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되었든

#20

by 삼류작자



시간은 흘러갔다.

렌조는 둥지로 먹이를 물어 나르는 새처럼

도시락이나 생필품을 사 들고 와 조용히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말은 없었고, 묻지도 않았다.



시간은 흘러갔다.

렌조는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돌아올 때면,

마치 일부러 시간을 늦춘 것처럼 늘 깊은 밤을 골라 들어왔다.

그는 거실에 불을 켜지 않은 채

혼자 술잔을 기울이다가

잠든 듯 누워 있는 정숙의 이불속으로 들어왔다.

정숙이 몸을 밀어내면 처음과 달리 그는 더 다가오지 않았다.

조용히 팔만 둘러 그녀를 껴안은 채 잠들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무언의 타협점이 되었다.



시간은 흘러갔다.

한 달쯤 지나자

죽은 듯 가라앉아 있던 집에 서서히 숨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낮 동안 집에 남아 있는 사람은 정숙 혼자였다.

그녀는 화단을 가꾸고,

먼지 쌓인 구석을 닦고,

망가진 것들을 조금씩 손봤다.

어느새 이곳이 그녀의 전부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대문밖으로 나서는 일만은 여전히 두려웠다.



시간은 흘러갔다.

엉망이던 화단은 그녀의 손을 거치며 단정해졌다.

그리고 어느 맑은 날,

낡은 화단 한편의 동백나무 가지 끝에서

봉오리 하나가 조심스럽게 벌어졌다.

붉은 꽃잎이, 마치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피어났다.


렌조는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려다 그 꽃망울을 한참을 쳐다봤다.


이전 19화비가 그쳤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