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떼들

#14

by 삼류작자


난코 부두의 끝자락.

항만이라기보다 버려진 경계에 가까웠다.

대형 컨테이너 선들이 오가는 중심부와는 달리,

이쪽은 불빛도 소리도 듬성듬성 끊겨 있었다.

가로등 몇 개가 바닷물 위에 길게 흔들리는 빛을 드리우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바람에 깜빡이며 제 역할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멀리 서는 컨테이너가 부딪히는 둔탁한 금속음이 간간이 들려왔지만,

이곳까지는 닿지 못했다.

유난히 잔잔한 바다에 작은 어선 몇 척이 그림자처럼 묶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곳으로 스며들 듯이 배가 조용히 닿았다.




한국을 떠난 지 꼬박 하루가 지났다는 사실이 정숙의 몸에 먼저 와닿아 있었다.

피로 때문인지 눈앞의 생경한 풍경도,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도 둔감하게 스며들 뿐이었다.

어쩌다 끼어버린 톱니바퀴 속에 몸을 맡긴 듯 이끌리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의지도 판단도 없이..

배에서 내려 첫 발을 딛는 순간, 땅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인간은 금방 적응한다.

배 위에서 그랬듯, 이번에는 땅에서 적응하면 된다.

그리고—

어쩌면 이곳에서도.


쇼이치의 어설픈 한국말 외에는 귀에 걸리는 소리가 없었다.

세상에서 처음 듣는 것 같은 말들이 의미를 갖지 못한 채 공기처럼 흘러갔다.

정숙은 다른 여자들과 함께 한 무리의 양 떼처럼

몰이꾼의 지시에 따라 휩쓸리듯 움직였다.

부두에 세워져 있던 승합차에 나뉘어 몸을 실었다.

금세 엔진 소리가 낮게 깔리며 부두의 냄새와 소음이 문 밖으로 밀려났다.


차로 삼십 분쯤 달렸다.

정숙이 탄 차량은 여덟 시간 동안 같은 배를 타고 오는 내내

말없이 무뚝뚝하던 렌조라는 남자가 운전을 맡았다.

이동하는 동안 정숙을 포함해 네 명의 여자들이 같은 차에 타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정숙은 창밖을 보며 오사카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는 걸 지켜봤다.

네온과 간판이 사라지고,

길은 점점 좁아졌으며,

창밖의 풍경은 도시의 숨겨진 곳으로 들어서는 듯했다.

관광객이 길을 잘못 들 일조차 없는 곳.

지도에는 표시돼 있어도,

굳이 찾아올 이유가 없는 동네였다.


낡은 2층 건물 앞에서 차가 멈췄다.

외벽은 오래된 담배 연기처럼 누렇게 바래 있었고,

간판 하나 없이 계단만 어둠 속에 떠 있었다.

앞 차량에서 내린 쇼이치가 서둘러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불을 켰다.

주변에는 저층 건물들과 낡은 주택, 오래된 멘션들이 흩어져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는 걸 감안해도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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