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방 안에는 정숙을 팔아넘기던 날의 흔적이 아직도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헤집어 놓은 서랍장은 입을 벌린 채 방치되어 있었고, 때가 덕지덕지 묻은 이불은 방구석에 흉하게 밀려나 있었다. 사람의 온기 대신 찌든 담배 냄새와 눅눅한 곰팡이내가 방 안을 점령하고 있었다.
상훈은 벽에 걸린 금 간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한쪽 눈에는 피고름이 배어 나온 듯 누렇게 물든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붕대를 들춰냈다. 안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텅 빈 구멍 대신, 급히 봉합된 붉은 살덩이와 아직 붓기가 가라앉지 않은 안와(眼窩)가 흉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의안을 넣기 전, 비어 있는 공간을 억지로 메운 생살이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아, 씨발… 존나 징그럽네.”
거울 속 괴물을 마주한 상훈의 입에서 저주처럼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상실감은 곧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번졌다.
“시발! 개 같은 거! 좆같은… 내 눈!”
악에 받쳐 거울을 깨부술 듯 주먹을 떨던 순간, 낡은 판자문이 밖에서 덜컹거리며 정적을 깨뜨렸다.
“동구야… 밥 먹어. 동구야! 밥 먹고 자야지!”
주인집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몇 해 전 아들 동구를 사고로 잃고 오락가락하더니 끝내 정신줄을 놓아버린 노파는, 세 들어 사는 상훈을 제 죽은 아들로 착각하고 있었다.
상훈은 귀찮다는 듯 거칠게 붕대를 다시 덮어씌우고 몸을 일으켰다.
“아이, 씨발. 미친 노친네. 밥 말고 돈이나 주지.”
문을 벌컥 열고 마당으로 나섰다.
“아, 엄마! 밥 말고 돈 좀 달라고!”
문 앞에 서 있던 육십 대 중반의 여자가 움찔하며 돌아섰다. 어딘가 초점 없는 눈동자였지만, 상훈을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자애로운 빛이 어렸다.
“엄마가 미안해, 동구야. 엄마가 깜빡했어.”
상훈은 멍청하게 웃는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짜증이 치밀었지만, 뱃속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가 비굴하게 식욕을 자극했다.
“…뭐 차렸는데.”
“너 좋아하는 계란말이 했지. 얼른 가서 먹자.”
여자가 배시시 웃으며 안채 툇마루에 차려진 낡은 밥상 쪽으로 손짓했다. 상훈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마시다 남은 소주병을 집어 들고 안채로 향했다. 밥상 위에는 식어버린 밥 한 공기와 노란 계란말이, 그리고 쉰 김치가 전부였다.
“배 많이 고프지? 우리 아들…”
여자가 주름진 손으로 김치를 길게 찢어 밥 위에 올려주었다. 상훈은 그 손길이 닿은 밥그릇을 보며 진저리를 쳤다.
“아, 씨발! 내가 알아서 먹는다고!”
옆에 놓인 물컵을 집어 들어 마당 바닥에 홱 쏟아버렸다. 그러고는 빈 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텅 빈 눈의 고통을 마비시키려는 듯, 독한 술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 앞에서 노파는 박수를 치며 흥얼거렸다.
“우리 아들 잘~ 먹네. 우리 아들 잘 먹네~”
그 광경이 익숙한 듯, 상훈은 아무렇지 않게 차려진 음식을 입안으로 우악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때, 마당 저편의 철제 대문이 쿵쿵 흔들렸다.
상훈의 얼굴이 굳었다. 눈알 한쪽으로 사채업자와 채무는 모두 정리했지만, 덜컥 긴장이 스쳤다.
철제 대문 밖에서 정숙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상훈 오빠… 저기 아주머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