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스방 Nov 19. 2023

뉴스가 된 TV 광고

열정의 삶으로 가능성을 넓혀라.

주말 아침에 달콤한 휴식에 빠져들어 텔레비전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아무튼 출근'이란 프로그램에 리모컨을 멈췄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아 직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남의 일터 엿보기’란 내용으로 꾸려지는 프로그램이다. 

그날 방송된 일터 중에 어린이들을 위한 전문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치과의사의 일상이 소개되었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진료하는 의사 선생님의 진솔한 모습이 편안한 주말 아침에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의사 선생님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치과 진료를 받을 때 “아” 하고 입을 벌리고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던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했었다고 한다. 

그런 기억으로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없애주려고 진료할 때 “다음에 무엇을 할 거고 잘하면 어떤 선물을 받을 수 있다”라며 진료 과정을 어린이와 함께 놀이로 만들어 간다고 했다. 

어린이와 눈높이를 맞추어야 하는 일터에서 그 일을 즐기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또한 방송에서 의사 선생님은 올바른 양치질 습관을 알려주면서 치약 사용에 대한 꿀팁을 주었다. 

양치질할 때 칫솔에 치약을 완두콩만큼만 짜서 해도 충분한데 텔레비전에서 치약 광고는 칫솔에 치약을 수북하게 짜내어 양치질하도록 광고한다고 한다. 

이러한 치약 광고는 치약 소비를 부추겨서 치약 판매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을 목적으로 하지만 현명한 소비자는 이러한 광고를 잘 걸러서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텔레비전 광고는 대게는 15초의 짧은 순간에 정보를 전달하고 효과를 기대하는 마케팅 수단이다. 

또한 광고 표현에 따라서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15초의 예술과 미학이라도 불린다. 

나는 홍보실에서 대외 홍보를 맡아 언론사를 드나들면서 광고업무도 담당하게 되었다. 

내가 있는 신협은 은행 업무가 주된 업무로 예금을 받고 대출하면서 얻어지는 수익을 조합원인 주민과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일을 한다. 

금융사업으로 이익을 내는 영리 행위를 하는데도 이익을 내어 조합원과 지역사회에 돌려주기 때문에 비영리법인으로 되어있다.   

   

나는 광고를 통해서 신협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사회적 순기능을 잘 알려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광고는 돈의 전쟁이다.’라고도 하는데 그 당시 홍보실의 광고예산은 빈약했다. 

신문광고는 간헐적으로 해왔지만 TV광고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빈약한 예산이 짜여 있었다. 

TV광고를 만들어서 공중파 방송에 방영하려면 15초 한 번 방영에 몇 백만 원씩 들어갔다. 

그런데 3억 원 정도의 예산으로 TV광고를 제작하고 공중파 방송에 광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선 광고대행사를 선정하기 위해 공개경쟁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국내에서 가장 큰 J 기획이 선정되었다.

J 기획은 우리의 광고예산은 보잘것없었으나 신규 광고주가 되어 신경을 더 썼는지 이례적으로 광고 부서의 인력을 추가하여 TV광고 기획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광고예산이 TV광고를 제작하고 방영하기에는 너무나 적은 예산이어서 묘책을 만들어야 했다.      

대형 광고 기획사였던 J 기획은 그 당시 방영 중이었던 SBS의 인기 드라마 ‘은실이’의 출연진을 모델로 광고를 제작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장안의 인기를 끌던 드라마이다 보니 출연진들에 대한 유명세와 그에 따른 출연진들의 광고 모델 개런티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적은 개런티로 TV광고 계약이 이루어졌다. 

출연자들은 그 당시 드라마 '은실이'의 높은 시청률에 대한 보답으로 광고 출연료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성금으로 기부하는 것으로 마음을 모았다.

드라마 ‘은실이’ 출연진이었던 탤런트 이경영, 임현식, 반효정, 원미경, 성동일, 권해효와 주인공 은실이 아역에 전혜진 등이 적극적으로 촬영에 참여했다.    

  

이들은 남양주에 있는 광고 촬영 세트장을 오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TV 광고를 찍었다. 

그러나 적은 광고예산으로 TV 광고를 제작하고 광고를 실행하려니 ‘광고는 돈의 전쟁이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광고 출연진의 개런티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적은 비용이었지만 광고 제작비를 빼고 남는 돈으로 TV 광고를 하려니 가뭄에 콩 나는듯한 광고 노출로 광고효과를 거두기에는 어림없었다. 

     

그런 와중에 깜짝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SBS 저녁 8 뉴스에서 우리가 제작한 광고가 화제의 코너로 보도되었다.

드라마 '은실이' 출연자들이 광고 출연료를 소년 소녀 가장 돕기에 기부했다는 뉴스 속에 15초짜리 신협 광고가 전파를 타고 뉴스로 전해졌다. 

광고 노출 횟수가 적어서 웬만해서는 볼 수 없는 TV광고를 뉴스에서 보도하니 그 파장은 꽤 크게 나타났다. 뉴스 보도 후에 주변에서 신협 TV광고를 뉴스에서 보았다며 '은실이' 출연자들의 선행을 통해 신협의 TV광고를 잘 알리게 되었다고 여기저기에서 격려 전화가 이어졌다. 


'은실이' 광고가 기대 이상의 광고효과를 가져오자 이듬해에는 광고예산을 조금 더 늘릴 수 있게 되었다.     

늘어난 광고예산으로 신협의 긍정적 이미지를 확산하기 위한 TV광고 기획을 시작했다. 

금융업무를 통해 얻은 수익을 조합원인 주민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순기능을 잘 알려서 건실한 성장을 해야 한다는 광고콘셉트를 기획했다. 

광고콘셉트로 급격한 성장이 아닌 한 뼘 한 뼘의 착실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담는 광고 기획안이 만들어졌다.  


그런 기획 의도에 맞게 ‘수익도 믿음도 한 뼘 더 신협’이란 광고 문구가 탄생하게 되었다. 

광고 모델로 탤런트 하희라와 유준상 씨를 정하고 광고 촬영에 들어갔다. 

잠실 롯데월드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배경으로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간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광고 촬영은 계속되었다. 

나와 광고담당 대리는 광고주로서 모니터링을 위해 함께 밤을 지새우며 어찌나 회전목마를 탔던지 어지러워서 혼날 지경이었다. 


새벽까지 촬영을 모니터링하느라고 힘들었던 담당 대리에게 집에서 쉬고 오후에 출근하라고 일러두고 나는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바로 출근했다.      

그런데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했더니 나보다 먼저 담당 대리가 출근해서 광고 촬영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여직원이라서가 아니라 뜬눈으로 밤을 꼬박 지새우면서 꼼꼼하게 촬영 모니터링을 하느라고 나보다 더 힘들었을 텐데... 그래서 집에서 쉬고 오후에 출근하라고 했는데도 책임감으로 열정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피곤해서 핑계만 있으면 쉬고 싶었던 나는 그녀의 모습으로 보고 머쓱하기도 했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남녀의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익도 믿음도 한 뼘 더 신협’이란 광고 문구는 최근까지도 홍보문구로 쓰이고 있다.    

  

홍보실에서 이런저런 업무를 하다 보니 어느새 홍보실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가 되었다. 

나는 사보 편집과 발행 언론매체 홍보업무뿐만 아니라 국제업무도 관장하게 되었다.      

신협은 ‘Credit Union’ 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 있으며 미국, 캐나다, 호주에 이어 우리나라 신협은 세계에서 네 번째의 규모로 성장했다. 


미국은 백악관에도 신협이 있을 정도로 신협이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이민자들이 이민 생활의 안전한 정착을 위해 스스로 만든 한인 신협들이 미국과 캐나다에 여러 곳에 있다. 

이런 미국과 캐나다의 한인 신협의 임직원들을 초청하여 한국의 발전상과 한국의 성장을 알리는 북미주 한인 신협인 연수회를 실시하고자 참가자의 프로필을 받아보았다.      

이민 전에 한국에서 대기업 임원 경력 등 대부분 참가자가 한국에서 잘 알려진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이민 후에는 슈퍼마켓, 세탁소, 채소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체면 때문에도 할 수 없었던 일들도 미국 문화에 적응한 이민 생활에서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타국에서 가족을 위해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삼 가족에 대한 부모 세대의 희생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삶의 다양성과 호혜적 가치에 대한 생각을 넓혀갈 수 있었다.

내가 모질고 거센 세상살이의 어려움 끝에 작은 행복을 얻은 것은 아직도 세파에 찌들지 않은 순수함을 가졌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떤 행복도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 속에서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탤런트 시험 떨어진 홍보쟁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