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널브러진 현수의 시신은 기괴하고 참혹했다. 그가 받은 충격으로 비틀린 팔다리는 원래 자리에 있던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얼굴에 밀착된 비닐봉지는 핏물에 물들어 비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끈적하게 달라붙은 봉지 속에서 현수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진 채 굳어 있었고, 무언가를 간신히 붙잡으려는 듯 공포와 고뇌가 그 자리에 새겨진 듯했다.
그의 이어폰에서는 여전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 음색은 현장의 차가운 침묵과 어울리지 않는 낯선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고요함 속에 작은 이어폰 음악 소리는 마치 비명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듯, 어딘가 불쾌하고 선명했다.
그때, 허공이 일렁이며 서서히 갈라졌다. 공간의 경계가 찢어지듯 얇은 틈이 열리더니 그 사이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2.5미터에 달하는 그 존재는 매우 희고 빛을 잃은 피부가 논밭처럼 갈라져 그 틈마다 핏물같은 붉은빛이 아른거렸다. '움'이었다.
'움'은 마치 고통과 비명을 머금은 존재처럼 모든 것이 파편화된 얼굴로 무표정하게 현수를 내려다보았다.
'움'이 무릎을 꿇어 그를 살펴보는 순간, 맞은편 허공이 다시 갈라지며 검은 형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움과 닮아 있었지만 반타블랙을 뒤집어쓴 듯 깊은 어둠으로 뒤덮인 몸체가 어둠과 하나 된 것처럼 보였다. 그 또한 움과 같은 형체였지만, 이 존재는 '름'이었다. 그 역시 차가운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보며, 무언의 침묵 속에서 천천히 그 곁에 다가왔다.
움과 름은 마치 신중한 관찰자처럼 현수의 시신을 천천히 훑어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나란히 그의 머리맡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는 거대한 몸을 숙여 동시에 입을 벌려 현수의 양쪽 귀를 덮었다. 비닐봉지가 여전히 그의 얼굴을 덮고 있었지만, 움과 름에게는 아무런 저항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비현실적으로 그 위를 투과해 들어가 현수의 기억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들이 현수의 마지막 순간에 깃든 감정과 기억을 하나씩 탐색하듯 천천히 흡입하기 시작하자, 짧은 생의 마지막 장면들이 그들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요한 밤, 잔잔히 울리던 음악, 온몸이 부서지는 사고의 순간, 그리고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지며 그의 시야에 스며든 무한한 어둠까지...
움과 름은 그의 죽음에 이르는 모든 기억과 고통을 조용히 흡수했다.
그때, 멀리서 낡은 차량 한 대가 어두운 도로를 따라 천천히 들어섰다. 차량의 노후한 헤드라이트가 희미하게 길을 비추며, 바닥에 널브러진 현수의 시신을 발견하자 차 안의 노인은 경악한 얼굴로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를 멈춘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비상등을 켜고, 잔뜩 긴장한 손으로 핸들을 꼭 쥐었다. 잠시 후 두려움에 휘청이는 손으로 차문을 열고 내려 현장을 살폈다.그리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다급하게 번호를 눌렀다.
“네, 여기가…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아마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얼굴에… 무언가가 뒤집어씌워져 있어요…”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한밤중 고요한 공기 속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그가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지만, 움과 름은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노인의 시야에는 오직 비닐봉지를 얼굴에 뒤집어쓴 채 도로에 쓰러져 있는 현수의 기괴한 시신만이 비칠 뿐이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 모든 일을 마친듯한 움과 름은 마지막으로 현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어오르는 어둠 속에서 그들 사이에 교환된 것은 오직 한순간의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의 형체는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움과 름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며 허공에 스며들듯 사라져 갔다.
신고를 계속하는 노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오고 있었지만, 움과 름은 점차 허공에 녹아들며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들의 흔적이 허공에 완전히 스며들고, 공간의 경계가 다시 닫히면서 일렁이던 공기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곤, 도로에는 오직 희미한 음악 소리와 침묵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