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팔을 벌리면 가슴도 열린다.
지금은 군입대 등 그룹활동이 뜸해졌지만 한국의 K-Pop을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킨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싱글차트 1위’라는 뉴스 보도로 세상이 떠들썩했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것 이상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이런 까닭에 장래희망 1순위가 연예인이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명성도 얻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나는 이런 이유라기보다는 생계를 위해서 탤런트가 되려고 했었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서 생계를 위해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탤런트 공개모집 광고를 보았다.
지금은 연예 기획사나 대학교 연극영화과의 전문교육 등을 통해 탤런트를 배출하지만 그전에는 방송국마다 탤런트 공개모집으로 탤런트를 선발했었다.
나는 MBC 탤런트 공개모집에 지원했다.
탤런트 선발 공개 오디션이 있던 날 여의도 MBC 사옥 앞 큰 공터에 공개모집에 지원한 젊은 청춘 남녀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었다.
어림잡아 이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원한 것 같았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화판에서 조연으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들이 탤런트로 데뷔하고자 많이 지원했다고 했다.
따라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탤런트로 뽑히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이구동성 입을 모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 차례의 오디션 차려가 왔다.
오디션은 다섯 명씩 조를 짜서 드라마에서 출연자가 연기했던 대사를 표현하는 실기시험으로 진행되었다.
우리 조는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범인으로 출연한 탤런트 이계인 씨가 연기했던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심사위원들 앞에 그어진 다섯 개의 둥근 원에 한 명씩 서서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우리 조는 나만 빼고 다들 영화판이나 연극 무대의 경험이 있는 듯 외모에서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특이하게 하얀 한복에 백 고무신을 신은 지원자가 내 바로 앞에서 열정적으로 연기했다.
나는 내 앞에 두 사람의 프로급 연기 실력에 기가 죽어서 내 차례가 되자 길지 않은 대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내 모습으로보고 심사위원이 대사가 생각나지 않으면 보고해도 된다고 독촉했다.
당황해서 뒷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나눠준 대본을 꺼냈다.
연기의 감정이입은커녕 읽는 것도 어리바리했다.
결과는 보나 마나였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대의 대 스타가 되었던 탤런트 황신혜 씨가 나와 오디션 반열에 함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이 길은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비록 대학 시절에 탤런트 오디션은 방송국 구경으로 끝이 났지만 그 후로 직장에서 홍보업무를 맡으면서 방송국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삼 년간의 제주도 근무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홍보실로 전보 발령되었다.
홍보실에서 신문과 방송 미디어를 상대하는 대외홍보 업무를 맡았다.
전국에 걸쳐 있는 직장의 네트워크를 통해 방송 아이템을 찾아서 교양국 프로듀서들과 협의하고 제작진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우리 직장의 방송 아이템은 휴머니즘이 배어있어서 그런지 KBS의 아침 교양 프로그램에도 자주 소개되었다.
그 당시 생활 속에 미담으로 방송된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는 감동과 실망을 교차시켰다.
시각장애인들이 스스로 생활의 편익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서로 돕기 위하여 금융협동조합인 S신협을 만들었다. 그 당시 S신협은 시각장애인들의 생활을 돕고 위해 생필품을 가정에 배달해 주고 저축과 예금인출을 조합원의 집과 직장을 방문하여 처리해 주며 은행 업무의 편의를 돕는 출장 업무를 하고 있었다.
S신협의 영업장에는 점자로 만들어진 입출금 전표도 있어서 점자 전표를 결재하는 책임자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촬영 일정에 맞추어 영업장에 조합원들의 예금거래 장면을 찍고 몇 가정을 방문하여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한 생활을 소개하고 그러한 불편함을 덜어 주려고 애쓰는 S신협 직원들의 따뜻한 모습을 담았다.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K 프로듀서를 만나서 방송 후 시청자들의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KBS의 아침 교양 프로그램이었던 ‘전국은 지금’에 한 꼭지로 방송되었는데 방송 후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어떤 시청자는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돕는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이었다”
라며 좋은 평가를 해주기도 했지만 반면에
“출근 시간에 우울한 장면으로 아침부터 우울한 감정을 갖게 했다”
항의성 전화도 있었다고 한다.
K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듣고 어려운 이웃의 삶을 담은 이야기를 자신의 이기적인 감정으로 눈살 찌푸리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도 들었다.
그렇지만 몇 차례 방송 프로그램을 나와 함께한 K 프로듀서는 신협의 풋풋한 휴머니즘을 잘 이해하고 내가 찾아내는 아이템을 방송해 주었다.
그동안 K 프로듀서에게 신협의 순수한 휴머니즘의 정서를 잘 전달한 것이 한몫했다는 생각에 홍보담당자로서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K 프로듀서는 현직에 있을 때 어려운 사람들을 대변하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었다.
지금은 방송국을 퇴직하고 올바른 리더십을 강의로 전달하는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K 프로듀서가 바로 영화 “울지 마 톤즈”을 만들고 후속작 “부활”을 제작하여 감동을 선물한 구수환 사단법인 이태석 재단 이사장이다.
나는 홍보업무를 하면서 사람 살아가는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전에 농촌 신협의 조합원이 유기농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도시의 조합원들이 소비하는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돕는 이야기를 ‘MBC 농산물 대잔치’란 프로그램으로 제작했다.
충북 J신협의 조합원이 유기농으로 생산하는 벼, 무, 배추, 오이, 고추 등 여러 가지 농산물을 그 시기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한 탤런트 차인표 씨가 소개했다.
당시 그는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이틀 동안촬영 일정 내내 겸손한 자세로 임하는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인연이 있었는지 그 후로 이 십여 년 지나서 신협의 ‘어부바’ 광고모델이 된 그를 TV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덤빈 탤런트 공채에는 떨어졌지만 홍보쟁이가 되어 방송국을 드나들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전파하는 기쁨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