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후 3시 II

사람

by 오후세시


나는 어렸을 적부터 우유부단하고, 귀가 얇아 남의 이야기에 쉽게 흔들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하고 가치관에 흔들림 없는 사람을 동경해왔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2살 차이가 나는 한 언니의 다이어트 경험 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본인은 항상 다이어트에는 목표 몸무게보다 2kg을 더 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이어트가 끝나면 요요로 인해 몸이 다시 찔 수 있기 때문이란다. 당시 언니가 이야기한 논리 정연하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신만의 철학은 어린 나에게 굉장한 지침서와 같았다. 마치 내 속에서 보심각 종을 치듯 "아 그런 거구나"하면서 깨달음을 얻게 된달까.


그 이후에도 난 자신만의 가치가 확실하고, 타인과 대화할 때 그에 대한 어필이 강한 사람을 좋아했다. 아니 동경했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화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확고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에너지를 썼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에너지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들은 자신의 선호와 행동에 대한 가치가 명확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것 같았다. '이것이 맞나 저것이 맞나'라고 재는 시간을 일정 이상 소모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결정을 빠르게 내렸다.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낸다. 그러한 확신이 부러웠고, 갖고 싶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센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단순히 가치관의 명확성에 의한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 철학과 가치관으로 데이터를 내려 1,2,3을 외치면 화살표가 "띵"소리에 맞춰 어딘가를 가리킬 것 같은 사람. 아마도 나는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 1,2,3을 외쳐도 화살표가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 할 것이다. 이러한 센 사람들을 동경한 이유로 내 주변에는 몇몇이 있다. 그리고 비슷해지려도 따라 하기도 했었다. 내 가치관을 두드리고 가지를 쳐가며 딴딴한 조형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다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꼭 가치관이 명확해야 할까.




나는 입 짧은 햇님을 참 좋아한다. 그녀의 먹방은 나의 혼밥에 생명을 불어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인간적인 모습도 좋아한다. 그녀의 말투에서는 어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개방하면서 꾸밈도 없다. 언젠가도 센터에서 저녁을 혼밥 하며 먹방을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이 입 짧은 햇님에게 질문을 했다. "햇님님은 살아오면서의 철칙이나 가치관이 있나요?"(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으나,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밥을 오물거리던 입이 쉬진 않으나, 눈동자가 위를 향하며 "음-"하고 고민하던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나이가 들면서 제가 가치관이 바뀌는 게 좋아요. 그게 재밌어요." 밥을 먹다가 얼음물로 축이며 생각나는 대로 내뱉은 그녀의 꾸밈없는 말은 내가 하던 고민에 답을 주는 것만 같았다.


캡처3.JPG 내 최애 영상 ⓒ입 짧은 해님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OfNnnF-wZNw


나는 여태껏 왜 가치관이 바뀌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사람이 살면서 나이가 들고, 외형도 변하고, 취향도 바뀌는데 가치가 명확성과 다르게 흔들리고 바뀌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심지어 그러한 자신이 재밌다는 그녀의 대답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가리키며 '헐벗었다'라고 외치는 아이만큼이나 순수하고 멋있었다. 이쯤 되면 나는 자신에게 확신이 있고, 이를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을 동경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센 사람들의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고 인정받는 순간이 멋있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나는 나에게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가 타인의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길 바랬나 보다.

가치관에 대한 생각을 글로 쓰고 싶었다. 나는 주로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전구가 켜지는 것처럼 번뜩한다. 그리고 그대로 살아가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두고 싶었다. 나는 앞으로도 내 가치관이 바뀌거나 흔들려도 그대로 수용하고 재밌게 살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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