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소설 스토너 속 딸의 시점으로 써본 스핀오프
'윌리엄 스토너.. 오오 아버지'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어머니 목소리에는 상실감과 피곤함이 묻어났지만 슬픔에 젖어 있진 않았다.
어머니답게 형식적인 위로의 대화는 주고받지 않고 짧은 통화로 끝났다.
얼마 전 병상의 아버질 뵙고 와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전화를 끊은 후 벽에 기대어 서 있다 힘이 조금 풀려 자리에 주저앉아 아버지를 기억하며 어린 시절이 떠올렸다.
여섯 살 끝나가던 겨울쯤이었던가. 가끔 엊그제 일도 생각안나지만 그 무렵의 기억은 묵은 얼룩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한동안 아버지와 단 둘이 지냈었다. 그때 부모님이 사이가 좋지 않아 어머니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조금 더 커서 알게 된 사실인데 외할아버지가 자살을 하셨을 때다.
자라며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인해 가끔 외할아버지를 떠올려봐도 전혀 생각이 나진 않는다.
어쩜 외할아버질 뵌 적이 없을 거란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아무튼 그때 제법 오랫동안 어머니는 집을 비우셨다.
때문에 그즈음 아버지와의 둘만의 시간이 많았던 시절이다. 언제나 아버지를 추억하면 연민과 함께 희미하게 그 무렵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그때 평소 거의 서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시던 아버지는 나를 돌보느라 곁에 두셨다. 어린 나에겐 정말 따분한 공간이었지만 그곳에서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이런저런 재미를 찾아냈었다. 머릿속으로 서재에 꽂힌 건조한 책들을 바라보며 색상의 짝 맞춘다던지 패턴을 따라 그리거나 골똘히 무언가에 집중한 아버지의 낡은 슬리퍼를 보며 당나귀를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지루해질 때면 아버지가 만들어준 작은 책상 위에 아무 책이나 펼쳐놓고 따분한 그림들을 찾아내곤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그러다 이따금씩 아버지는 따스하게 나를 바라보며 무슨 말인가 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아버지와 대화할 땐 나도 모르게 최대한 어른스럽게 격식을 차려 말을 했었다.
평소 거의 표정이 없던 아버지도 그럴 때면 대견하단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곤 하셨다.
서른다섯의 삶에서 아버지와 가장 친밀감을 느꼈던 때인 듯하다.
그 해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그리곤 곧장 인생의 각본이 그렇게 짜인 듯 아버진 학교 일로 바빠지셨다.
그 후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무언가에 몰두해 서재에 계시거나 어쩔 땐 또 한동안 집에도 들어오시지 않았다.
같은 집에 살았지만 열두 살 무렵엔 아버지를 한 달여 만에 뵌 적도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은 에드워드 그레이스는 회상에 잠시 잠겼었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인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연민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의 폭풍이 몰아쳐 메말라 있던 눈동자가 기억들을 짜내어 파고들 때마다 조금씩 촉촉이 젖어들다 이읔고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눈물이 흐른다는 것이 온전히 아비에 대한 슬픔으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부친의 임종을 접한 자식이 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도 다한 듯 무심히 흘러내리는 눈물만큼이나 한결 마음이 편안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