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

; 정성스럽고 참 됨

by 오후세시


나는 성실함이 무기인 것처럼 배우고 자라왔다. 어렸을 적 축구감독인 아빠는 지방 출장이 잦았고, 엄마는 나와 동생을 홀로 키워오셨다. 엄마는 동생과 나에게 성실함을 최우선으로 가르쳤다. 나는 아무리 아픈 날이어도 학교는 빠지지 않았고, 잔꾀를 부려 쉬엄 쉬엄 일하는 방법을 몰랐었다. 그 성실함이 다른 이들에게 나를 말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성실함은 나에게 성실하지 못한 이들과 구별되는 성스러운 이력 한 줄 쯔음이다. 성실함은 뭐랄까 이름부터 성실하게 생겼다고 해야 되나. 속 뜻도 정성스럽고 참 된다니. 고궁 예절 냄새가 나는 듯하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성실로는 안되는 순간들이 참 많다. 운도 따라주어야 하고, 때와 타이밍도 따라주어야 한다. 야속하게도 직업과 돈에 관련되어 있어서는 더욱 그런 듯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하는 사람, 자신의 실력을 한 순간의 오디션에서 인정받는 사람, 한 순간에 로또에 당첨되어 고민이 싹 해결되는 사람...


KakaoTalk_20200820_144120478_19.jpg 작년 제주도의 오름; 완만해보이지만 가도 가도 길이 나고, 넘었다 생각했지만 또 존재하는 봉우리.

나이가 산맥이라고 한다면, 20대의 끝자락에서 발버둥쳤던 적이 있다. 분명 다다랐는데 앞으로 가야할 고지는 또 생겨나고, 이룬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얼했는지도 모르겠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이 꼭 끝자락에 선 마음과 같았다. 성실이 밥 먹여주나, 성실이 나에게 무얼 해줬나. 억울하기도 하고, 단단히 삐지기도 했다. 돌아갈 수도 없고, 뛰어내릴 수도 없어 다시 올라가고 있는 30대의 등산에서 나는 또 다시 성실의 배낭을 짊어지는 듯 했다. 성실이 이유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성실이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설명해주기 때문에 다시 짊어졌다.



그 이야기를 풀어 쓴 브런치.

(여기도 산이 등장한다, 희한하네 산을 그리 좋아했던가)

https://brunch.co.kr/@3clock/21




어린 아이들이 블럭을 하나씩 하나씩 쌓을 때가 있다. 성을 완성하기 위해, 집을 만들기 위해 쌓아올린다. 또 도미노를 만들기 위해 하나씩 조심스레 세워본다. 블럭은 하나만 있을 때는 전혀 의미가 없어 보인다. 블럭의 갯수가 모아져 '무언가'를 형상화하여, 내가 만든 '무언가'가 스스로 만족스럽고 다른 이에게 인정을 받는다. 아마 성실은 '블럭을 쌓는 과정'이리라. 그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완성했다면, 우린 성실을 통해 이룬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성실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그렇다고 밥을 안먹여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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