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무실 한쪽 벽으로 여자들이 대기하듯 흩어져 대부분 잠들어 있었다.
벽에 기대거나, 서로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였다.
낯선 언어의 말소리가 사무실 안을 떠돌고 있었다.
쇼이치가 여자들을 보낼 업장과 통화하는 목소리만이
뜻을 알 수 없는 음절로 부서져 울렸다.
한국에서 출발한 지 스무 시간이 넘는 이동으로 인해 극도로 피곤에 지친 여자들에게는
그저 멀리서 웅웅 거리는 백색 소음처럼 들릴 뿐이었다.
정숙도 벽에 등을 붙인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완전히 잠들지도, 그렇다고 깨어 있지도 않은 상태였다.
맞은편 책상 쪽에서
툭.
툭.
렌조는 의자에 기대앉아 책상 위로 다리를 올린 채
생각에 잠긴 듯 고무공을 천천히 던졌다가 받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쇼이치가 분류를 끝낸 서류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중 한 장,
정숙의 이름 옆에는 〈사쿠라방(さくら房)〉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었다.
그의 시선은 허공과 손 안의 오가는 공과는 상관없이 정숙에게로 향해 있었다.
가방을 껴안은 채
숨을 고르듯 천천히 오르내리는 어깨.
경계도, 기대도 없는 얼굴이었다.
렌조는 한 번 더 공을 던졌다가 이번에는 받지 않았다.
공이 바닥을 구르며 멈췄다.
그는 생각이 끝났다는 듯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숙 앞으로 걸어갔다.
책상에 걸터앉아 여자들을 보낼 업장에 전화를 돌리던 쇼이치가 고개를 돌렸다.
“おい、ショウイチ ”
(어이, 쇼이치.)
정숙 앞에 멈춰 서서 가만히 내려다보며 렌조가 낮게 말했다.
“ノブカズ には、今回は七人しか入ってないってことにしとけ。 ”
(노부카즈한테는 이번에 일곱 명만 들어온 걸로 해.)
쇼이치는 잠깐 멈칫했지만 이유를 묻지 않았다.
렌조의 말은 허락이나 동의를 구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おい”
(어이.)
짧은소리였다.
정숙은 그 소리에 반응하듯 천천히 고개를 들어 렌조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아주 잠깐 겹쳤다.
그 찰나,
렌조를 올려다보던 정숙의 시선 위로
고아원에서 누군가를 올려다보았던 생각이 스쳤다.
그가 누군지 떠올리려 해도 숨어들 듯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낯선 장소, 혼란스러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처지 때문인지 그때와 비슷한 감각만이 몸에 먼저 와닿았다.
렌조는 그 얼굴을 한 박자 더 보고 있다가 결정을 내린 듯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 대신 정숙의 손목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잡아끄는 손길이었지만, 불필요한 힘은 들어가지 않았다.
정숙은 언뜻 거칠게 보이는 그 손끝에서 미묘한 배려를 느꼈다.
그녀는 저항하지도, 따라가기로 결심하지도 않은 채
그 힘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렌조는 그대로 정숙의 손목을 끌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