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창석의 사채 사무실.
유리 책상 앞에 짙은 화장에 명품 옷을 두른 날티 나는 여대생이 앉아 있다.
명품 백은 무릎 위에 올려둔 채,
다리를 꼬고 계약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기가 계약서를 책상 위로 밀었다.
“여기 찍으시고.”
펜 끝으로 한 줄을 짚었다.
“여기도.”
서류 위에 펜으로 선을 그으며 말했다.
“날짜는 이 날입니다. 이자랑 원금 합쳐서, 요렇게 입금하시면 되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펜을 쥔 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사인을 하는 사람도, 설명을 하는 동기도 모두 익숙해 보였다.
“자— 뭐, 다 됐네요.”
“네.”
창석은 책상 뒤에 기대 선 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말없이. 마치 이미 수십 번 본 장면처럼.
서류가 정리되고, 돈이 건네졌다.
여자는 가방에 돈을 쑤셔 넣고 일어났다.
문이 닫히자 동기가 낮게 말했다.
“요즘 애들은 진짜 겁도 없네요.”
창석이 코웃음을 쳤다.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창석은 골프 퍼터를 잡고 카펫 위에서 공을 굴리며 잠시 말을 골랐다.
“어차피 못 갚으면 몸으로 때울 생각인 거지.”
툭—
공이 홀컵 가장자리를 스쳤다.
“어쨌거나 잘 갚기만 하면,”
퍼터 끝으로 공을 다시 놓으며
“비즈니스는 쉽잖아.”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망치는 수금 갔어?”
—계단을 내려오는 여대생과
올라오던 상훈이 스쳐 지나쳤다.
상훈은 무심코 여자를 힐끗 봤다.
정숙과는 다른 화려한 옷차림,
짙은 화장.
여자는 상훈을 보지 않았다.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상훈이 창석의 사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동기와 눈이 마주쳤다.
상훈은 조금 기어들어가는 말투로 말했다.
“저기..사백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