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후 3시 II

꼭 빨리 하는 게 답일까 2

by 오후세시



KakaoTalk_20201224_104856333.jpg 꼭 골든 레트리버나 호랑이 등과 같은 산봉우리.

언젠가 먼 길을 가던 중 산봉우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산봉우리는 마치 동물처럼 털이 보송보송 나있는 느낌이 있어 내가 몸짓만 커진다면 손으로 쓰다듬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도로를 이어 달릴수록, 산봉우리를 빼곡하게 채운 것은 부드러워 보이는 털이 아니라 나무더라. 멀리서 볼 때는 부드러운 털 같던 나무들이, 가까이에서 보니 각자의 위치를 빼곡하게 채운 병정과도 같이 웅장했다.


KakaoTalk_20201224_104819507.jpg 저마다 빼곡히 채운 나무들 (놀라울 것도 아닌 것이 놀라운 광경이었다)




나는 요즘 성실함에 대해서 많은 고민 중이었다. 아시다시피, 오후 3시 일기를 쓰게 된 것은 프리랜서의 삶에 대해 고민하다가 적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방대하고도 짧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시 나를 다 잡는 것도 한순간이었을까. 코로나 19로 인해 근무하게 된 공공기관은 휴관 명령이 내려와 상담 사례가 일시 중단되었고, 사설 센터도 비슷했다. 다시 정규직을 알아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근본적인 고민에 들어서기까지 이르렀다. "왜 돈을 벌어야 하지" "로또만 맞으면 난 이런 고민을 안 할 수 있을까?"등등 (로또도 돈 아까워 못 사면서).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고 하루하루 천명이 넘어가는 순간들을 지켜보면서 내 고민과 불안은 다시 커져만 갔다.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이 얄밉고 지독하게도, 석사를 졸업하고 통용되는 상담심리사 2급 자격증을 따야 취업이 그나마 가능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2급 자격증 취득 뒤, 3년 경력을 붙이는 것이 태반이다. 어떤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상담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 상담사로 인증을 받는 것은 경력이 불가학력적으로 필요한 것이 당연하지.. 그 말에 동의하기 때문에, 대학원 공부나, 수련을 열심히 쌓았다. 하지만 상담사도 직업인데 어찌 수요 없이 공급만 몇 년째 해야 하는 것인가.....


SE-1f5d8e78-6d97-4ed0-960d-fe8593d8af10.jpg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하...



최근에 이 머리를 식힐 겸 남편과 교외 드라이브를 나갔다. 코로나로 맛집을 가기도, 여행을 가기도 어려웠기에 뻥 뚫린 자연을 보고 싶었다. 고민 끝에 별을 보기 위해 달려간 그곳에는 정말 수많은 별들이 있었다. 눈에 담기 벅찰 정도로 많은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반짝거렸다. 마스크를 썼지만 코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들이 냉장고를 열 때의 찬바람과 차원이 달랐다. 링거에서 영양제를 공급받듯 내 몸은 신선하고 차디찬 바람을 꿀꺽꿀꺽 마신 것만 같이 좋았다.


KakaoTalk_20201224_110846868.jpg 남편의 핸드폰으로 찍어본 밤하늘. 거짓말 조금 보태어 이보다 더 많았.. 심지어 별똥별도 봄!!


목이 부러질라 그 자리에서 1시간을 넘게 올려다본 하늘은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이렇게 별이 많았구나, 와 그럼 나는 이 우주 속에서 지구 속에서 먼지와 같이 작구나.(글로 쓰려니 오글 거리지만 정말 진심으로 느낀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본다). 고민이 끝나지 않았지만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자연을 만나면 그 웅장함 앞에서 나는 참 작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이 고민 앞에서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까 주저했던 발걸음이 그렇게도 고민할 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나뿐인데, 다른 곳에서 위안과 답을 얻고 싶었다. 한두 번 생각해서 나오지 않는 고민들은 대게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기운 쪽이 맞았는데, 진짜 맞을지 불안하니 고민을 놓지 못하고 안고 있었다.



정말 큰 깨달음이라도 한 듯, 고민은 1도 안 하고 내 삶의 내 가치를 누리며 살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정규직 자리가 있는지 알아본다. 주식을 사야 하나. 여기까지 또 간다 또ㅋㅋㅋㅋ. 아마 끝나지 않을 고민들을 놓지는 못해도, 나는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어 차곡차곡 쌓아가기로 결론 내었다. 불현듯 저번에 본 싱어게인이 생각난다. 37호 가수가 편곡, 안무, 무대 퍼포먼스까지 준비를 많이 했고, 이러한 무대는 전 라운드에서도 보여주었고 이번 라운드에서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심사의원들은 그의 성실함과 노력에 칭찬했고, MC를 보던 이승기 또한 눈시울이 붉어지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연예인은 성실하면 꼭 손해를 보는 것 같이 느껴졌다. 성실함도 끼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주고 싶었다. 그러함을 지금 37호 가수분이 증명해주신 것 같아 진심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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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상담실에서 같이 일하던 선생님은 저마다의 재능이 있었다. 한분은 인지적으로 접근하는 능력이 있어, 이론에 대한 정보량이 많았고, 한 분은 직관이 뛰어나서 내담자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았다. 두 선생님을 부러워하며 나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했었다.


최근에 별을 본 순간들, 싱어게인에서 나온 장면 그리고 산봉우리를 보며 느꼈던 것들이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주는 듯했다. 지금 자리에서 차곡차곡 성실하게 쌓는다면 그것이 내 가치이고, 내 비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믿음이 생기는 듯했다. 여전히 돈을 더 많이 벌고 싶고, 안정적이며 좋은 직장을 갖고 싶다. 하지만 이 조건을 잡는 사람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과 같았다. 상담에 대해 누구보다 노력하고, 공부하고, 경험한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력들이 맞았다(관련 교육 듣고, 관련 전문서적을 읽고, 사례 공부하고 등등). 나는 내 안에 피라미드를 세우고 내 위치와 꼭대기를 쉼 없이 비교하며 잣대를 세웠다. 그래서 마치 내가 한 노력, 하는 노력들이 타당화되기보다 당연했고, 어떨 때에는 부정하기도 했다(이렇게 노력한다고 뭐 하나 하는...). 꼭 빨리 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맞았다. 그동안 '내 생각이 맞을까'는 수 없이 많이 했어도, '내 생각이 맞았다'는 해본 적이 드물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 그 성실함이 내가 되고 싶은 상담사의 길로 가는 방향이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상담사가 쉽게 돈을 번다고 생각한다. 시간당 페이가 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8시간 일하는 직장인과 다르게 평균 4-5 케이스를 한다. 이마저도 주 5일을 빼곡히 채우는 것이 아니므로 쉽게 돈을 벌긴 어렵다. 또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상담을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역시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잘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관에 들어가기 위해서이고, 상담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나 또한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는 쉽게 봤었다. 금방 돈을 벌고, 상담의 전문성을 얻을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렇게 쉬웠던 것이, 가까이서 보니 아니었다. 멀리서 보면 당연하고, 누구도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쉬워 보이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 가까이서 보면 대단토록 성실함과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만든 것이었다. 마치 산봉우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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