 마련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부부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일상 속에 행복을 만들어 가다 보면 내 집 마련의 기쁨은 더욱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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