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랑

3-4장 미안해.

by 삼류작자


부부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무거웠다. 여자의 표정 하나 없는 눈에 그렁그렁 차오르던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남자는 자신조차 몰랐지만 아내와 다를 것 없이 텅 비어버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이 꿈이 아님을, 더 나아가 앞으로 일어날 일임을 서로 깨닫고 있었다.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다는 절망이 둘을 무겁게 짓눌렀다.

다른 존재들의 그 어떤 상념이 마음속 울림처럼 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라고 물어온다.

부부는 그대로 굳어버린 석상이 되어버린 듯 한참 동안을 움직이지 않고 서로만 바라봤다.


남자는 무언가를 추스르려 애쓰는 듯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억눌린 감정을 삼키며 천천히 손을 식탁 위에 올렸다. 마치 그 작은 움직임조차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말없이 안방으로 향했다. 옷장 속에서 겉옷을 꺼내어 걸치고는, 다시 거실로 나와 자신의 아내를 잠시 바라보다, 현관 쪽으로 향했다. 차가운 철제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차갑고 묵직한 밤공기가 그의 얼굴을 스치며 들어왔다.


여자는 그의 움직임에 그 어떤 동요도 없었다. 여전히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그녀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가 현관문을 나가고 문이 '철컥' 하며 닫히자 여자는 그제야 숨죽인 울음을 터져 나왔다. 입술을 깨물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조차 부족했는지 그녀는 결국 무릎을 꿇고 바닥에 웅크리듯 흐느낀다.

그녀의 모든 슬픔은 소리 없이 터져 나왔지만, 온 집안은 그 슬픔의 무게로 가득 찬 듯했다. 희미한 형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그들의 물음이 마치 무거운 운명의 짐처럼 그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이는 책상에 쌓인 문제집을 덮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으~!!! 다 했다." 혼잣말하며 방에서 나서던 그의 얼굴에는 작은 성취감과 기대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 밝은 표정은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굳어버렸다.


식탁 아래에서 웅크린 채 몸을 떨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다. 평소와 다른 기묘한 정적이 집 안에 감돌았다.


"엄마...?"


아이는 당황한 채로 가까이 다가갔다. 식탁 아래의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고 불길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손을 뻗어 엄마의 어깨를 살며시 감쌌다.


그 손길이 닿자마자 여자는 반사적으로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그녀는 흠칫 놀란 눈으로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고, 그 안에는 두려움과 혼란이 가득했다.


"엄마... 괜찮아? 왜 그래?"
아이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의 시선은 여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굳게 닫힌 입술과 초점 잃은 눈빛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녀의 침묵은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멍하니 있던 그녀의 눈에, 사랑스러운 아들의 얼굴이 천천히 들어왔다. 그녀는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애써 평정을 되찾으려 했다.

“공부 다 했어?”
여자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온해 보이려는 애처로운 노력의 결과였다.


그것도 잠시 자신의 아들의 걱정 어린 눈빛을 마주하자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양볼을 감싸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어리둥절했지만 어미의 슬픔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걱정어린눈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그러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는지 그녀는 오열하며 아이를 껴안았다. 눈물이 쏟아져 내려 그녀의 손끝에서 아이의 뺨 위로 떨어졌다.

아이는 영문을 몰랐지만 어떻게든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작은 팔로 엄마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엄마... 울지 마.. 엄마 울지 마..” 아이 역시 어미의 감정이 전이된 듯 오열한다.

아이의 말은 어리고 어색했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이 여자의 가슴을 더욱 후벼 팠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껴안고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여자는 억지로 자신을 추스르며 아이를 달랬다. 한 번 더 눈물을 훔친 그녀는 최대한 평소처럼 보이려 애쓰며 말했다.

“우리 승호, 오늘 엄마랑 네 방에서 같이 잘까?”

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엄마 울지 마..”

“그럼, 양치하고 방 정리하고 잘 준비해 줄래. 엄마가 너무 피곤해졌어.”

“응, 알았어!”

아이는 밝은 척 씩씩하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그를 뒤에서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쉰 뒤, 천천히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으로 들어간 여자는 침대 옆 서랍에서 수면제 상자를 꺼냈다. 손끝이 떨리는 그녀는 상자를 열고 알약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진 그녀는 다시 한번 감정이 북받쳐 올라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린다.

울다 지친 그녀는 안 방 화장실로 가서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었다. 부은 얼굴을 정리하고 머리카락을 정돈한 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충혈되고 퉁퉁 부은 두 눈으로 주방으로 갔다.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고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

-쉐~~~~~


주전자가 내는 끓는 소리가 집안 가득 울렸지만, 그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했다.

“엄마!”

아이가 뒤에서 나타나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잘 준비 다 했어!”

무언가 넋이 나가 있던 여자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잘했어.”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가스 불을 껐다. “엄마가 따뜻한 차 가지고 갈 테니까, 먼저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어.”


“응, 알겠어!” 아이는 밝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다시 혼자가 되자, 손에 쥔 수면제를 바라보았다. 작은 결심이 섞인 한숨을 내쉰 뒤, 끓인 물에 찬물을 섞어 미지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알약을 그 안에 넣고 녹였다. 티백 하나를 담가 색을 냈지만,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눈물을 삼키며 얼굴을 단단히 닦은 여자는, 마음을 정리한 듯 차를 들고 아이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가 침대 위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차 가져왔어, 우리 아들 따뜻하게 마시고 푹 자자.” 그녀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 감춰진 슬픔은 어둠 속에서 여전히 짙게 남아 있었다.




여자는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창백한 달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어 그녀의 떨리는 손을 비추고 있었다.

여자는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은 따뜻했지만, 그 안에는 떨림이 느껴졌다.

아이가 차츰 숨소리를 고르게 내며 깊은 잠에 빠져들자, 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조용히 눈물을 흘러내렸다. 슬픔이 가슴 깊이 밀려들어 와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승호야..."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베개를 들었다. 모든 감정이 무너져 내리려 했지만 이를 악물었다.

베개를 아이의 얼굴 위에 덮고, 손에 힘을 주었다. 작은 몸이 미세하게 저항하는 것을 느끼자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숨을 죽이며 힘을 주었지만, 그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떠올라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아니야... 안 돼...!"


베개를 던져버리고, 그녀는 아이의 옆에 무너져 내렸다. 여자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흐느낌은 점점 더 커졌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남편이었다.


남자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놀란 얼굴로 아이의 방으로 달려왔다. 문을 열자, 여자가 아이 옆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고, 아이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남자는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아이를 살펴보았다. 그의 시선은 아이의 평온한 얼굴과 여자의 무너진 모습을 오가며 멈췄다. 그는 아내의 곁으로 힘없이 다가가 조용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알아. 당신 마음 알아.”


여자는 그의 말에 억제되어 있던 울음이 더 크게 터져 나왔다. “나... 수면제 먹였어. 죽이려고 했어...” 그녀는 오열하며 울음 섞인 말을 이어갔다. “그러고도 못하겠어서... 미쳤어, 내가. 나도 어쩔 수 없어... 미쳤어..”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여자의 어깨를 다독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여자는 감정이 차츰 잦아들자 애원하는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그냥... 모든 거 잊고 살까? ”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다. 머릿속에는 이미 아이가 자신들을 죽인 뒤 세상에서 어떤 괴물로 평가받을지 얼마나 괴롭게 살아갈지 걱정스러운 생각들이 맴돌았다. 그러면서도 그저 다 잊고 얼마간이라도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싶은 마음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해진 미래는 너무나도 잔혹했다.


남자는 여자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이 흘렀다. 이내 자신 앞에 있는 여리디 여린 아내의 가슴에 차가운 칼날이 박혀 들어가던 모습이 떠오르자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남자는 애써 밝은 표정을 내보이며 여자에게 말했다.


"우리 차라리 좋을 때 그냥 같이 죽을까?"


여자 역시 남자의 허망하게 죽던 모습이 떠올랐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여자를 보듬으며 이마에 키스를 한 뒤 조용히 몸을 일으켜 바닥에 놓인 검은 봉투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봉투 속에는 번개탄 세 장이 들어 있었다.

남편은 주방 가스불을 켜고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번개탄이 서서히 타오르며 연기를 내뿜자, 그는 프라이팬에 그것을 옮겨 담았다.

그리고, 프라이팬을 들고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그는 아이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작은 스탠드 불빛이 방 안을 희미하게 밝혔다.


여자도 그의 옆에 누워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아직도 붉게 부어 있었지만, 더 이상 흐느끼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손끝으로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이렇게라도 곁에 있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남자는 아내와 아이를 차례로 바라보며, 오래도록 잃었던 평화를 찾은 듯 미소를 지었다.


깊은 잠에 빠진 아이를 가운데 두고 부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천천히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기는 스탠드 불빛을 감싸며 방을 채우고 있었다.



움 름은 그 자리에 서 마지막까지 가족을 바라보았다. 방 안에 일산화탄소에 아이의 숨이 다하자 그들은 연기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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