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목소리

by 오후세시


# 목소리

나는 목소리가 나긋 나긋한 사람이 좋다. 워낙 성격이 조급하고, 무뚝뚝하기 때문에 그런지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좋아하며 닮고 싶다. 대게 주변 지인들이 나를 차분한 목소리라고 피드백해주고는 하는데, 이것은 나의 인위적인 노력으로 낳은(?) 목소리라 할 수 있다. 간혹 가다가 유튜브의 알고리즘 파도 속에서 도착에 다다르면, 꽃잎이 내려앉은 것 같은 목소리를 듣곤 한다. 그리고 듣는 입장에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도 저렇게 목소리 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 말

2년 남짓 놀이치료사로 근무했던 곳에서는 같이 일했던 선생님과 꽤나 친했다. 선생님은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았고, 자주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나는 요즘 내가 말발로 상담하고 있는 건 아닌가 고민하게 된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말발(?)이라는 테크닉을 갖춘 게 얼마나 큰 재력인지 뼈저리게 느꼈던 초보 놀이치료사였기에 그 고민조차 부러웠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선생님의 고민이 이해가 간다(물론 내가 그만큼 말발이 생겼다는 얘기는 아니다). 언어는 참으로 놀라운 게 어떠한 단어를 쓰는 가, 어떻게 마무리를 짓느냐, 한 문장에 많은 말이 담겼느냐, 문장으로 끊어서 이야기하느냐 등등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말을 어떻게 하느냐는 상담에서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친다. 상담자의 말발이 치료적 효과를 주느냐. 과거에 나는 무조건 예스라고 답했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끄는 데 말발은 '달리는 말에 채찍'과 같은 부스터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말과 목소리에 대한 생각이 최근 들어 변하고 있다. 자고로 상담에서 말은 이래야 하고, 목소리는 이래야지 라는 생각이 무너지고 있다. 무너지고 있는 것이 반갑다. 내가 그동안 세웠던 생각은 무해한 상담사가 되기 위한 기초공사 틀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틀이 무너지는 것이 반가운 이유는 새로운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상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는 관계에서 치료적 동맹이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이 같은 문제와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동업하는 동행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상담이더라. 이 생각을 하기까지 내가 만난 수많은 내담자들과의 상담을 거쳐왔다. 어떤 상담이 효과적이었고, 문제에 잘 접근한 상담이었을까 돌아보면, 내담자와 나와의 관계가 관건이었다. 자꾸 관계 관계라고 이야기하게 되는데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진솔함, 솔직함이었다.


상담사는 항해하는 배의 돛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고, 어두운 길에 가로등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담자가 문제를 안고 올바르고 적응적인 길로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 그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다(물론 증상과 내담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여기에 느껴지는 타인으로써의 상담자인 내가 내담자에게 진솔함으로 다가간다. 그러면 내담자는 다치지 않고 갈등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진솔함은 솔직하게 감정이 느껴지는 것을 개방하거나, 이를 위해 질문은 하는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이 내면에는 진솔함이 있어야겠다. 내가 진솔한 지, 아닌지는 상대방이 더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때 나는 상담에서 목소리를 나긋하게 하려고 노력하기도 했고,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원하지 않았지만 머리를 자르고 옷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또 나와 어울리지 않게 유머를 섞어가며(유머를 잘 사용하시는 상담자분들 부럽습니다) 상담했다. 나는 상담에서 '전문가'라는 틀이 써지길 바랬고, 그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안 어울리는 이것저것을 시도해본 것 역시 그러해서이다. 나는 내담자의 말을 끊고 질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거나, 내담자의 문제가 반복되어 직면을 해야 하는 등에서 정확하지 못했다. 익힌 감자가 쇠 숟가락에 문들어지듯 문들어졌다. 타이밍을 놓쳐 질문을 못하고, 질문을 못해 이야기에 집중을 못하고... 그래서 누구보다 진솔하지 못한 상담자였다. 근데 진솔함의 경험을 쌓아가는 지금은 그런 마음 또한 솔직하게 오픈한다(물론 내담자와 서로 신뢰가 확인되었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는 문제에 보다 잘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진솔함 그것은 나에게 좋은 장비가 되었다. 말과 목소리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생각은, 나의 불안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대화에서 목소리와 말은 이에 맞게 잘 휘감아지기에, 나의 진솔함 그보다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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