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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Nov 25. 2023

마닐라 소매치기

열정의 삶으로 가능성을 넓혀라.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행복이란 무엇이고 어떤 상태일까? 라는 뜬금없는 생각으로 유튜브에 ‘행복’이란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유튜브가 답이다.’라고 할 정도로 행복을 주제로 한 강연이 꽤 많이 있었다. 

여러 강연을 순서대로 훑어보다가 행복에 대한 표현이 마음에 확 꽂히는 강의를 만나게 되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고,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됐다.’라며 서은국 심리학 교수는 경험과 실험의 통계를 근거로 행복을 설명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이런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결국에는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라며 강연의 결론을 맺었다. 


유튜브 강연을 보고 한동안 눈을 감고 지나온 내 삶 속에서 소소한 기쁨으로 행복을 느꼈었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어린 시절 운동회 날 어머니가 사주신 자장면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에서부터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직장을 얻고 아내를 만나서 가정을 꾸리어 가족을 이루기까지의 삶의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들 속에 행복이 있다고 하듯이 우리 다섯 가족이 함께해 온 삶들이 나를 행복감에 젖어 들게 했다. 

직장에서 업무차 해외에 다녀올 일이 가끔 있어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나라는 그 해나 이듬해에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여행을 가곤 했었다. 


그 첫 번째 여행이 필리핀 여행이었다. 

출장으로 다녀왔던 곳이라 호텔과 항공만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고 우리 가족들만을 위한 배낭여행을 떠났다. 

인천공항을 날아올라 마닐라에 도착하자마자 38인승의 경비행기에 옮겨 타고 보라카이 인근 까띠끌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메케한 매연 냄새가 펄펄 나는 트라이시클을 타고 항구로 가서는 ‘방카’라는 배를 타고 보라카이 섬으로 향했다. 

바닷속이 훤히 보이는 청정한 바다만큼이나 여행의 즐거움으로 해맑게 웃어대는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면서 보라카이의 여정을 시작했다. 


리조트에 방 두 개를 잡고 정해진 일정도 없이 에메랄드빛 바다와 리조트 안의 수영장을 오가며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았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망설여지는 해양레저 스포츠를 흥정해서 싼값으로 즐기기도 하면서 리조트에서 빈둥거리며 쉬다가 장난기가 발동했다.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다 온 아이들의 방 열쇠를 감추고 아이들에게 리조트 프런트에 가서 문을 열어달라는 도움을 청하도록 했다. 


막내는 초등학생이라 영어가 낯설겠지만 중학생인 오빠와 고등학생인 언니가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난감해하며 프런트로 향하는 아이들을 몰래 따라갔다. 

프런트 앞에 외국인 직원을 보자 아이들은 서로 쭈빗쭈빗하며 눈치를 보다가 중학생인 둘째가 말문을 열어 ”마이룸키 인 더룸“이라고 더듬거렸다. 

일부러 만든 해프닝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외국인에 대한 영어 울렁증을 떨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흘간의 보라카이 일정을 마치고 마닐라로 돌아와서 예약한 시내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 식사도 할 겸 근처 백화점에 갔다. 

저녁 식사를 하고 백화점에서 아이들 청바지를 사려고 했더니 크기가 잘 맞지 않아서 포기하고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서 백화점을 나왔다. 

마닐라 시내를 걷던 우리는 무더위에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홀리듯이 빨려 들어갔다. 


가게에는 사람들로 꽉차있어 아이스크림을 사서 마닐라 해변의 야외 식당가로 향했다. 

좁은 길에는 차와 사람이 엉키고 섞여서 떠밀려 가듯이 걸어가야만 했다. 

나는 가방을 비스듬히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백화점에서 산 간식거리와 다른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인파에 파묻혀 점점 아내와 아이들과 멀어져 갔다. 

내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내 앞뒤에 있는 아가씨들 옷에 묻지 않도록 팔을 높이 들고 온갖 신경을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에 집중했다. 


거리는 외국인들이 잘 다니는 길이 아닌 듯 우리 가족 외에는 외국인을 볼 수 없었다. 

어느덧 내 앞뒤로 현지인 아가씨 넷이서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가 먼저 가려고 “익스큐즈미” 하면서 앞서가려면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익스큐즈미”라고 내 말을 따라 하면서 길을 터 주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외국인이라 장난으로 그런 줄 알았다. 


한참을 가서 길이 넓어지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서 마닐라 해변 야외카페에 둘러앉았다. 

번잡한 길을 빠져나오느라고 진땀을 빼서 그런지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해서 아내와 나는 맥주 두 잔과 아이들은 망고와 파인애플 주스를 시켰다. 

야외 테이블이라 그런지 주문과 동시에 돈을 내야 했다. 

메고 있던 가방에 손을 넣어 더듬더듬 지갑을 찾았다.


그런데 가방 속에 넣어둔 지갑이 없었다. 

가방을 왈칵 뒤집었지만 지갑은 온데간데 없었다. 

몇 분 전에 있었던 일들이 뒷걸음질 치듯이 떠올랐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돈을 내려고 어깨에 멘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고 거리로 나섰을 때 나는 이미 소매치기의 타깃이 되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좁고 번잡한 길에서 나를 앞뒤로 에워싼 아가씨들에게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묻히지 않으려고 애썼다. 

앞에선 그녀들을 앞지르려고 했을 때 장난스럽게 웃으며 길을 막아대는 그녀들의 행동이 단순히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한 내가 너무 멍청했다. 


낯선 해외에서 가족의 안전을 지켜야 할 가장이 가족이 보는 앞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것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그나마 다행히도 여권은 가방 깊숙이 그대로 있었고 호텔에 남겨둔 비상금으로 남은 여행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쓰라린 해외여행의 추억을 인상 깊게 남기고 이국적인 문화의 맛을 본 우리 가족은 이후에도 여행을 통해 행복을 충전했다. 


해를 걸러 국내와 해외여행을 번갈아 가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덧 청소년기를 벗어나 청년이 되었다. 

보통의 청년들은 배낭여행이라든지 그들 또래와 함께하는 여행을 즐긴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조금은 다른 것 같았다.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서도 주말이 다가오면 이번 주말에 무슨 계획이 있느냐고 항상 나에게 먼저 물어왔다.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일정을 자기들의 일정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과 행사에 익숙해져 있었고 가족과 함께하는 기쁨 속에 행복감을 느껴 왔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아내와 결혼한 지 삼십 년이 되었다. 

큰딸아이가 은근히 재면서 “요즈음에 부모님하고 가족여행을 가는 것을 다른 일정보다 우선으로 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은 많이 없다.”라며 그해의 여행 계획을 물었다. 

나름 우리 부부는 결혼 30주년을 핑계로 아이들과 떨어져 부부만의 여행을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접어두란 듯 아이들이 먼저 여행 계획을 물어왔고 결혼 30주년 기념 가족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여행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능숙하게 여행 계획을 세워 하노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노이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서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결혼 30주년을 축하하는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놓여 있어서 아내와 나를 감동시켰다. 

아이들이 호텔 측에 우리 부부의 결혼 30주년 기념 여행을 미리 알려놓았다. 

우리 가족이 여행을 통해 사랑을 다지고 함께하는 기쁨을 느껴 온 것은 서로 아끼고 존중해 주려는 마음이 가슴 깊이 들어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가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동안 토막토막 꼬리 감추듯 사라져간 행복한 감정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는 학자의 이야기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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