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39

by 삼류작자


렌조의 집 대문 앞.


준페이는 대문 앞에서 서성이다 대문을 슬쩍 밀어 본다.

역시나 잠겨 있다.

혹시라도 도망칠 일이 생기면 땅이 미끄러운지 미리 확인해 두는 듯 발이 번갈아 바닥을 긁었다.

그리고는 대문을 걷어찰 기세로 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내 기세는 어디로 가고 멈춰 선다.


‘혹시나… 조직원의 집이라면. 괜히 봉변을 당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상상이 머릿속을 스치자 발목이 먼저 굳었다.

준페이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잭나이프를 확인하듯 더듬었다.

어차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몰려오자, 난감한 듯 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 씨발.. 어째야 하나'

그때 머릿속에서 번뜩, 싸구려 묘수가 떠올랐다.


쿵. 쿵.


덜렁거리는 문이 생각보다 크게 울려, 스스로도 움찔했다.


“電気の検針です。”

(전기 검침 나왔습니다.)

다듬어 뱉은 목소리가 생각지 않게 갈라졌다.

준페이는 급히 목을 다시 가다듬고 문틈에 얼굴을 바짝 붙여 안쪽을 들여다봤다.

혹시라도 남자의 그림자라도 스치면, 아니면 굵은 목소리라도 들리면 일단 물러설 생각이었다.

입안이 바짝 말라 혀로 몇 번이나 입술을 훑었다.

그때 안쪽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한국 가요가 갑자기 멎었다.

그는 괜히 눈에 힘을 주고, 작은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문틈을 노려봤다.

잠잠하다.

집 안에 있는 사람도, 자신처럼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쿵. 쿵.


“電気の検針です。”

(전기 검침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말하려 했지만 끝 음이 어정쩡하게 흐려졌다.

마치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처럼 대문을 노려봤지만, 속으로는 계산이 복잡했다.


‘다니구치형님이 그랬잖아. 임산부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듯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그는 대문을 흔들어 보고는 귀를 문에 갖다 댔다.

숨소리라도 새어 나올까 봐 자기 숨까지 죽였다.

확실하다. 저쪽이 숨고 있다.


“ほう……”

(흠…)


입꼬리가 제법 못되게 말려 올라갔다.

준페이는 일단 물러나는 듯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주변을 한 번 더 훑어봤다.

길 끝자락에 노인네들만 사는 동네. 어릴 적 빈집털이를 하던 곳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심이 서자 그는 냅다 발을 들어 올려 문을 밀어 찼다.


쿵!


“クソったれ……さっさと開けろよ、クソ!”

(빌어먹을…… 문 열라고, 씨발!)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쿵—!


나무가 갈라지는 둔한 소리. 빈약한 잠금쇠가 비틀리며 밀려났다.

검은 대문이 안쪽으로 벌어졌다.

이미 상황 파악은 끝났다는 듯, 준페이의 발걸음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그대로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거실 쪽에서 누군가 얼굴을 살피듯 반쯤 내밀었다.


정숙이었다.

준페이와 눈이 마주친 찰나,

정숙의 심장이 순식간에 턱 하고 막혀왔다.


마른 몸. 얼굴에 남은 화상 흉터.

승합차 안.

거칠게 닫히던 문.

허벅지 위로 올라오던 손.


파편처럼 갑자기 튀어 오른 기억에 정숙은 비명을 삼킨 채 뒤로 물러섰다.

그대로 방향을 틀어 방 안으로 달아났다.

준페이는 뛰어들 듯 따라붙었다.

신발 바닥이 바닥을 거칠게 긁었다.

어두침침한 방안 코너에 몰린 정숙은 가방을 끌어안아 몸을 막았다.

그런 그녀와 대치한 준페이 역시 잔뜩 긴장한 채 숨을 고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一緒に来い。”

(같이 갑시다.)

엉겁결에, 말이 지나치게 친절한 톤으로 튀어나왔다.

화상자국이 있는 준페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정숙의 눈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어두운 밤.

복부에 닿던 남자의 주먹질.

어선 위에서 웅크리고 있던 감각.

그날 밤, 끌려가던 기억들이

끊어진 필름처럼 하나둘 밀려들었다.


“立て。”

(일어나.)

시간이 늘어질수록 준페이의 긴장도 함께 조여 왔다.

주머니 속에서 잭나이프를 꺼냈다.

딸깍.


“早くしろ、クソ……!”

(서둘러, 빌어먹을…)

흔들리는 준페이의 눈동자.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칼끝이 정숙의 배 쪽으로 기울었다.

정숙의 시야가 꺼졌다 켜지듯 흔들렸다.


“……立てって言ってる。”

(일어나라고 했잖아.)

위협이었지만 목소리는 떨렸고, 말끝은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복부에 닿을 듯한 칼 끝에 팔을 잡아끌자, 정숙은 떨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준페이는 가방을 끌어 앉은 정숙을 잠시 바라보다 그대로 끌고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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