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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Oct 21. 2023

도둑이 화가 난 신혼집

스마트폰보다는 큰 페이지에서 여러 기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종이신문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평소처럼 신문을 보다가 한 꼭지 기사에 시선이 멈췄다.

요즈음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청년들이 이처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취업난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결혼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한다.      

디지털혁명이라고 불리며 급격한 산업화와 사회적 환경 변화의 물결 속에 젊은이들의 고민은 쌓여가고 있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오히려 줄어든 일자리로 인한 취업난은 심화되고 치솟는 부동산 거품에 주거 불안정과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비는 점점 늘어났다. 이렇듯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포기할 것이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지금의 청년들이 겪는 환경과는 달리 나의 청년 시절을 돌이켜보면 생활의 편리성은 지금보다는 덜했지만 가난을 이기려는 의지에 노력을 보태면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직장에 취업한 나는 혼자 살아가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이모님 집 근처에 방 한 칸을 얻어서 이사했다. 단독주택의 2층으로 방이 두 개였지만 큰 방 하나는 주인집의 짐으로 꽉 채워있어서 작은방 하나를 쓰는 조건으로 싼값에 방을 얻었다.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우리 부부는 이 작은방을 밑천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방이 좁으니 큰 장롱을 놓을 수도 없어서 신혼의 세간살이도 단출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아내와 나는 결혼비용을 아껴서 큰 방으로 이사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아내는 어려운 경제여건 때문에 직장생활을 좀 더 하고 싶었지만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퇴사해야 했다. 그 당시 대부분 직장은 여직원이 결혼하면 출산휴가 등 업무 공백이 생긴다는 이유로 눈치가 보여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경향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로 남편 바라기 대열에 합류했다.      


나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자마자 가톨릭 교리교육을 이수하여 세례를 받고 가톨릭교회의 신자가 되어 일요일마다 성당 주일미사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것이 아내와 결혼하면서 나에게 스스로 약속한 것이었다. 또 아내와 살아가면서 “야”, “너”라는 말을 절대 하지 말고 대화 중에 존댓말을 사용하기로 다짐했다. 

어쩌면 표현에 따라서는 “야”와 “너”라는 말과 반말은 때로는 부부관계를 친밀하게 해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내가 수도자가 되어 얻을 수 있었던 행복을 빼앗은 대가로 내가 일상에서 지켜줄 수 있는 작은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신혼의 다짐과 달콤함 속에 빠져 있던 일요일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성당에 주일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우리가 살던 집이 단독주택의 2층이다 보니 밖에서도 눈에 잘 띄어서 누군가가 우리 부부가 일요일마다 성당에 가는 것을 알고는 그 시간을 틈타 도둑질을 한 것이다. 이슬비가 온 뒤라 땅이 질퍽했었는데 여러 개의 발자국이 현관부터 우리 신혼방을 짓밟아 놓고 옷가지와 살림살이를 뒤죽박죽 아수라장을 만들어 놨다. 

너무 놀라서 파르르 떠는 아내를 진정시키고 어지럽혀진 방을 정리하다가 엉뚱한 생각이 들어 절로 웃음이 났다. 

발로 걷어차서 찌그러진 옷장을 보니 도둑이 훔쳐 갈 물건이 너무 없어서 몹시 화가 났었던 같다. 

결혼해서 새로 꾸린 신혼방 치고는 도둑이 탐낼만한 물건이 없어서 옷장을 뒤지다가 발길질로 분풀이를 했던 것 같다. 그나마 귀중품이라고 비싸지 않은 결혼반지도 신혼인지라 외출할 때면 손가락에 꼭 끼고 다녔으니 도둑을 맞았다고 파출소에 신고할 것도 없었다. 지저분한 도둑 발자국에 기분은 상했어도 가진 것이 없다 보니 잃을 것도 없는 가난한 자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가난한 것이 행복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된 물질의 행복이 세상을 지배하지는 않는 것 같다. 부자이든지 가난하든지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신적인 만족감에 따라 스스로 기쁨을 가질 때 행복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소소한 일에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얻게 된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어찌 보면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보다 생활의 편리함은 더 있을지 모르지만 도둑맞을 물건이 없었던 생활 속에 내가 경험한 역설적인 행복은 부자의 기준으로만 본다면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에 행복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이렇듯 나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삶이 다행이라는 역설적인 위안으로 신혼생활 한해를 지나 첫 딸을 선물을 받았다.    

  

아내가 만삭이 되어 오늘내일 출산을 앞두고 긴장하며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밤새 불규칙적으로 오는 진통으로 아내는 잠을 이루지 못하다 새벽에 진통의 간격이 잦아지고 규칙적으로 느껴진다며 나를 깨웠다. 급하게 택시를 잡아 아내를 태우고 평소에 진료를 받았던 산부인과 병원으로 가서 분만실 복도에서 초조하게 아내의 출산을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간호사는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던 나에게 “공주님입니다”라며 축하인사를 해주었다. 한참 후에야 회복실로 실려 온 아내는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았지만 무척 힘들어 보였다. 아내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고 간호사에게 아이를 건네받아 세상에 막 태어난 첫 딸아이의 숨결을 느끼는 기쁨의 순간을 맞았다. 


딸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되었다. 그 시절에 아이의 건강한 앞날을 축하해 주는 백일잔치는 가족 친지는 물론 동네 이웃과 직장동료에 이르기까지 마을잔치였다. 그때 백일잔치는 대부분 집에서 음식을 마련해서 치렀는데 비좁은 신혼집이었지만 마침 옥상이 있어서 옥상에 돗자리를 깔아서 손님을 맞을 수 있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온 손님들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옥상 군데군데 둘러앉아 늦은 시간까지 고스톱을 쳤다. 늦은 밤에 웃고 떠드는 소리에 지금 같으면 이웃 간에 다툼도 있었을 텐데 백일잔치를 하는 집으로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인심 좋은 동네 이웃들이 많았다. 떠들썩했던 백일잔치가 마무리되고 이 사람 저 사람 품을 옮겨 다니며 축하를 받던 첫 딸아이의 새록새록 잠든 얼굴을 보며 아내와 나는 흐뭇한 행복감을 느꼈다.      

요즈음 ‘일(Work)과 삶(Life)의 균형(Balance)’이라는 뜻으로 ‘워라밸’이라는 성공적인 삶을 꿈꾸는 청년들이 늘어가고 있다. 반면에 청년들의 실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연예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소위 3포 시대가 늘어나고 있어서 걱정이 크다.

더욱이 3포 시대에 덧붙여 내 집 마련이나 인간관계를 포기한 5포 세대 더 나이가 꿈과 희망마저 포기하는 등 N포 세대로의 부정적인 확산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따라 가장 행복할 수도 가장 불행할 수도 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결국은 자신의 몫이다.    

  

사람들은 흔히 뭔가 목표를 성취했을 때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성취한 목표가 스스로 세운 목표일 수도 있을 것이고 좋은 환경에서 어렵지 않게 달성된 목표일 수도 있다. 

환경과 여건이 청년들을 점점 N포 세대를 만들어 간다는 시대적 흐름의 물꼬를 잘 터야겠다. 

포기란 말 대신 용기로 세상을 향해 ‘워라벨’을 꿈꾸는 청년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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