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50

by 삼류작자


택시는 공항 고속도로를 타고 미끄러지듯 달렸다. 차 안에는 혜나의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아, 진짜. 라이라이켄(来来軒) 라멘 맛은 보여줬어야 하는데……. 언니, 이쪽으로 좀 보라니까?”


이미 나서기 전에 화장도 모든 준비도 마친 상태였지만 혜나는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투덜대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연신 정숙의 얼굴 위로 섀도와 붓을 가져다 대며 화장을 다듬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진한 화장에 정숙은 자신의 얼굴이 가면이라도 된 듯 어색하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혜나가 인상을 쓰며 정숙의 턱을 잡아 고정했다.


“아, 좀 가만히 있어 봐. 거의 다 됐으니까.”


“고마워요..”

혜나는 낯간지러운 감정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더욱 짐짓 쌀쌀맞게 대꾸하며 붓 끝을 세웠다.


“어허!.. 공짜 아니잖아..”


혜나는 자신의 ‘작품’을 감탄하듯 뜯어보았다. 유리코가 사주었던 실크 블라우스의 고급스러운 광택이 정숙의 하얀 피부와 맞물려 묘한 기품을 내뿜었다. 하의는 혜나가 동네 보세점에서 급하게 사 온 하늘하늘한 롱치마였지만, 상의의 브랜드 로고와 정숙의 단아한 외모 덕에 전체적으로는 귀티가 흘렀다.

반면, 혜나는 오늘 철저히 조연을 자처했다. 평소의 화려한 옷차림 대신 정갈한 셔츠에 단정한 치마를 입은 그녀는 수행하는 역할을 연기하기로 했다.


“언니, 내가 말했지. 사람은 도도하고 고고해 보여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함부로 못 한다고”


앞 좌석의 택시 운전사가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의 기묘한 두 여자를 무심하게 힐끗거렸다. 혜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숙의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말을 늘어놓았다.


“준비는 완벽해. 그치 그치? 표 끊고 비행기 타는 것까지는 문제없을 텐데……. 왠지 임신한 여자가 비행기를 타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단 말이지.”


정숙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파동을 감지한 혜나가 다시 정숙의 뺨을 붙잡으며 짐짓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렇다는 게 아니고. 나도 잘 몰라서 그래. 그렇다 쳐도 언니는 개월 수에 비해 배가 별로 안 나온 편이니까, 최대한 티 안 내고 타면 돼. 알았어?”


품에서 짝퉁 샤넬 선글라스를 꺼내 정숙에게 씌웠다.

“요시. 이제 이대로 게이트 통과해서 한국 땅 밟기만 하면 끝이야”


그 순간, 정숙의 아랫배가 안쪽에서부터 천천히 밀려오듯 단단해졌다.

미세한 꿈틀거림이 아니라, 누군가 작은 주먹으로 안을 두드리는 것처럼 또렷한 움직임이었다.

정숙은 숨을 짧게 들이켰다.

혜나가 그 기척을 놓치지 않았다.


“왜? 아 왜?”

정숙은 고개를 저었지만, 손은 어느새 배 위로 올라가 있었다. 따져보면 만삭에 가까웠지만 정말로 정숙의 배는 다른 산모들에 비해 크게 부풀진 않아 있었다. 하지만 얇은 블라우스 너머로 단단하게 차오른 배가 느껴졌다. 또 한 번, 안에서 쿡 하고 밀어 올렸다.

혜나의 얼굴이 굳었다.


“아… 설마 지금…?”


정숙은 조심스럽게 숨을 골랐다.


“그냥 움직이는 거예요. 괜찮아요.”


말은 담담했지만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택시는 고속도로 이음매를 지날 때마다 덜컹, 작은 진동을 만들었다. 그때마다 혜나는 본능적으로 정숙의 배를 감싸듯 손을 올렸다가, 제 손길이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 슬며시 거두었다.


“지금 나올 생각은 아니지? 공항에서 애 낳으면 나 진짜 도망간다?”

애써 농담처럼 말했지만, 웃음은 짧았다.

정숙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괜찮아요. 아직은 아니에요.”


“아직은… 이라니.”


“버텨줄 거예요.”

짧은 확신이었다.

혜나는 한숨을 내쉬며 택시기사를 흘끗 보았다. 운전사는 상황을 이해했는지 속도를 조금 줄였다. 차창 밖으로 공항 표지판이 스쳤다.

혜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오늘만은 얌전히 있어라, 꼬맹이.”


그러곤 손가락 끝으로 정숙의 배를 툭 건드렸다. 장난처럼.

그러자 안에서 다시 한번, 작지만 분명한 반응이 느껴졌다.

혜나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미친! 대답도 하는 거야?.”

정숙은 선글라스 너머로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한국 가는 거 아는가 봐요.”

그 말에 혜나는 더 이상 농담을 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며 차창 밖으로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들이치는 햇살이 혜나의 옆얼굴을 투명하게 비췄다. 저만치 공항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사흘간의 짧은 동행이 끝나간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 한 구석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혜나는 멍하니 밖을 응시하다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혹은 정숙에게 당부하듯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러니까…… 도도하고 고고해 보여야 해. 누구도 함부로 손 못 대게.”


저 혼자만 들릴 듯 중얼거린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모를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정숙은 혜나가 씌워준 선글라스 너머로, 화장 때문에 뻑뻑해진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곁에서 모든 걸 계획하고 준비해 준 혜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소에몬초에서 처음 보았을 때 진하게 덧칠한 그 날 선 화장은, 사실 혜나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온 단단한 갑옷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함께한 시간은 겨우 사흘.

누군가에겐 스쳐 지나갈 만큼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벼랑 끝에 서 있던 두 여자에겐 서로를 알아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 사람에게는 잠깐의 숨,

다른 한 사람에게는 붙잡을 수 있는 손.


혜나는 선글라스의 어두운 렌즈 속에서도 정숙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아 있음을 느끼고는, 쑥스러운 듯 그녀의 얼굴을 슬쩍 밀어 앞으로 돌려세웠다.


“멀 그렇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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