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쳤을 때

#19

by 삼류작자


그칠 것 같지 않던 비가 결국 멎었다.

밤새 벌어졌던 불편한 일들과 남자의 거친 호흡소리가

정숙의 머릿속에서 파편처럼 맴돌았다.


소리 없는 저항,

필요 이상으로 힘을 쓰지 않는 강압.



그가 먼저 잠들었지만

정숙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잠든 그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 렌조가 몸을 일으켰을 때도

정숙은 처음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멀어지자

정숙은 그제야 숨을 풀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지만

그것이 괴로움인지, 슬픔인지, 분노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정숙은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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