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유리코는 며칠째 그 집을 드나들었다.
처음엔 잠시 들른 사람처럼 툇마루에 주저앉아
시답잖은 이야기를 혼자 늘어놓다 가곤 했다.
어떤 날은 들어와 아무 말 없이 담배 한 대만 태우고 그대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풍속점에서 보낸 나날만큼이나 유리코가 얻은 게 있다면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이었다.
며칠 동안 정숙을 지켜본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어딘가 많이 고장 나버린 애.’
아무튼 그렇게, 유리코는 정숙에게서 어느새 렌조와 비슷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었다.
그저 드나들었고,
떠들었고,
있다 갔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숙은 더 이상 유리코를 경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하루는 혼자 마당을 서성이며 담배를 피우다
한쪽에 잔뜩 정리되어 쌓여 있는 편의점 도시락 용기들을 보게 됐다.
유리코는 그 앞에 잠시 서서 아무 말 없이 담배 연기만 내뿜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내 혼자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オホラ……こうやって食ってたってわけか。”
(오호라… 이렇게 먹고살았다는 거지.)
정숙은 거실바닥에 주저앉아 동백나무에 걸어 두었던 새장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뚝딱거리며
나무를 다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유리코는 그녀를 스쳐지나 발걸음을 재촉해 후다닥 주방으로 들어갔다.
서랍을 열고, 찬장을 열고,
주방 이곳저곳을 거침없이 뒤졌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자 안쪽 선반에 가지런히 놓인 편의점 도시락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はあ——ほんと……バカな奴だね。”
(하아— 진짜…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구.)
누가 듣든 말든, 렌조를 꾸짖는 혼잣말이 냉장고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毎日こんなもんばっか食ってたんでしょ?”
(맨날 이런 것만 먹고살았단 거지.)
팔을 걷어붙이고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주방을 훑어보던 유리코가 곤란한 듯 얼굴을 감싸 쥐었다.
“これ…仕方ないよね。”
(이거 참, 할 수밖에 없잖아.)
오전에 주방을 뒤지다 밖으로 나갔던 유리코가 오후가 되어서 다시 들어왔다.
손에는 장바구니가 묵직하게 흔들렸다.
이내 주방에서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あー、もう。 包丁、これ何なの。”
(아— 못 살아. 칼이 이게 뭐야.)
“まな板も小さいし。”
(도마도 작아.)
“はぁ〜……鍋、いったい何年使ってないのよ。”
(아~~ 냄비는 도대체 몇 년이나 안 쓴 거야.)
유리코는 투덜대면서도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고기를 썰고, 채소를 넣고, 냄비를 옮기며 익숙한 동작으로 스키야키를 준비했다.
요리가 진행되는 동안 말은 중간중간 끊이지 않았다.
투덜거림도 있었고, 자신의 솜씨에 내뱉는 감탄도 잊지 않았다.
국물이 끓기 시작했다.
집 안에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의 단내가 퍼졌다.
간장을 조금 더 붓고,
설탕을 집어넣은 뒤 유리코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よし。”
“……このくらいでいいね。”
(좋았어— 이 정도면 됐다.)
그때였다.
정숙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주방 쪽으로 다가와 있었다.
유리코의 옆에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서 냄비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리코는 그 시선을 느끼고 괜히 더 으쓱해진 얼굴로 국자를 들었다.
“ほら。”
(자.)
국자로 국물을 조금 떠서
정숙 쪽으로 내밀었다.
“味、見る?”
(맛… 볼래?)
유리코가 국자를 살짝 기울이자 정숙은 조심스럽게 입을 가져갔다.
국물이 입 안에 퍼지는 순간,
정숙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
유리코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でしょ。”
“私が料理すると、やっぱ違うんだから。”
(거봐.
내가 요리하면 역시 다르다니까.)
그때 대문 쪽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렌조였다.
갑자기 내린 비에 젖은 신발을 벗고 들어와 주방 쪽을 힐끗 본 그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한 손에는 편의점 도시락이 몇 개 든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주방 쪽에선 냄비에서는 김이 오르고,
그 가케츠의 유리코씨가 요리를 하고 있었고,
정숙이 그 옆에 서 있었다.
그 광경이 렌조에게는 굉장히 낯설었다.
렌조와 눈이 마주치자 유리코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짓했다.
“手、洗って。座りな。”
(손 씻고. 앉아.)
렌조는 잠깐 망설이는 듯했지만 짧게 “어”라는 말을 내뱉고는
손에 들려 있던 도시락 봉지를 아무렇게나 툭,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없이 방에 들어가 젖은 외투를 벗고 나와 욕실에 들러 손을 씻고선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으로 같은 자리에 앉은 식사가 시작됐다.
어색한 공기가 스치려 하면 유리코가 어김없이 입을 열었다.
십 년이 넘도록 사람을 상대하며 눈치 보고, 기분을 재고, 분위기를 눌러왔던 여자였다.
그런 건 생각할 틈도 없이 몸에 밴 대로 말이 튀어나왔다.
시답잖은 이야기,
별 의미 없는 불평,
누군가를 흉보는 듯하다가도 금세 웃어넘기는 말들.
덕분에 식사는 생각보다 조용히, 그리고 무난하게 흘러갔다.
렌조는 젓가락을 들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정숙에게로 시선이 흘렀다.
정숙은 자리 앞의 흰 밥만 먹다가 냄비에서 고기 한 점을 건져 먹었다.
그러다 유리카가 고기를 건져 생달걀에 적셔 입에 넣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다.
정숙 역시 흉내 내듯 생달걀에 적셔 입에 넣으려는 찰나,
입을 막고 고개를 숙였다.
헛구역질이 한번, 그리고 다시 한번 이어졌다.
참지 못하고 의자를 밀치듯 일어나 급하게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렌조의 얼굴에 어쩔 줄 모르는 당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젓가락을 든 손이 무언가라도 해줘야 할 것처럼 어정쩡하게 허공에서 멈췄다.
유리코는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짧게,
“오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