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 顔(ガオ)

#35

by 삼류작자


다니구치는 뒷좌석에 몸을 묻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운전대 앞에는 얼굴 한쪽에 화상 자국이 남은 마른 남자,

심부름꾼이자 운전기사 하세가와 준페이가 앉아 있었다.

차는 아침부터 렌조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니구치의 머릿속에는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옛날, 렌조가 어릴 때 지 애비 마냥 조직의 심부름이나 하며 신센바 근처를 어슬렁거릴 때.

지나치다 말고 괜히 불러 세워 머리통을 쥐어박았던 기억이었다.

그때는 이유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해도 되는 놈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칙쇼…’


마사노리 영감과 대화가 끝났다면 이젠 마땅한 수는 이미 다 떨어졌을 것이다.

지금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렌조를 보스로 추대하고, 그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그리고, 자신이 렌조를 추대한다면 조직 내 잡음도 반발도 없을 테고 그럼 렌조 쪽에서도 나쁠 게 없는 그림이다.

그래도 단둘이 있을 때 먼저 배를 보이는 정도라면,

자존심을 완전히 땅에 문지르는 건 아닐 터였다.


“長谷川。”

(하세가와.)


“はい。”

(예.)


“ここで左に曲がれ。”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


“道がほとんど行き止まりですが……この辺ですか?”

(길이 거의 끝인데… 이 근처입니까?)


준페이는 오는 내내 다니구치의 날 선 기색에 누구의 집인지 궁금해졌지만,

그 생각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あそこだ。前に停めろ。”

(저기, 저 앞에 세워.)


다니구치는 옆에 둔 음료 박스를 열어 안을 확인했다.

캔 아래에 숨겨진 현금 다발.

그걸 보는 순간, 저절로 욕이 흘러나왔다.


“ちくしょう……。”

(칙쇼…….)


차에서 내린 그는 음료 박스를 들고 검은 나무 대문 앞에 섰다.

한 번 길게 숨을 내쉬고 문을 두드리려던 순간,

안쪽에서 묘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국 노래였다.

다니구치는 잠시 귀를 기울였다.

고개를 갸웃하다가 문을 슬쩍 밀어보았다.

열려 있었다.


“水原。”

(미즈하라.)


안으로 들어서며 한 번 불러보는 순간,

툇마루에 걸터앉아 사과를 깎고 있던 렌조가 고개를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 뒤, 거실 쪽에는 임신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마치 자신이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묻는 듯,

조심스럽고 겁먹은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다.

여자 앞에는 이미 깎아 놓은 사과가 담긴 접시가 놓여 있었고,

차부다이 위 CD 플레이어에서는 생소한 한국 음악이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니구치는 잠시 눈을 꿈벅거리며 그 모든 상황을 훑어본 뒤,

재밌다는 듯 얼굴에 서서히 화색이 돌았다.


“おい、水原〜。”

(어이, 미즈하라~)


목소리 톤이 한결 가벼워졌다.

렌조 맞은편 툇마루에 걸터앉더니

사과 하나를 집어 들어 입에 덥석 집어넣었다.


“通りがかりでな、家にいるなら挨拶でもと思ってさ。」”

(지나가는 길에 집에 있으면 인사나 할까 해서 말이야.)


“こちらの方は……?”

(이분은 누구…?)


말끝을 흐리며,

능글맞은 시선이 정숙에게로 흘러왔다.

질문인지, 놀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눈길이었다.


“りんご、うまいな。”

(사과 맛있네.)


사과를 한입 더 베어 문 채,

다니구치는 원래도 험상궂은 얼굴을 미세하게 일그러뜨렸다.

시선은 여전히 정숙 위를 느리게 훑고 있었다.

그때, 렌조의 목소리가 그 시선에 제동을 걸 듯 끼어들었다.


“谷口さん.”

(다니구치상.)


“え?”

(에?)

정숙에게 고정돼 있던 다니구치의 눈길이 마지못해, 천천히 렌조 쪽으로 돌아왔다.


“明日……事務所で、会えたら会いましょう。”

(내일… 사무실에서 볼 수 있으면 봅시다.)


잠시, 렌조의 날카로운 시선과 다니구치의 퉁명스러운 눈빛이 맞물렸다.

그 짧은 틈에 말하지 않은 것들이 오갔다.


“おっと、もう行かなきゃな。”

(아이구야, 가야겠네.)


다니구치는 태연하게 일어섰다.


“挨拶は済んだしな。”

(인사는 했으니 가지 뭐.)


손에 든 선물용 음료 박스를 가리키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最近さ——これ、なかなかうまいんだよ。”

(요즘 말이야—이거, 꽤 맛있거든.)


“今度、買って飲んでみな。”

(다음에 한번 사서 마셔봐.)


마당을 나서면서도,

방금 본 광경이 꽤 마음에 들었다는 듯 다니구치의 낮은 웃음소리가 뒤에 남았다.




차에 다시 올라탔을 때,

다니구치의 얼굴은 내릴 때와 달리 조금은 펴져 있었다.

역시 후배에게 배를 까보이는 건 다니구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うまくいきましたか?”

(잘 풀리셨습니까?)


준페이는 누구를 만나고 왔는지 모르지만

차에서 내릴 때보다 한결 풀린 다니구치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 잘 풀렸냐고?’


그제야 깨달았다.

예상 밖 장면들에 그저 우습게 느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다니구치의 화색이 돌던 표정이 서서히 풀리더니 굳어졌다.

렌조의 입에서 나온 ‘다니구치상?’... ‘볼 수 있으면 봅시다?’ 그 말 끝이 기분 나쁘게 되새겨졌다.


‘건방진 놈...’


다시 가지고 나온 음료 박스를 바라보다가 짧게 말했다.


“事務所へ行くぞ。”

(사무실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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