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파니즈

#8

by 삼류작자


작은 어촌 마을 바닷가에 붙어 있는 파란색으로 바랜 ‘영일 공조’ 간판이 달린 낡은 창고.

철문은 반쯤 내려와 있었고, 앞에는 흙바닥이 드러난 너른 마당이 펼쳐져 있었다.

마당 둘레는 울퉁불퉁한 양철 담벼락이 둘러싸고 있었다.

형광등 몇 개가 희미하게 깜빡이는 창고 안에는 여자들 일곱 명이 있었다.

대체로 이십 대 중반에서 서른쯤 되어 보이는 여자들이었다.

짙은 화장, 과하게 그린 눈썹, 번들거리는 입술.

불안해 보이는 기색은 없었다.

누군가는 구석에 앉아 발을 주무르고 있었고,

누군가는 담배를 피우며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간이 침대에 드러누운 채 그대로 잠들어 버린 여자도 있었다.

마치 오래 기다려 온 순서를 앞에 둔 사람들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창고 한쪽에서는 스무 살을 갓 넘긴 혜린과

이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민정이 낮은 목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언니는 있잖아.”

민정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지금 일본에 있는데, 돈 꽤 벌어.”


“진짜요?”

혜린이 눈을 반짝였다.


“어. 한국 남자들보다 훨씬 매너 좋다더라. 일도 깔끔하고.”

민정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눈 딱 감고 이 년만 고생하면 되지.”

그녀는 다시 담배를 빨아들였다가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빚 다갚고 와서 가게 하나 차리면 끝이지 뭐.”

그 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적이었다.

모든 게 계획 같았고, 선택 같았다.

여기 있는 시간이 잠시의 대기처럼 느껴질 만큼.


그때,

철커렁—

금속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창고 문이 열렸다.

가방을 껴안고 잔뜩 움츠린 정숙이 팔계와 함께 들어왔다.

팔계는 안을 한 번 훑어보더니 투박한 말투로 턱짓했다.


“저기 아무 데나. 빈 침대 있지? 앉아 있든지, 누워 있든지.”

옷가방을 끌어안은 채 정숙은 말없이 그의 지시에 따라 이동했다.

민정과 혜린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여자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번졌다.


“이제 출발하는 거에요?”


“아니, 한 시에 간다잖아.”

팔계가 손바닥을 한 번 내리치듯 들어 올렸다.

마치 연설이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자자, 전국팔도 미스꼬리아~ 우리 아가씨들.”

손목시계를 슬쩍 보며 말했다.


“한 시간 후면, 꿈과 희망의 땅 자파니즈로 출발한다 아이가.”

창고 안에 짧은 웃음이 흘렀다.


“잘 사람은 좀 더 자고, 놀 사람은 놀고. 배가 고픈건 참아주세요. 이~ 이따 배타면 토하고 똥싸고 지랄 막 아주 서로 고생이야!”

그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오케이?”

팔계는 더 말하지 않고 뒤돌아서서 창고 밖으로 나갔다.




팔계가 나가자, 창고 안의 공기가 조금 느슨해졌다.

민정은 벽에 등을 붙인 채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라이터 불빛이 잠깐 얼굴을 비췄다가 꺼졌다.

그녀는 연기를 내뿜으며 정숙을 가만히 훑어봤다.

웅크린 자세로 가방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눈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마치 이곳에 없는 사람처럼.

민정은 담배를 입에 문 채, 혜린을 향해 턱짓으로 정숙을 가리켰다.


“언니.”

혜린이 낮게 불렀다.


“언니는… 어디서 왔어?”

정숙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방 끈만 더 꽉 붙잡았다.

손끝이 하얗게 질릴 만큼.

그 모습을 본 민정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는 고개를 아주 작게 저으며 혜린을 힐끗 봤다.

말 걸지 말라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신호였다.

혜린은 어색하게 인상을 찌푸리더니 달싹이던 입술을 다물었다.

민정이 내뿜은 담배 연기만 천천히, 천장 쪽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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