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일본 어선의 갑판 위는 훨씬 정돈되어 있었다.
기름 냄새와 바닷물 냄새는 같았지만, 사람들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여자들은 일본어선으로 옮겨 탄 뒤부터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아까까지 웅성거리던 기척은 사라지고, 모두가 긴장한 듯 어깨를 움츠린 채 얌전하게 쇼이치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말을 거는 사람도, 불평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 배에서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쇼이치는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운 채 여자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갔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보고, 종이를 내려다봤다.
목소리는 낮고 사무적이었다.
“이름”
여자가 더듬거리며 대답하면 쇼이치는 서류에 눈을 내렸다 올렸다.
“나이”
짧은 확인이 끝나면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일본어, 조금이라도 할 줄 알아?”
고개를 젓는 여자도 있었고,
“조금…” 하며 손가락으로 애매한 표시를 하는 여자도 있었다.
앞서 몇 명의 여자를 거쳐 흔들리는 배에서 쇼이치가 정숙 앞으로 다가왔다.
“이름.”
쇼이치의 말에 정숙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가방을 끌어안은 채, 그녀의 시선은 바다 저편 어딘가에 향해있었다.
쇼이치의 손에 들린 서류에는 각자의 채무와 필요한 인적 사항은 적혀 있었다.
본토로 향하는 긴 시간 동안 미리 여자들 한 명 한 명 확인하며
어떤 곳으로 보낼지를 분류하고 있었다.
말을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여자,
얼굴이 단정한 여자,
나이가 어린 여자들은 종이 위에서 다른 줄로 옮겨졌다.
어차피 모두 구역의 풍속점으로 보내질 예정이었지만,
그 안에도 분명한 등급이 있었다.
“이름?”
쇼이치는 다시 한번 물었지만,
정숙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 반응도 없이 먼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쇼이치는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시선을 멈춘 뒤,
정숙의 이름 옆에 체크하듯 〈사쿠라방(さくら房)〉이라 적어 넣었다.
사쿠라방(さくら房)은 주류 접대가 없는 곳이었다.
말을 섞을 필요도, 웃을 이유도 없다.
어찌 보면 구역의 풍속점들 중 가장 밑바닥 그저 지독하게 몸만 굴리면 되는 곳이었다.
쇼이치는 체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류철을 가볍게 정리하며 다음 여자에게로 향하려다,
갑판 끝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렌조와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쇼이치는 그 짧은 순간,
정숙 쪽을 다시 한번 힐끗 보더니 어딘가 미묘하다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렌조는 그 시선을 받자 고개를 돌려 정숙을 바라보았다.
잠시 스칠 것 같던 렌조의 시선은 그대로 멈춰 한동안 정숙에게 머물렀다.
잔잔한 바람에 머리칼이 가볍게 흔들렸고,
화장기 없는 얼굴은 어딘가 아련하게 보였다.
렌조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바다 먼 곳을 응시했다.
수평선이 저 멀리서 흐릿하게 풀리고 있었다.
잠시 뒤,
쇼이치는 여자들의 분류가 끝났는지 서류철을 덮었다.
그리고 여자들 앞에 서서 말했다.
한국어는 분명 조금 서툴렀지만 목소리는 차분했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본토에 도착하면, 대기 중인 차량을 타고 사무실로 이동합니다.”
여자들의 얼굴을 한 번 훑은 뒤 말을 이었다.
“사무실에서 잠시 대기하고, 앞으로 각자 일하게 될 곳에서 사람을 보내 데려갈 겁니다.
그 이후의 일은 그쪽에서 진행됩니다.”
그는 사실 전달만 하듯 담담했다.
“여러분은 각자 빚이 있어서 이곳에 온 겁니다.
나는 밀항과 알선을 맡은 사람이고,
가능한 한 조건에 맞는 곳으로 배정합니다.”
잠시 말을 멈췄다가,
쇼이치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빚과 부대 비용을 모두 갚기 전까지는
조직의 관리 아래에 있게 됩니다.
절대 불필요한 문제는 만들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여러분이 규정을 지켜 준다면, 끝까지 신사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
시선을 한 번 더 훑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자의 금액을 모두 정리하면,
원할 경우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습니다.”
쇼이치의 말이 끝나자 갑판 위는 조용해졌다.
여자들은 질문하지 않았다.
설명이 명확할수록,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도 또렷해졌기 때문이다.
본토로 향하는 긴 시간 동안 렌조의 시선은 가끔씩 정숙에게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